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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Apr 19. 2022

역사상 최고의 성덕

The History of Pop

이십 세기 이후 전 세계를 호령해온 미국 팝 문화에 있어서 그 내용의 구성에 최고의 영향력을 가졌던 게이트 키퍼는 누구일까요? 미국 밖에서는 좀 낯선 이름일 수도 있지만, 저는 롤링스톤[Rolling Stone] 잡지의 창립자이자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막후 대장인 Jann Wenner라고 생각합니다.


잰 웨너는 그야말로 논란의 인물입니다. 부침이 심한 문화 출판계에서 반백년 이상을 정상에 머물러온 출판계의 거물인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형성의 배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인물입니다. 이성과 이십 년 이상을 살고 이혼한 후 동성과도 이십 년 이상을 살고 각각 가정을 꾸린, 정상적이지는 않은 캐릭터이지요. 다양한 종류의 공적이고 사적인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1990년대까지도 명동을 가면 미국 중고 잡지를 파는 상점이 몇 있었습니다. 미국 문화에 탐닉해 있던 저는 일 년에도 여러 번 명동을 가서 이미 지난 호수의 롤링스톤과 빌보드 잡지를 사곤 했습니다. 미국에 살게 된 이후에는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 시기 이전에 몇 년 동안 롤링스톤을 구독했었습니다. 다년간의 정독 경험에서 제가 느끼게 된 것은 실제의 상업적인 구조와는 다소 독립적인 로큰롤에 대한 의미체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대중문화의 추세에 대해 누구보다도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롤링스톤의 내용에는 문화적인 이질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롤링스톤의 열렬한 애독자였던 저는 대개 읽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미디어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무의식적 전제가 있었더군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문화 형성의 역학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되고 사실 관계를 체크할 수 있는 정보력이 생겼을 때 그것은 그저 지나치게 단순한 태도가 되었습니다. 문화적인 현실은 현출적인 의도 만의 반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잰 웨너의 개인적인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롤링스톤은 "그의 것'이었습니다. 편집인이자 소유주로서 그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많은 것들을 사유화하고 잡지를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나갔습니다.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잰 웨너는 공공연한 존 레넌 빠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사상 최고의 성덕입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을 전 세계인의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우상을 위해 라이벌 폴 매카트니는 좀 깍아내려야 할 필요가 있었지요. 존 레넌과 오노 요코와는 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최근 그가 우울하다는 이유로 존 레넌의 미망인은 자신 부부 이름의 세계평화상을 그에게 수여합니다. 잰 웨너는 1994년 존 레넌을 비틀스와는 별개로 개인 자격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추대하며 폴 매카트니에게 헌정자가 되도록 부탁합니다. "그러면 니도 내년에 올려줄게"하고 약속하면서 말이지요. 폴 매카트니는 그 후 몇 년 동안 때만 되면 전화를 걸어 따져야 했습니다.
비틀스와 롤링스톤즈의 경쟁구도는 잰 웨너가 쉽게 이용했던 떡밥이었습니다. 특히 롤링스톤즈의 싱어 믹 재거와는 종종 휴가를 같이 즐기는 사이입니다. 믹 재거는 직접 잰 웨너를 명예의 전당에 헌정시킵니다. 그러나 잰 웨너는 친구의 개인적인 치부까지도 교묘히 이용합니다. 불같이 화냈다던 믹 재거는 곧 화해합니다. 프로페셔널들이지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그의 아내는 잰 웨너 소생 아이들의 대부이자 대모입니다. 그의 매니저는 잰 웨너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지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뛰어난 아티스트이기는 하지만 그가 미국 로큰롤의 미래향이 된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겠습니다. 그의 백밴드인 The E Street Band는 백밴드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첫 케이스입니다.
Grateful dead가 롤링스톤 커버에 자주 등장할 만큼 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밴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노력해도 좋아하기 힘든, 베이비부머 히피 감성의 미국적인 밴드였습니다. 다만 잰 웨너의 최애 밴드의 하나입니다.
1985년 홀 앤드 오츠는 롤링스톤의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커버 사진은 찐 형제인 둘이 은밀히 사귀는 사이처럼 보이게 유도되었고 기사 내용에서 대릴 홀은 거만에 쩔은 과대망상자로 표현되었습니다. 잰 웨너와 롤링스톤의 집필자들이 홀 앤드 오츠를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96년 그들의 6년 만의 복귀 앨범에 대한 롤링스톤의 평은 "니네 엄마나 좋아할 앨범"이었습니다. 번번이 상처받은 그들의 평판은 이십일세기에 인터넷과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겨우 복구됩니다.
밴드 초기에 가장 펑크스러웠던 U2의 싱어 보노는 잰 웨너와 롤링스톤을 경멸했지만 스타덤을 얻은 이후 잰 웨너에게 크게 빚을 지게 됩니다. 잰 웨너는 특집 인터뷰를 통해 보노를 세계의 구원자로 만들어내고 그들은 밀월 관계로 들어갑니다.
잰 웨너는 본 조비가 음악계에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본 조비는 그들의 대중적인 인기와는 상관없이 2018년에야 명예의 전당에 겨우 진입합니다.


잰 웨너를 통해 저는 미국의 독특한 그리고 고급스럽지 않은 "버디[buddy]" 패거리 문화를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사유화적인 속성도 재확인하였지요. 잰 웨너는 사적으로는 최고의 성덕이자 공적으로는 동시대 최고의 문화 파워 앨리트였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습니다. 정치도 문화도 말이지요. 이제 롤링스톤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롤링스톤의 표지에 안 나와도 슈퍼스타가 된 케이스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잰 웨너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문화 구성의 일반성에 대한 것입니다. 대중 정치학의 일면이기도 하지요. 한국의 대중문화 업계도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또한 한국은 이것을 최근의 모든 정권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 간의 쓴 경험이 다시 한번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 짙게 드는 시점에 이 글을 쓰게 됩니다.



Prince, Tom Petty, Steve Winwood, Jeff Lynne and others perform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at the 2004 Hall of Fame Inductions.



*Title Image: Bono, Jann Wenner, Mick Jagger, and Bruce Springsteen, at the twenty-fifth anniversary of the Rock & Roll Hall of Fam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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