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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Sep 07. 2021

흑마술

대중문화의 중2병

대중문화의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시대입니다. 대중문화를 고급문화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전현대적인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 컨텐트의 퀄리티를 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일 것입니다. 여러 다른 결과가 있겠지만 1990년대 이후로 B급과 C급 문화라는 이름으로 대중문화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넘치는 컨텐트 속에서 대중문화의 모든 내용이 가치중립적이며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입니다. 고급문화로 포장되었건 날 것 그대로 포장되지 않는 문화이던 간에 표현하는 주체와 표현되는 대상에 대한 진정성이 부재한 채 가식적이고 표피적인 모든 문화 내용의 가치는 사실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스테레오 타이핑을 경계해야 합니다. 장르 자체가 문화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트로트란 장르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만 장르적 인기에 영합한 가식적인 쇼맨십은 인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화적 취향 자체는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가치와는 본질적으로는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른바 고급문화라는 낙인도 알고 보면 하나의 장르입니다. 클래식은 몇 백년 전의 대중음악이었습니다. 대중문화를 근거 없이 찬양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는 양쪽 모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문화의 내용과 근간을 제대로 파악하는 소양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부엌을 50년 동안 장악했던 할매의 된장찌개는 바이올린 대가의 연주만큼 아름다운 것입니다. 문화의 제대로 된 창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지만 문화의 제대로 된 향유에는 상대적으로 아주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관심과 마음 그리고 그에 따른 주관적 경험의 반복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의 양적인 증가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가치 있는 내용보다 가치 없는 쓰레기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합니다. 쓰레기에 보석이 묻혀 버립니다. 쓰레기만 보다 보면 보석을 보게 되는 시력을 상실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문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문화 내용을 잘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이루는 다중적인 문화적 영향들에 대해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래된 쓰레기들이 있습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사람의 눈을 멀게 한 엉터리 내용들이 있습니다. 대중의 인식을 셀러브리티란 도구를 이용해서 조작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논리를 전파하려는 수상한 세력들은 어느 시기에나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기만하는 거짓 프로파간다 세력들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위험한 것은 이른바 뭔가에 빙의된 세력입니다. 뭔가에 뒤집어 씌어서 본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오히려 본인을 옳고 정의롭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대중문화에서는 이러한 류의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는 그것을 이용하려는 세력에 취약합니다. 그중에서 한 가지 예만 들라고 한다면, Aleister Crowley를 들겠습니다. 좀 늙은 아저씨들은 Black Sabbath의 [Mr. Crowley]란 1970년대 하드 록 넘버를 기억할 것입니다. 크라울리는 보다 최근의 시기에 활약했던 이른바 흑마술사입니다. 서구에서 흑마술의 역사는 꽤 깊습니다. 이른바 주술주의[occultism] 혹은 이교도 관습[paganism]이란 이름으로 로마제국 이후로 지금까지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종교적인 핍박이 심했던 중세에 크게 성행했지요. 크라울리는 20세기 초 서구 전체에 크게 영향력을 미쳤던 꽤 유명한 흑마술사입니다. 그가 영향을 끼친 셀러브리티는 수 없이 많지만, 그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의 하나가 데이비드 보위입니다.


크라울리 외에서 비슷한 류의 많은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대개는 다분히 종교적이라 밀교[Esotericism]란 이름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을 듯합니다. 최근에는 유대교로부터 생겨난 카발라[Kabbalah]란 신비주의 그룹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애쉬튼 쿠처, 패리스 힐튼 등등이 관심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많은 신비주의의 원류이지만 1970년 초가 되서야 대중에게 전파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힌두교적인 영향로부터 생겨난 다양한 뉴에이지 신비주의의 흐름이 크게 유행합니다. 비틀스도 매우 큰 영향을 받았지요. 한국에서도 조금 늦게 1980년대 초반 큰 유행을 이룬 바 있습니다.


부유한 유한 계층이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행위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흔하게 증명됩니다. 밀교의 일파들은 이러한 점을 잘 이해해 왔습니다. 권태는 현대인의 병입니다. 그리고 권태는 풍요의 산물이지요. 셀러브리티는 특히 이러한 지점에서 매우 취약합니다. 1970년대에 마약과 흑마술에 찌들어 있었던 데이비드 보위는 다행히도 198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영향에서 벗어난 듯 보였습니다. 몇몇 인터뷰에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부정하고 희화화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대중문화의 스타 중에는 가끔 미성숙한 상태에서 지나친 스타덤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까요? 스타덤의 힘겨운 무게는 가끔 개인을 지나친 일탈과 탈선의 길로 인도합니다. 데이비드 보위는 안타깝게도 흑마술과 신비주의의 영향력을 끝내 떨쳐 버리지 못한 채 2016년 초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를 40년 이상 follow-up 해오면서 그의 개인적 인생의 경로까지 파악하게 된 필자에게 이것은 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몇 달 전에 발매된 그의 유작 앨범 [Blackstar]는 한동안 그가 벗어나려고 애썼던 흑마술의 영향력이 심신이 크게 약해진 그의 존재를 점유하게 된 상태에서 표현 되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슬픈 스완송입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아이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따라 하려 하는 것은 미처 성숙하지 못한 중2 마인드의 대표적인 특성입니다. 누가 한 때 유사한 경험이 없을까요? 이것은 흔히 말하는 중2병의 한 증상일 것입니다. 컨텐트는 즐기되 숭배는 지양하시길 바랍니다. 진실을 호도할 정도로, 심한 탐닉은 정신을 흐리게 만듭니다. 성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중2병은 중2에게만 걸리는 것이 아니겠지요. 특별히 그러한 영향력과 그에 대한 맹종이 진정성에서 벗어난, 사이비적인 것이라면 그 결과는 더욱 엄중할 것입니다. 그런데 뭐 따져보자면, 타락한 제도권 종교도 이에 못지않은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깊숙한 곳의 사정을 따져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Title Image by André Breton


[Blackstar] by David Bowie (2015)

"The death was coming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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