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nem, Talyor Swift, and the likes
성공은 때때로 혁신의 적이 됩니다. 대개의 성공의 경험이 있는 기업은 과거 성공한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보완해 사용하려는 성향을 갖습니다. 이른 바 Confirmation Bias입니다. 왜냐고요? 그것이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전감에 대한 욕구는 모든 사람의 기저에 있고 혁신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하는 긍정적 감정입니다. 차선은 폭망보다 언제나 안전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패턴을 음악산업에서도 흔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대박을 맞이한 대다수의 아티스트는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그 성공을 가져온 formula를 잘 파악해서 사용하곤 합니다. Sophomore Jinx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쉬운 방법이지요. 한 밴드의 mainstream breakthrough 후에는 쉽게 이른바 [II]를 보게 됩니다. 성공의 연장을 위한 속편이지요.
대박이 흔했던 1980년 대의 밴드 중에서 예를 들자면, Bon Jovi의 [Slippery When Wet] 뒤에는 [New Jersey]가 있었고, Guns N' Roses의 [Appetite for Destruction] 뒤에는 (비정규 밴드웨곤 앨범인 [G n' R Lies]를 제외하고) [Use Your Illusion I & II]란 cliche가 있었습니다. Journey의 [Escape]와 [Frontier] 그리고 Foreigner의 [4]와 [Agent Provocateur]도 같은 사례입니다. 같은 플랫폼에서 생산된, 껍데기만 다른 자매품입니다. 모험을 최소화하고 공식을 답습합니다. 최소화된 모험적 요소는 같은 선상에서 진보했다는 착각을 생성합니다.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음악은 산업 제품이 아니라는 관념에서 시작됩니다. (뭐,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이러한 소포모어 유지 전략 앨범은 많은 경우 잘 팔리고 어떤 경우 더 뛰어난 전작보다 더 높은 판매 수치를 보이지만 (어느 정도는 행동 지체의 효과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보면 그 가치는 상당 부분 증발해 버립니다.
영화의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습니다. 많은 슈퍼 히어로 시리즈가 있겠지만, 왠지 80년대 초 실베스타 스탤론의 람보가 먼저 생각나는군요... 웰메이드 영화였던 첫 편의 성공 후 제작사는 그 상업적인 진액만 쏙 빼내어서 (몇 개인지도 관심 없는) 속편들을 제작하여 대개 흥행에 성공합니다.
1990년대 말 Eminem은 성공에 대한 열망이 불타는 래퍼였습니다. (래퍼의 스웩은 무엇보다도 돈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 같습니다.) 폭력이 넘치는 환상과 사이코드라마의 향연인 [The Slim Shady LP]로 에미넴은 마침내 1999년에 메인스트림 마켓을 강타합니다. 그 차기작에 대한 기대는 명확했습니다. 과도한 스웩의 열망이 가져온 [셀러브리티에 대한 망상]이란 추가 조미료를 제외하고는, 전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폭력적 환상]은 청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상관없이 젊은 대중에게 잘 검증된 상업적 formula였습니다. 2000년 발매된 [The Marshall Mather LP]는 전작을 두 배 이상으로 능가하는 상업적 실적을 보여줍니다. [Stan]은 그 formula의 기념비적인 싱글입니다. 다음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Elton John과의 듀엣으로 그 상업적 거탑의 꼭짓점을 찍게 됩니다.
지금의 논지는 에미넴의 상업성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을 갖고 있음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뭐 힘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잇단 성공이 그것을 증거 합니다. 에미넴은 21세기의 첫 super act가 됩니다. (저는 한 아티스트의 세 개의 앨범이 연속으로 메가 히트를 이룰 때, 슈퍼스타의 도장이 새겨진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앨범이 실패하면 one hit wonder가 되고, 세 번째 앨범의 성공은 확증이 됩니다.)
"이러한 점은 Brand Management에서 상식에 불과합니다. 브랜드 이미지는 초기 단계에서 단순하고 명확하게 제시되고, 이어서 소비자에게 강력하게 각인되도록 관리되어야 합니다. 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는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고객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대로 전달해야 하지요."
레코드 기획사에게 픽업된 아티스트는 대개 유사한, 이른바 전략적인 길을 걷게 되지요. 에미넴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전설적인 프로듀서였고 당시 Interscope의 경영자였던 Jimmy Iovine에게 픽업되어 Dr. Dre에게 훈련을 받은 전형적인 기획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사실 아이돌 스타란 얘깁니다.)
