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또개 Dec 15. 2023

옆집 외쿡 소녀와 김치를 담갔다

김치를 스낵처럼 먹는 그녀

띠링!

메시지가 울렸다.


"안녕 쥐아~ 혹시 이거 어디서 파는지 알아?"


조미김 사진과 함께 옆집에 사는 소녀가 보낸 문자였다.


"음 그거 여기 근처에는 없고 내가 한인마트 가면 사다 줄게!"


고맙다는 답장 속 환하게 웃는 소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우리 옆집엔 아시아 문화를 좋아하는 그리고 한식에 미쳐있는 십 대 소녀가 산다.






나는 그녀가 주문한 조미김과 그녀를 위한 초코파이를 들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나의 등장에 그녀는 반색했다. 그녀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불안한 눈빛을 장착한 그녀의 엄마도 함께 등장했다. 마치 <얘가 또 무슨 민폐를 끼친 거야!>  하는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이거 뭐야?" 


당황한 모습으로 그녀의 엄마가 묻는다.


"아 이거 김이라는 건데 야나가 먹고 싶어 해서. 어제 한인 마트 다녀왔거든."


"그랬구나. 이거 얼마야?"


엄마는 나무라듯 딸내미 얼굴을 쏘아보며 내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아니야. 이거 내가 야나에게 선물해 주는 거야."


"진짜? 고마워. 혹시 이번주 토요일 시간돼? 너 시간 되면 우리 집에서 뭐 만들어 먹을까?"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약속을 잡았다.

만나기 전에 그날 만들어 먹을 음식을 정하다가 그 집 소녀가 나만 보면 '김치 만들자' 노래 불렀던 게 생각났다.


"쥐아~ 우리 언제 킴취 같이 만들자아~"


그때마다 나는 인사치레로 "그러자" 대답만 했는데 드디어 그녀가 고대하던 김치를 함께 만들 날이 온 것이다.

언젠가 그 집 소녀가 김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유리병에 소박하게 담아 선물한 적이 있는데 김치를 간식처럼 먹는 그녀에겐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었다. 이번엔 그보다 많은 양을 담근단 사실에 소녀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한국에서 김장하는 풍경은 내게 낯설다. 우리 부모님도 집에서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고 늘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김치로 1년을 풍요롭게 먹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할머니께서도 점점 힘에 부쳐 더 이상 많은 양을 만들지 못하실 때 우리 집은 김치를 사 먹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독일에 와서 직접 김치를 담그게 된 것이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이곳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막김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김치가 없으면 없는 대로 몇 달도 잘 지내는 편인데 김치가 있으면 걸신들린 거마냥 헤프게 먹는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담그진 못하고 기껏 만들어 봤자 2-3Kg인데 이 양으로 김찌찌개, 김칫국은 아까워서 엄두도 못 내지만 가끔 김치볶음밥 정도는 만들어 먹는다. 사실 그마저도 미처 익지도 않은 김치를 사용해 맛이 덜하지만 맛보기 정도로는 충분하다.






소녀와 나는 각자 배추를 준비하고 그녀 집에서 만났다. 고춧가루, 액젓은 그녀의 집에 있을 리 만무해 양념에 필요한 필수 재료들은 내가 챙겨 갔다. 우리는 배추를 숭덩숭덩 먹기 좋게 자르고 깨끗하게 씻은 후 천일염으로 대략 1시간 정도 절여줬다. 소금물이 고루 베도록 30분 간격으로 배추를 뒤집어 주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탄력이 생긴 배추를 헹궈 손으로 물기를 꽉꽉 짜내 탈수시켰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물이 자연스럽게 빠지도록 몇 시간 방치하면 될 일이지만 나는 후다닥 끝내고 싶은 마음에 몸을 고생시켰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물기를 짜던 소녀도 입에서는 힘들다는 말이 연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녀의 엄마가 한 마디 덧붙인다.


"인고의 시간을 들여야 나중에 김치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괜히 웃음이 터졌다. 한국에서는 김장 버무리매트를 거실 한가운데 펼쳐 놓고 온 가족이 달려들어 썰고, 빻고, 갖은 재료 계량하며 수십, 수백 포기도 담그는데 우린 고작 세 포기, 5Kg 정도에도 이렇게 앓는 소리가 나오다니 엄살이 따로 없다. 나도 평소에 담그는 양보다는 두배로 많아졌다 하지만 사람도 늘어 결국 총량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데 괜스레 그날따라 더 힘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누굴 가르쳐줄 입장이 안 되는 주제에 독일어 신경 쓰랴 훈수 두는 역할까지 주어져 더 고단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소녀는 내가 알려주는 대로 착착 조수 노릇을 톡톡히 하며 척척 김치를 만들어 냈다. 과일도 잘라 갈아주고, 마늘, 생각도 다듬어주고 틱톡에서 봤다며 내가 미쳐 생각도 못한 무까지 준비했다. 무가 잘린 모양이 꼭 단무지 같아 처음엔 손사래 치며 넣지 말라 만류했지만, 이내 일반 무라는 걸 알게 된 후 안도 하기도 했다.


우린 수육대신 유부초밥을 만들었고 소녀는 내가 한국에서 그녀의 이름을 새겨 선물한 젓가락으로 유부초밥을 집어 그 위에 김치를 얹어 먹었다. 그리고 급기야 김치로 탑을 쌓아 입에 한가득 넣어 오물오물 씹어 넘겼다.


"너무 맛있어."


엄지 척 올려 보이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그녀의 몫으로 남겨진 두 통의 김치를(한국에서 쓰는 큰 김치통 아님 주의) 신줏단지 모시듯 거실 한편에 잘 모셔 두고는 김치를 맛본 지 3년 만에 드디어 직접 만들었다며 뿌듯해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고단했던 하루가 씻겨 내려간 듯 개운했다.


'챠쟝묜'도 먹고 싶고 '플코키'도 먹고 싶다는 소녀는 언젠가 '한식을 맛보기 위해' 한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데, 꼭 그날이 와서 우리가 만든 약식의 김치가 아닌 '정석의 김치맛'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로 한가운데서 차가 멈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