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분위기 경영 01

by 서태원 Taewon Suh

리더의 역할에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희생이 아닙니다. 다만 "상식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사회의 안전지대를 먼저 벗어나야 한다면 그것은 리더의 역할이다"이란 점을 설명하기 위한 대안적 단어의 선택이었습니다.


[사랑]은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엄청난 주제입니다. 사람들의 언급의 횟수에 비해서 잘 밝혀져 있지도 않고 인식의 오류도 많은 개념입니다. 그것은 감정이기도 하고 인지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성분도 있습니다. 이것을 다 밝힐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육체의 반응을 벗어난 종류의 [사랑]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물론 경영의 관점에서 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종류의 [사랑]은 남녀의 사랑(eros in Greek)도 아니고 부모의 사랑(storge in Greek)도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대신에 애착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 철학 전통에 따르면, philia와 agape가 포함되는 정의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상식이 뒤범벅된 유사 설명에 유의하세요.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다뤄볼까 합니다.) 상식적인 이해 차원에서 고려해 볼 때 이 [사랑]은 일반인의 사랑에 대한 정의보다는 신뢰[trust] 혹은 믿음[faith]에 가깝습니다.

대표가 모든 직원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도덕 편향적인 언명입니다. 극단적으로 사람 좋은 대표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말입니다. 다만 [모두 다 사랑하리]란 슬로건은 도덕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리더가 한 비전을 갖고 한 마음으로 같이 일하는 멤버를 [사랑] 하지 않는다면 그는 리더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고 귀를 기울이게 마련입니다. 위압하려고 하지도 않지요. 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사랑] 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격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실지로 대부분의 문제는 한 가지 "(개인) 초월적" 비전을 통한 한 마음이 팀 내에 없다는 것에 있지요. 어떤 이기적인 비전으로 한 통 속이 되었을 때 (이것을 비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현재의 정의 안에서는 어폐가 있습니다.) 의리와 정은 있을 수 있어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리를 외치는 것은 배반에 대한 두려움의 결과입니다. 사랑을 다른 긍정적 감정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 맥락에서 분명히 다른 것을 얘기하고 있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좋은 느낌이지만 좋은 감정이 항상 이 [사랑]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는 항상 긍정적인 감정을 갈망합니다. 사회관계에서 집착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원하며 급기야는 내분비계에 대한 외부적인 영향력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다 감정적 보상이 육체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모든 종류의 사랑이 긍정적인 에너지의 흐름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의 초점은 그것의 다른 원천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도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사람이 아니라 이상[vision]을 향한 방향입니다. 이 에너지가 사람 간에 유포되고 느껴져야 합니다. 에너지의 흐름은 유기적이고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관리나 강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분위기[atmosphere]라고 부릅니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간에 그 감정적 에너지가 흐를 때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희생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희생이라고 인식하지 않은 채 말이지요. 부모라면 잘 아실 테고 한창 연애가 불타올랐을 때도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매우 강한 팀의 리더의 희생은 희생이 아니지 말입니다.


그것은 축복이겠지요...




[To build a home] by The Cinematic Orchestra (2007)


*Title Image: Larry Rivers (1991), Dutch Masters (Presi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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