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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Sep 25. 2024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드라마, 소설에서 묘사되는 이별은 참으로 아름답다.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눈물을 흘리며 끝나는지라 사람들은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막상 현실에서는 아름다운 이별을 별로 보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에서 한석규가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주다 화내는 장면 같은 걸 좋아했다. 현실이 그런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고하는 것도 자연스레 이별하는 것도 모두 그랬다.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하거나 엉망진창이거나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어찌 헤어짐이 아름다울 수만 있을까.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에서 사랑과 우정을 버려야 했다며 모가수는 빠른 템포로 노래를 불렀고 그 곡은 대히트를 기록했다. 연인과 친구를 믿었다가 배신당한 내용에 반해 신나는 비트로 만들어졌지만 가사는 울면서 못 잊는다고 한다.

신나게 춤이라도 추면서 배신당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노래하지만 깊은 속 언저리에서 울고 있는 절절함이 공감을 일으켰으리라.

오랜 친구나 연인, 가족일수록 헤어짐은 더 아프고 슬프다. 애정이 있었던 사이였던 만큼 사랑했던 만큼 살이 에이고 가슴이 불타는 듯한 보이지 않는 진한 상처가 남는다. 피도 붕대도 보이지 않지만 사람 미칠 노릇으로 부서지고 찢어지는 고통을 겪는다.

이해하려 노력해도 이해가 힘들고 용서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용서하지 못할 때 그토록 삶은 참 서글프기만 하다.

어쩌지 못하는 나 자신도 못나 보이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폐허 같은 기억만 남는다. 나도 힘들기에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마음이 변해서라기보다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상황, 상대의 상황 그리고 주변의 상황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변하기에 단지 마음 탓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나는 친구로 인해 악몽을 꿀 정도로 힘들었다. 사교적으로 보이지만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내가 마음을 막 열고 다가갔을 때 그녀는 내게 큰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았다. 힘들어하는 그녀가 안쓰러워 위로해 주고 달래주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그녀의 아이가 더 불쌍했는지도 모르겠다. 통제적인 엄마 밑에서 자라던 어린 나를 그녀의 아이를 통해 구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계속되는 그녀의 미묘한 비교와 건드림에 기분 상하던 찰나 그녀는 나의 약점, 사실은 그 당시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을 세게 후벼 팠다. 힘든 일을 나누면 반이 되는 게 아니라 약점이 되는 거라고 사회생활에서 그랬다. 오랜 친구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꽁꽁 마음을 닫고 나가던 모임을 다 줄였다.

늦게 잠들기는 하지만 깊게 자는지 꿈을 거의 꾸지 않는데 그즈음 일어날 적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결국 그녀를 포함한 모임도 당일 취소를 하고 말았다. 격한 스트레스를 내가 못 이겨내고 있었기에.

그로부터 몇 달 뒤에 건강 검진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를 받았고 시댁, 친정, 친구, 지인 등의 인간관계에서 내 에너지를 너무 많이 빼앗기고 마음을 다쳤다는 것을 뼈저리게 자각했다.

아무도 구원할 수 없으면서 돌보고 싶었던 마음이 정작 나 자신을 해치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속의 콜필드처럼 나는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잡아주는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싶었나 본데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잠수 타듯이 몇 개월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지냈다. 누구를 만날 기력조차 없었다는 게 더 알맞을 것 같다.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되는 관계들 정리했다. 아니, 이별했다.

사람을 만나면 그래도 즐겁고 행복했었는데 두터운 방어막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니 얇은 종잇장만큼도 안 되는 마음막으로는 누굴 만난 들 더 생채기만 났다.

그렇게 많은 관계들과 이별했다. 누군가 그랬다. 내가 더없이 좋을 때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 사람들만 곁에 있는 것 같고 내가 약하고 힘들 때 사람들을 만나면 도와줄 사람이 하나 없더라고.


그녀도 힘들고 약했던 시기였겠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남들에게는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내가 힘들다고 남들도 같이 후벼 파고 나처럼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도 보았으나 시련이 와도 끝까지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지 않고 지켜내는 이들도 있다. 내 사람으로 남을지 남지 않을지가 여기에서 나뉘었다.


곱디곱던 이팔청춘에 만났던 친구들이 하나 둘 멀어지고 '친구'에 대해 나는 잘 모르겠다. 혹자는 친구 관계도 다 그렇다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예전 같지 않다 한다. 가족만 남는다고.

가족도 잘 모르겠다.

어릴 적에는 우주 같았던 부모도 온전히 편하지만은 않고 내게는 온통 어려운 관계만이 남았다.

어렵다. 두렵다.

앞으로 다가 올 모든 헤어짐이.

그리고 그 뒤를 이을 괴로움과 슬픔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겪어야 하는 것인데.

누구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매일같이 헤어지고 있는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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