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C 교육을 앞두고, 나는 낯선 이들을 만날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이내 그 시간들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됐다.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기 무섭게 원장님이 시르사아사나(sirsasana, 머리서기 자세)를 주문하셨기 때문이다. 요가 경전 <하타 요가 프라디피카>에 따르면, 시르사아사나를 매일 3시간, 6개월 동안 이어가면 ‘불사’한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내가 시르사아사나에 성공한 건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6년 전, 처음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 수련을 시작했을 땐 매트에 앉아 자세에 성공한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1인이었다. 그러다 용기 내 천천히 한 발씩 올려보며 멈칫하길 여러 번. 이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벽 앞에서 자세를 시도해보곤 했다. 복부 근력이 워낙 부족했던 나는 두 다리가 공중에 올라감과 동시에 균형을 잃고 벽에 밀착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넘어져도 벽이 받쳐준다는 안도감 덕인지 시간이 지나며 두 다리가 잠시나마 공중에 뜨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언제까지 벽에 기댈 거냐?”며 나를 벽 앞에서 쫓아냈다. 겁이 났지만, 그간 벽에 기대 연습해온 시간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천천히 두 다리를 올리자 찾아온 ‘무중력의 시간’. 그렇다. 시르사아사나 자세가 완벽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거꾸로 선 몸에서 아무런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느낌이 두려움으로 변하는 건 찰나였다.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스치며 몸은 바로 휘청했고, 결국 매트 아래로 쿵 떨어졌다. 아프기도 했지만 실패한 내 모습을 들키기 싫어(이미 쿵 소리도 났으면서!) 재빨리 매트로 돌아 왔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이후로도 나는 꽤 오랜 시간 ‘공중 낙하’를 경험했다. 그렇다. 한 번 넘어지고 나니 쪽팔린 건 둘 째 치고, 자세를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더 강해졌다. 수없이 넘어진 그 시간 동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쓴 대본이 방영될 때까지 수없이 엎어지더라도 내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 아쉽게도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 마음 때문인지 시르사아사나도 차츰 성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대본의 질도 그 시절보단 좀 더 나아졌다.(고 믿는다.)
오리엔테이션 날은 체감 상 5분 정도가 흘렀을까. 거꾸로 서 있던 그 5분 덕(?)에 오기 전 했던 많은 생각들은 말끔하게 지워졌다. 결국, 나는 자기소개 시간에 대비해 준비했던 정돈된 멘트 대신 즉흥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요가에 의지하며 드라마를 쓰고 있으며, 현재는 잠시 ‘비수기’라 이 자리에 왔다고. 교육이 끝난 뒤 요가를 가르치며 번 돈으로, 올해 운전면허를 따는 게 목표라는 것까지. 하하. 돌아봐도 ‘TMI’지만, 이미 뱉은 말이라 주어 담을 수가 없다.
끝날 무렵, 원장님은 다음 주까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결국 또 다시 제자리다.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로 나는 ‘인생 드라마’를 한 편 쓰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깨달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그게 아니구나. 영화는 고인이 천국으로 가기 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고, 짧은 영화로 재현 된 그 기억을 안고 영원한 안식을 떠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어떤 기억을 고를지’를 고민하느라 극에 집중하지 못했다. 시험을 잘 봤거나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 (아직은 오지 않은) ‘인생 드라마’를 써낸 순간 등의 것은 분명 아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랑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그의 검은 눈동자에 담겨있던 내 모습까지도.
이후, 내 삶의 목표는 확실해졌고 종종 그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책상에 마주 앉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쓴 초고를 가장 먼저 읽고 있는 모습, 책상을 치운 그 자리에 매트를 깔고 함께 요가 수련을 하는 시간, 매트 대신 이불을 깐 그 자리에서 함께 잠드는 밤 등을. 그 바람이 어느 순간 ‘얼렁뚱땅’ 찾아오길 바라며 잠들어 본다. 그나저나 시르사아사나를 매일 3시간 동안, 무려 6개월 간 유지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결국, 인간은 필히 죽는 존재라는 말의 역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