내게도 거품이 있다면

Image can be bigger than life.

by 서태원 Taewon Suh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아 개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자아 존중감은 다차원적인 개념이며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되어야 할, 다소는 중립적인 개념일 것입니다. 사회 비교에 근거하여 과장된 자아 개념은 실체가 없는 자아의 허상을 만들어내기 쉬우며 결과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내적 비난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미지는 비생명적인 노선의 작용이요 세상의 사회구성체의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왜곡된 의미 구성체를 유지하기 위한 숨겨진 전략일 수도 있지요. 우리가 일반적인 이미지 현상을 회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지의 왜곡된 결과가 우리 자신에서 연결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어떤 어린 영혼의 글은 읽을 때마다 읽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듭니다. 세상의 왜곡에 대해 준비되지 못한 순수한 영혼이 세계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지의 체계에 대대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는 많은 심리적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고인에 대한 존중을 위해 최소한의 부분만 실어봅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날 미워했다. 끊기는 기억을 붙들고 아무리 정신 차리라고 소리쳐봐도 답은 없었다. 막히는 숨을 틔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추는 게 나아. 날 책임질 수 있는 건 누구인지 물었다. 너뿐이야. 난 오롯이 혼자였다.... 왜 이렇게까지 아픈지 신기한 노릇이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잘만 살던데. 나보다 약한 사람들도 잘만 살던데. 아닌가 보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없다... 세상과 부딪히는 건 내 몫이 아니었나 봐. 세상에 알려지는 건 내 삶이 아니었나 봐. 다 그래서 힘든 거더라. 부딪혀서, 알려져서 힘들더라. 왜 그걸 택했을까..."


연예인도 정치인도 상업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이상 거품을 얻게 되기 마련입니다. 매스 미디어의 이미지는 항상 실물보다 크게 마련입니다. 그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더 과장시키려 합니다. 자본주의와 토양에서 대중문화의 물결이 깎아낸 괴물들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자연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어떤 순수한 영혼에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허위가 됩니다.


거품에서 벗어나 거대 분자에 속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육체적 본능과 형이상학적인 존재와의 대립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과 이데아의 간극은 다 메울 수 없습니다. 두 부분의 변증법적인 통합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삶이란 어는 한쪽이 승리해야 하는, 이 둘의 갈등과 투쟁의 역사입니다. 사회적 본능, 사회적 인정, 경쟁과 제로섬 게임이 한 노선이요, 사회적 각성, 사회적 통합, 협동과 시너지 효과 또 다른 노선입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괴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 누가 인정을 원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것의 대개 행동이 동인이 되는 것은 이미 이미지 구성체의 트랩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자아의 틀 안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직 거대분자에 속할 수 있을 때야 원자의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관심의 주된 차원이 달라져 최하단의 개인의 수준을 벗어날 수 있을 때야 자신을 증명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의견에 민감하며 항상 여론에 취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타인의 시선에 붙잡혀 있으며 그의 귀는 경청이 아닌 의존을 위한 것입니다. 그 행동은 항상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반면, 자유롭지만 다양한 의견을 고려하며 오히려 자기 의견에 대한 고집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지합니다. 자기 진영이 아니라 원초적인 사회적 아름다움을 지킵니다.의로움에 대한 정의감이 살아 있으나 자기 이익에 대한 고려로부터는 벗어나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그야말로 클래스의 차이인 것입니다.



Anderson .Paak & The Free Nationals: NPR Music Tiny Desk Concert (2016). 힙합의 새로운 대장.


*Title Image: Franz Marc (1912), Versöhnung (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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