Talyor Swift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어린 나이에 픽업된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팝뮤직의 전형적이고 강력한 상업적 formula에 대한 잠재적 tool set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부 중상류층 출신의 재능과 섹스어필을 겸비한 금발 백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상업적 장르인 컨트리와 팝에다 록을 배합한 음악을 한다..." 게임 오버입니다. 아직 20대인 아티스트가 데뷔 후 5개의 모든 앨범을 연달아 (미국에서만) 4백만 장 이상 팔아치우고, 10개의 그래미를 가졌다니... U2가 프로모션을 하고도 10만 장을 파는 시대에 말입니다.
이러한 산업 경제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이른바 심미적 자기만족을 향한 자유로운 영혼들입니다. 상업적 성공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고 만족스러운 음악을 추구하려는, 작가주의 아티스트들이겠지요. 뭐, 꼭 실패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재능이 평범한 수준을 뛰어넘는다면 말이지요. 예를 들어서, Prince는 [1999]과 [Purple Rain]으로 완성한 펑키한 주류 음악 스타일을 다음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에서 돌연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바꾸고 프로모션 마저 거부합니다. 프린스 정도 되니까 (감히) 할 수 있었던 일이지요. 그래도 미국 내에서만 2백만 장을 쉽게 팔아치웁니다.
메인스트림으로의 breakthrough를 코 앞에 두고, Arif Mardin과 George Martin이란 최고 프로듀서를 마다하며 또래 동향 친구 Todd Rundgren과 일하며, 필라델피아 R&B에서 뉴욕 스타일 Punk Rock란 엄청난 변신을 하다가 결과적으로 쪽박을 찼던, 1974년 경의 Daryl Hall and John Oates은 작가주의로 실패하게 된 사례입니다. 뉴욕의 쿨한 밴드의 음악 같았던 [War Babies]도 사실 꽤 괜찮은 앨범입니다. (참고로, 한국의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은 이 앨범의 [You're Much Too Soon]에서의 Todd Rundgren의 기타 리프를 샘플링 했습니다. 앨범에 기재는 되어 있지 않은데 알고 한건지 샘플링 툴박스에서 그냥 빼쓴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홀 & 오츠는 이후 5년 간 이 일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1980년 초에는 대박을 치게 됩니다
작가주의적 실패의 한 극단적인 예는 1980년대 활동한 브리티시 밴드 Talk Talk입니다. 1986년 톡톡이 [The Colour of Spring] 앨범을 출시했을 때, 많은 전문가는 그들이 곧 슈퍼 액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했습니다. Flock of Seagulls 류의 흔한 일렉트로닉 댄스 밴드가 성장을 거듭해 세 앨범 만에 실험적인 스타일의 복잡한 texture를 가졌으면서도 상업적으로 팬을 외면하지 않는 art rock 음악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저도 당시 이 앨범을 사서 듣고는 그들 음악의 발전과 그 새로운 깊이에 놀라고 한껏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톡톡은 그 기대를 무참하게 깨버립니다... 차기 앨범에 대한 기대로 그들은 EMI 계열의 Parlophone사로부터 무제한의 창작의 자유를 제공받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랜 기간 비밀리에 진행된 앨범 작업 후에 회사 경영진이 받게 된 결과물은 상업적인 기대라고는 1도 할 수 없는 순수에 가까운 심미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전작을 뛰어넘은, 평론가 별 다섯 개짜리 엄청난 야심작이긴 했습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만 말이죠.) 1988년 차기작 [Spirit of Eden]을 사서 처음 듣던 순간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게 뭐지?" 하고 "다음 곡은 틀리겠지?" 하면서 마지막 곡까지 이르렀을 때, 꼭 처음 보는 3시간짜리 발레 공연을 관람한 듯한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톡톡은 록이란 카테고리를 넘어서려는 무모한(?) 시도를 해냈고, 이후 언더그라운드 내에 이른바 Post-Rock란 새로운 장르가 구성되게 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아마도) 유일한 팬이었던 나를 잃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팬도 잃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Spirit of Eden]은 명반입니다. 지금은 저도 가끔 찾아 듣곤 하지만, 당시 필자가 그 음악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좋은 음악은 와인과 같아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익어 간다지만, 10년은 길어도 너무 깁니다.
이 글은 상업적인 성공을 지지하는 글도 아니고, 미학적인 성취를 찬양하는 글도 아닙니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해는 거부합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시장에서 음악 상품에 대한 대중 소비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한 가지 단면을 브랜드 관리의 관점에서 설명했습니다. 변화는 혁신에 필요한 요소이지만, 시장에서 항상 환영받는 특질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변화의 정도]와 [균형]에 대한 더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만약 이 글이 환영받는다면 속편이 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Life's What You Make It] by Talk Talk from their 1986 Album [The Colour of Spring]
*Title Image: Emin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