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소 Sep 15. 2024

인간관계에서의 '쉼'

가치를 두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과의 친밀함, 사랑, 정 같은 관계였다. 내게  삶의 이유이자 삶의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중심에 사람이 있었고 옳다고 믿고 살아가는 중심에도 그러했다. 내게 간절했던 것이 사람이고 사랑이었다. 함께하는 따뜻하고 좋은 세상을 원했다. 이런 생각이 나를 많이 갉아먹고 힘들게 했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현실을 못 보고 대단히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었다는 것을.


어떤 장소를 가게 돼서 그곳에 책이 있다면 주욱 살펴보곤 한다. 책으로 장소의 주인의 취향, 관심 분야등을 단번에 살펴볼 수 있다. 언젠가 들른 빙수 가게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 인간관계등에 대한 책이 보였다. 가게 안의 여러 장식품과 틀어 놓은 음악 취향들을 고려해 볼 때 가게 주인은 미적인 것과 예술에 관심이 높았고 인간관계에 고민이 다소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장소를 둘러때 의외로 인간관계론이라든가 처세술에 관한 책이 많이 보인다. 다들 사람 사이에서 겪는 일이 힘든 게다. 누구나 가족, 지인, 친구 등 인간관계에서의 고민과 일, 진로, 돈 등 현실적인 고민 중 하나를 안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람들과의 억지 거리 두기를 할 때 외향적인 성격이라 힘들었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에너지를 받는 성향이었기에 약속이 늘 많았으며 워낙 하는 일도 많았다. 배우러 다니고 일하고 각종 모임에 나가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고 나면 늘 녹초가 되고는 했다. 가고 싶은 곳도 어찌나 많고 보고 싶은 곳도 많은지 주말이면 늘 집에 없을 정도였다. 역마살이 낀 것 마냥 돌아다니고 여행 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그 생활이 즐거웠다.

하지만 나만의 무언가를 채웠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물음표다. 어느 날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을 무렵 나는 모든 것을 '멈춤' 하였다. 그 많던 모임도 나가지 않고 배우지도 않고 그냥 쉬었다. 그런데 뜻밖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기에 다른 그 무엇에 쓸 힘이 남아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그리워 한 번 나가 본 모임에서는 이유 없이 상처받아서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나가지 않기로 했다. 지인들과의 조금 불편했지만 그저 그렇게 남겨두었던 관계들도 다시 보였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만날 사람들인가? 아니 한 달 안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떤가? 그러고 보니 내가 여태 왜 이렇게 만나고 나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관계를 지속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수많은 스트레스로 몸이 안 좋아졌겠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크고 작은 스트레스도 쌓였다. 친하다고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 사람들도 있었고 만날 때 시기와 질투 속에 오가는 오묘하고 찜찜한 말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넘기며 돌아오는 길에 화가 슬며시 나기도 하고 이유 없는 질투에 속절없이 당한 적도 많았다. 편한 나의 감정도 존중했어야 했다.

나에게 정이라는 건 떼는 과정이 훨씬 고통스러웠다. 숱한 밤 지난날 좋았던 날들이 떠올라 괴롭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사람도 이유가 있었겠지, 시기와 질투는 근본적 감정 아니던가.' 하고 이해해 보려다 화가 나다 하는 날들이 쌓여 일 년 그리고 이 년은 지나서야  감정이 가라앉았다. 시절 인연이었다 여기다가도 문득문득 그 시절이 그립고 마음이 아렸다.

그렇다고 상처받은 내 마음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중 삼중의 괴로운 시간을 버텼다.

부질없었던 게 아니라 의미가 있었기에, 내 인생의 순간순간의 시간을 함께 하였기에 내 삶의 일부분도 같이 지워지는 것 같았다. 마음을 다해 챙겨줬던 이들과의 관계는 더 아프기 마련이었다. 비즈니스 같은 사이보다 언니, 동생, 친구 같은 진심을 다했던 관계에서 배신감은 더했다. 나의 진심을 이용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다가 인정했을 무렵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힘든 관계는 멀어지고 끊어내는 게 나았다.

나를 위해서.

나를 들여다볼수록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는 관계들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수많은 모임들이 없어져도 별 탈이 없었다. 오히려 나를 위해 온전히 갖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명확해짐을 느꼈다.

읽는 시간과 쓰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었고 내 인생에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나의 가치는 나 자신을 향했어야 했다. 타인을 향하지 않고. 인생의 지도를 직접 들고 뚜벅뚜벅 나아가야 했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시선을 가졌어야 했다. 이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너 자신을 알고 스스로를 사랑하라.' 는 것이었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 같은 것인지.

친구, 지인 모두 자기의 이익이 우선인데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헛된 희망에 기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비즈니스나 취미모임처럼 서로에게 적당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관계, 기브 앤 테이크가 되는 관계가 오히려 오래가기도 한다. 너도 나도 뭔가 얻는 게 있기에 친목만을 위한 관계보다 가볍고 서로 적당한 거리를 지킨다. 마음을 깊이 나누지 않기에 상처를 깊게 받지 않는다. 오히려 정과 사랑 등으로만 유지되는 관계가 한순간 무너지기 쉬웠다. 아이 엄마들끼리의 친목도 아이들이 친하게 지냈을 때 유지되고 틀어지기 쉬운 이유가 그랬다.

 

인간관계에서의 쉼이 없었다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여기저기 오가며 사람들 속에서 수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갔을 테다.

스트레스받으며 관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가치를 '관계' 에 두지 말고 진짜인 것에 두어 했다.

정말 내가 사랑하는 것, 아끼는 것, 죽을 때까지 가져가고 싶은 것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했다.

홀로 서야 내게 소중한 것들이 남는다.


인간관계 어보니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진짜 가치가 보다.


이전 15화 마음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