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소 Sep 26. 2024

먹고 자고. '쉼'이란 그런 거다.


사람이 어떤 상실을 경험했을 때나 극도의 우울한 순간을 경험할 때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오고 먹으려 해도 입맛이 뚝 떨어진다.

여행도 가기도 싫고 TV 프로그램의 예능도 하찮게 느껴진다. 만사 다 귀찮다.

마음이 고장 난 게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도 않고 기쁨, 슬픔등의 모든 감정이 무뎌진다. 마치 고장 나기 전 전자제품처럼 스위치는 켜져 있으나 작동이 잘 안 되는 것들이 많아진달까.

세상과 한 발자국 떨어져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그저 초연하게 관조한다.

이럴 때는 억지로라도 먹고 억지라도 자야 한다. 상갓집에서 사람들이 상주에게 뭐라도 한 숟갈 먹으라고 하고 눈 좀 붙이라고 괜히 배려하는 게  아니었다.

마음이 고장 났을 때 몸까지 고장 나면 그야말로 큰일인 것이다. 타인의 돌봄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나를 돌보아야 몸을 일으켜 세상을 다시 산다.

잠이 안 와도 눕고 베갯잇을 적시며 잠들더라도 자야 한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뭐라도 찾아 한 술 떠야 한다. 김치에 맨 밥이라도 먹어야 살 길이 생긴다.

잠이 오지 않다가 하염없이 이 쏟아지는 시기가 오면 먹고 또 자고 계속 잔다. 몸과 마음이 쉬라고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식이 필요한 것이다.

심플하게 살수록 좋다. 최소한의 것만 해도 좋다.

나는 예전에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잊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려 했고 바쁜 스케줄로 몸을 혹사시키려 했었다. 그러면 상실과 괴로움이 줄어들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바쁨으로 마음속의 슬픔과 괴로움을 잠시 덮어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공허는 더 크게 밀려왔고 내가 나에게 진실되지 않은 대가는 더 혹독했다.

단순하게 자고 먹음으로써 나는 나에게 최고의 휴식을 줄 수 있었다. 두 메커니즘이 잘 흘러가게 두면 모두 좋아진다.

어린 시절 속상한 일이 생기면 밥을 잔뜩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웠다. 두툼한 밍크이불 푹 덮고  땀 흘리며 한 잠자고 일어나면 개운했었다.


김치와 맨 밥만 먹다가 어느 날 피자가 먹고 싶고 치킨이 당기면 마음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잠만 자다가 푸른 바다가 보고 싶어지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괴로움에서 나오는 중이다. 

길가의 꽃이 보이고 파란 하늘이 보이면 그만 쉬어도 된다.


이제 놀아도 된다. 그럴 자격이 있다.

충분히 쉬고 또 쉬어도 괜찮다.

조금 더 자도 괜찮았고 힘들 때 맛난 걸 먹어도 되었고 더 웃고 더 사랑해도 되었다.

그렇게 살려고 세상에 왔으니까.

내가 나에게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고 맛있는 것을 입에 넣어주자. 잘 쉬도록.



이전 19화 나를 들여다보아야 '쉼'이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