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Pop
아마도 1990년대까지도 명동을 가면 미국 중고 잡지를 파는 상점이 몇 있었습니다. 미국 문화에 탐닉해 있던 저는 일 년에도 여러 번 명동을 가서 이미 지난 호수의 롤링스톤과 빌보드 잡지를 사곤 했습니다. 미국에 살게 된 이후에는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 시기 이전에 몇 년 동안 롤링스톤을 구독했었습니다. 다년간의 정독 경험에서 제가 느끼게 된 것은 실제의 상업적인 구조와는 다소 독립적인 로큰롤에 대한 의미체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대중문화의 추세에 대해 누구보다도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롤링스톤의 내용에는 문화적인 이질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잰 웨너는 공공연한 존 레넌 빠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사상 최고의 성덕입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을 전 세계인의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우상을 위해 라이벌 폴 매카트니는 좀 깍아내려야 할 필요가 있었지요. 존 레넌과 오노 요코와는 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최근 그가 우울하다는 이유로 존 레넌의 미망인은 자신 부부 이름의 세계평화상을 그에게 수여합니다. 잰 웨너는 1994년 존 레넌을 비틀스와는 별개로 개인 자격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추대하며 폴 매카트니에게 헌정자가 되도록 부탁합니다. "그러면 니도 내년에 올려줄게"하고 약속하면서 말이지요. 폴 매카트니는 그 후 몇 년 동안 때만 되면 전화를 걸어 따져야 했습니다.
비틀스와 롤링스톤즈의 경쟁구도는 잰 웨너가 쉽게 이용했던 떡밥이었습니다. 특히 롤링스톤즈의 싱어 믹 재거와는 종종 휴가를 같이 즐기는 사이입니다. 믹 재거는 직접 잰 웨너를 명예의 전당에 헌정시킵니다. 그러나 잰 웨너는 친구의 개인적인 치부까지도 교묘히 이용합니다. 불같이 화냈다던 믹 재거는 곧 화해합니다. 프로페셔널들이지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그의 아내는 잰 웨너 소생 아이들의 대부이자 대모입니다. 그의 매니저는 잰 웨너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지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뛰어난 아티스트이기는 하지만 그가 미국 로큰롤의 미래향이 된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겠습니다. 그의 백밴드인 The E Street Band는 백밴드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첫 케이스입니다.
Grateful dead가 롤링스톤 커버에 자주 등장할 만큼 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밴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노력해도 좋아하기 힘든, 베이비부머 히피 감성의 미국적인 밴드였습니다. 다만 잰 웨너의 최애 밴드의 하나입니다.
1985년 홀 앤드 오츠는 롤링스톤의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커버 사진은 찐 형제인 둘이 은밀히 사귀는 사이처럼 보이게 유도되었고 기사 내용에서 대릴 홀은 거만에 쩔은 과대망상자로 표현되었습니다. 잰 웨너와 롤링스톤의 집필자들이 홀 앤드 오츠를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96년 그들의 6년 만의 복귀 앨범에 대한 롤링스톤의 평은 "니네 엄마나 좋아할 앨범"이었습니다. 번번이 상처받은 그들의 평판은 이십일세기에 인터넷과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겨우 복구됩니다.
밴드 초기에 가장 펑크스러웠던 U2의 싱어 보노는 잰 웨너와 롤링스톤을 경멸했지만 스타덤을 얻은 이후 잰 웨너에게 크게 빚을 지게 됩니다. 잰 웨너는 특집 인터뷰를 통해 보노를 세계의 구원자로 만들어내고 그들은 밀월 관계로 들어갑니다.
잰 웨너는 본 조비가 음악계에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본 조비는 그들의 대중적인 인기와는 상관없이 2018년에야 명예의 전당에 겨우 진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