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by 서빈

TTC 교육을 앞두고, 나는 낯선 이들을 만날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이내 그 시간들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됐다.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기 무섭게 원장님이 시르사아사나(sirsasana, 머리서기 자세)를 주문하셨기 때문이다. 요가 경전 <하타 요가 프라디피카>에 따르면, 시르사아사나를 매일 3시간, 6개월 동안 이어가면 ‘불사’한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내가 시르사아사나에 성공한 건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6년 전, 처음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 수련을 시작했을 땐 매트에 앉아 자세에 성공한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1인이었다. 그러다 용기 내 천천히 한 발씩 올려보며 멈칫하길 여러 번. 이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벽 앞에서 자세를 시도해보곤 했다. 복부 근력이 워낙 부족했던 나는 두 다리가 공중에 올라감과 동시에 균형을 잃고 벽에 밀착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넘어져도 벽이 받쳐준다는 안도감 덕인지 시간이 지나며 두 다리가 잠시나마 공중에 뜨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언제까지 벽에 기댈 거냐?”며 나를 벽 앞에서 쫓아냈다. 겁이 났지만, 그간 벽에 기대 연습해온 시간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천천히 두 다리를 올리자 찾아온 ‘무중력의 시간’. 그렇다. 시르사아사나 자세가 완벽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거꾸로 선 몸에서 아무런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느낌이 두려움으로 변하는 건 찰나였다.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스치며 몸은 바로 휘청했고, 결국 매트 아래로 쿵 떨어졌다. 아프기도 했지만 실패한 내 모습을 들키기 싫어(이미 쿵 소리도 났으면서!) 재빨리 매트로 돌아 왔던 기억이 난다.


캐나다 퀘백의 요가원 ‘Soham Yoga Bis’


그 날 이후로도 나는 꽤 오랜 시간 ‘공중 낙하’를 경험했다. 그렇다. 한 번 넘어지고 나니 쪽팔린 건 둘 째 치고, 자세를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더 강해졌다. 수없이 넘어진 그 시간 동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쓴 대본이 방영될 때까지 수없이 엎어지더라도 내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 아쉽게도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 마음 때문인지 시르사아사나도 차츰 성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대본의 질도 그 시절보단 좀 더 나아졌다.(고 믿는다.)



오리엔테이션 날은 체감 상 5분 정도가 흘렀을까. 거꾸로 서 있던 그 5분 덕(?)에 오기 전 했던 많은 생각들은 말끔하게 지워졌다. 결국, 나는 자기소개 시간에 대비해 준비했던 정돈된 멘트 대신 즉흥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요가에 의지하며 드라마를 쓰고 있으며, 현재는 잠시 ‘비수기’라 이 자리에 왔다고. 교육이 끝난 뒤 요가를 가르치며 번 돈으로, 올해 운전면허를 따는 게 목표라는 것까지. 하하. 돌아봐도 ‘TMI’지만, 이미 뱉은 말이라 주어 담을 수가 없다.


캐나다 퀘백의 요가원 ‘Soham Yoga Bis’


끝날 무렵, 원장님은 다음 주까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결국 또 다시 제자리다.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로 나는 ‘인생 드라마’를 한 편 쓰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깨달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그게 아니구나. 영화는 고인이 천국으로 가기 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고, 짧은 영화로 재현 된 그 기억을 안고 영원한 안식을 떠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어떤 기억을 고를지’를 고민하느라 극에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을 잘 봤거나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 (아직은 오지 않은) ‘인생 드라마’를 써낸 순간 등의 것은 분명 아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랑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그의 검은 눈동자에 담겨있던 내 모습까지도.



이후, 내 삶의 목표는 확실해졌고 종종 그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책상에 마주 앉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쓴 초고를 가장 먼저 읽고 있는 모습, 책상을 치운 그 자리에 매트를 깔고 함께 요가 수련을 하는 시간, 매트 대신 이불을 깐 그 자리에서 함께 잠드는 밤 등을. 그 바람이 어느 순간 ‘얼렁뚱땅’ 찾아오길 바라며 잠들어 본다. 그나저나 시르사아사나를 매일 3시간 동안, 무려 6개월 간 유지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결국, 인간은 필히 죽는 존재라는 말의 역설일지도 모르겠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 얼렁뚱땅 하다보면, 진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