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 과거는 현재에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가정법 과거완료는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가정이다.
내 기억 속의 영문법 예제는
"만약 내가 새라면 너에게 날아갈 텐데. (If I were a bird I could fly to you.)" 같은 진부한 문장이었다. 사람이 새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가정법에 적합한 예문이었다.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문제집 속의 상투적인 문장일 뿐이었다. 학교에서도 그 문장으로 가정법을 배웠으니 말 다했다. (얼마나 흔하디 흔한 예문이었는지.)
좀 더 젊었던 시절의 '나'는 마흔 언저리의 '나'는 방황하지 않고 "만약~라면"이라는 가정을 더 이상 하지 않을 만큼 안정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현재나 미래에 대한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가정법에 시달려 차라리 안정되어 있을 미래의 '나'를 동경했었다.
하지만 그 나이에 다다른 나는 다른 가정법을 쓰며 방황하고 있다. '만약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쩌고 있을까. 다른 모습이었을까. ' 하는 넘쳐나는 후회의 가정을 가득하고 있다.
가끔 지금 내 모습이 너무 평범하다 못해 못나 보이게 느끼는 때가 있다. 어린 시절 꿈꾸던 내 모습과는 너무 다르니 삶에 만족해하는 것 같다가도 여전히 무엇이지 않는 내 모습에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회한을 하는 것이다.
'그때 결혼을 안 했더라면? 공부를 더 했더라면? 외국에 가서 살았더라면?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하고 달라졌을 내 삶을 상상하다가 곁에 있는 귀여운 아이와 사랑하는 옆지기를 보면서 현실을 또 조용히 직시하고 위안하곤 한다. 하지만 위안은 위안일 뿐이다.
평범하디 평범한 중년 여자,
"만일 내가 새라면 너에게 날아갈 텐데."
그와 같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문장이 바로 내 모습인 것만 같다. 날아갈 수 있는 새도 아니고 날아가지도 못하는 나. 가정법 문장처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꿈꿨던 것 같은 나.
앞으로도 "만약 ~했더라면" 하고 또 무수한 가정법 과거완료 문장을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갈까 봐 두렵고 암담하다.
"만약~라면" 하고 선택지가 많았던 젊은 시절이 반대로 그립고 돌아가고 싶다. 앞으로 남은 생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후회가 덜 남을 생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고 깊은 고민에 잠기는 때가 많다.
가지 못한 길을 후회하는 가정법 문장은 덜어내고 남은 인생이 덜 상투적이고 덜 진부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기왕이면 새롭고 기발한 현재형과 미래형 문장이 가득한 앞날이었으면 하는 꿈을 가져본다.
그러기 위해 봄을 마중하는 3월부터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더 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