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첫 수업에 원고지를 나눠주고 나에 대해 쓰라고 했다. 나는 듬성듬성 칸 많은 원고지를 서너 매 채웠을까 결국 마무리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나의 꿈에 대해 물었던 어린 아들과의 대화를 소재로 쓰려고 했으나 나는 그 당시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의 꿈같은 것은 20대 초반까지 생각하던 것이었고 여러 번 좌절을 겪은 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바빠 '나의 꿈' 같은 건 저 멀리 머나먼 별 같은 곳으로 보내버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묻는 천진난만한 아들에게 나는 제대로 말문이 턱 막혔더랬다. 아이는 꿈이 많았다. 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자기가 읽은 책이나 아는 것에 대해 나에게 늘 이야기해 주고 나는 뭘 하고 싶고 뭐가 되고 싶다며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하니 어느 날 그것을 늘 들어주는 엄마의 꿈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 첫날을 여러 번 되뇌었다. 소녀시절 문학소녀라고 불릴 만큼 책을 많이 읽었고 20대 초중반까지도 글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금새 원고지를 채울 거라 자신했었다. 그런데 붉은 원고지를 다시 마주하고 펜을 든 순간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엇, 이게 뭐지. 왜 이러지?'
나에 대해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보기 시작했다. 내 이름, 사는 곳, 내가 하는 일, 나는 뭐지? 나는 누구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지? 어떤 것을 글감으로 잡아야 할 지도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내 이름을 밝히고 내가 사는 곳을 밝히는 이력서와 같은 글을 쓸 수도 없었다.
'나에 대해, 나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다 아이와의 대화가 생각나 나의 꿈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의 글은 서론만 겉돌다가 말았다. 이미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잘 안 되었던지라 꽁꽁 묻어두고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날을 회상하며 '안 하던 것을 하려니 처음에 잘 되지 않았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진짜 하지 못한 것은 '나에 대해 아는 것'이었다.
자기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그다음 것들이 제대로 보이는 거였다. 내가 내 마음도 모르는데 남에 대한 이해가 쉬울 리가 없다. '역지사지' 그거 되게 힘든 거다. 내가 내 상황이며 마음도 잘 알지 못하는데 주변을 볼 여유가 있겠는가. 남들의 처지가 보이겠는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상황에 끌려다니고 관계에 끌려다니고 사람에 끌려다닌다.
글쓰기를 하고 작가가 되는 처음이 '나에 대해 아는 것'이고 글쓰기는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소위 예술 분야인 미술, 음악, 연기등 다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읽는 게 우선일 것이다. 진정성 있는 것들이 거기에서 나온다. 슬픈데 어떻게 슬픈지 왜 슬픈지 알아야 음악도 만들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배우는 연기를 할 게 아닌가. 내가 온전히 나를 알아야 새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물 분석이라는 게 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 분석과 영화 속 인물 분석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쉼이나 나만의 휴식, 그것도 나만이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알아야 잘 쉴 수 있다. 그래야 내게 온전한 휴식을 줄 수 있다. 그게 여행이 됐던 집에서 뒹굴거리는 게 됐던 내가 되어 자유롭게 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