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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Mar 27. 2020

#47. 생애 처음 해보는 일, 소규모 레슨(2)

Chapter3. 얼렁뚱땅, 요가 강사

서점에서 원데이 요가 클래스를 두 차례 진행하고 난 뒤, SNS를 통해 황금단추 요가 클래스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그 중엔 원데이 클래스 업체도 있었다. 업체를 통하면 홍보가 쉽고 인원을 안정적으로 모을 수 있지만, 수업비용이나 규모 면에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기획한 이 수업만큼은 속도가 좀 느릴지라도, 누구에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 지켜내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타인에 드러내는 것에 소극적이었고, 그 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다소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나아가기 위해선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다만, 그 또한 나답게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자는 바람이 있었다. 나의 경험과 이야기가 담긴 요가 산문을 매주 발행하고, 요가 수업 공지에도 매달 늘 짤막한 글을 실었다. 아직 만나 뵙지 못한 누군가에게 수줍지만 다정한 인사를 건네 듯.



다행히 개인 수업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수련생들이 안정적인 수준으로 모였고, 그 덕에 수업도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수업 인원을 최대 6명으로 잡은 이유는 소규모 레슨의 장점을 잘 살리기 위해서다.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다보면 내가 동작을 맞게 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수와 함께하는 수업에서 선생님이 나만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업이 끝난 뒤에 질문을 하기에도 자꾸 망설여졌다. 혹시나 선생님의 휴식시간을 방해하는 거 아닐까 싶어서. 그렇다고 1대1 개인 레슨을 받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나 같은 사람들이 분명 있지 않을까. 그들이 바로 처음에 생각한 타깃 층이었다.


심신의 옷깃을 여미는 요가(@영상다방 황금단추, 합정)


하지만 수업을 계속 이어가며, 요가 동작과 교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었다. 처음 이 수업을 꾸릴 때 세웠던 나만의 ‘기획의도’가 그것이다. 수업의 이름 따라 말 그대로 심신의 ‘옷깃’을 여밀 수 있는 시간을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 70분의 요가 수련을 마친 뒤에 맞는 차담 시간이 이에 해당한다. 매주 우리는 보이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입에는 떡을 오물오물 거리며 서로의 안부와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처음엔 주로 내가 재밌는 미션을 주었다. 내가 직접 시도 해본 것 중에서 나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행위들을.
 

“생에 한 번도 하지 않던 일 한 가지를 해보세요.”



대학 졸업 후에 남들 다 하는 취직은 않고 작가 교육원에 다닐 무렵, 나는 정말이지 돈이 없었다. 그 좋아하던 여행 뿐 만 아니라 카페에 들어가 맛있는 것 하나 사먹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할 때였다. 근데, 그러고 나니 사는 재미가 쑥 들어갔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공부를 택했는데, 어느 순간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돈이 들지 않는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생애 한 번도 하지 않던 일을 하기였다.


심신의 옷깃을 여미는 요가(@영상다방 황금단추, 합정)


생각보다 경우의 수는 많았다. 매번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골목에 들어서보기, 새로운 음악을 듣기, 도서관에서 처음 본 작가의 책을 빌리기, 24시간 공복 유지하기 등. 꾸준함이 장기인 나는 이를 1년여 이어갔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기에, 그 선택이 모이고 또 쌓이며 나란 사람을 스스로 더 잘 알게 되었다. 또한, 그 일상의 작은 변화를 통해, 다시금 생의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수련생들에게 반 강제(?) 미션을 줬는데, 생각보다 진지한 답들이 돌아와 마음이 쿵 한 순간도 여럿 있었다.
 

어느 날, 이 시간을 오랜 시간 지켜보던 황금단추 대표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건지 정말 신기하다고. 그제야 내가 매주 찾아오는 분들의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요가 하는 분들은 아마 아실테다. 요가 하나만으로도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막힌 상황을. 그 때문에 내겐 매우 익숙한 일이지만, 명함 먼저 내밀며 이야길 시작하는 대표에겐 매우 낯선 일이었다. 뭐, 근데 정말 그게 중요한가.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상대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나 또한 그의 말을 경청한다면 그뿐. 오늘에 있어 그만한 위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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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3장. 얼렁뚱땅, 요가 강사' 마지막 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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