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시는 저물녘
잠시 뭘 쓰지... 망설인다
아니 정확히는 머리를 굴린다.
오늘 하루
다시 내일 섬에 들어가기 위해 시골에 내려왔고
오는 내내 비가 내렸고
낮잠을 잤다.
그리고 호주에 사는 시누이와 통화를 했고
얼마 전, 혼자가 되셨는데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이 남는다. 그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산책을 하고
혼자 밥을 지어먹고
남편이 떠난 자리,
그분이 쓰시던 가구들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이제 내 삶의 자리도 조금씩 정리하며 살아야지." 하셨다.
살다 보면, 참 사는 게 별거 아니어서 이런 게 부럽다. 차분 차분하게 주변을, 자신을 정리하며 사는 마음가짐 말이다.
포도나무에 새순이 올라와 반갑고
내 일주일의 행적도 더듬어 본다.
주일 오후에 섬을 나왔고, 아이들을 보러 다녀왔고
함께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결국 남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섬기고 봉사하고 나누는,
그것들이 주는 기쁨이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반면 예수를 믿는 자리에는 왔으나 옛 습성으로
무늬만 신앙의 옷을 입고 여전히 민폐를 끼치며 사는 사람도 잠깐 보았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열받을 것 없다.
이제 밤이 오고 있다.
하루를 내려놓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내려놓고
뭘 써야 한다는 생각도 내려놓는다.
그저 지금은 빗소리가 들리고 산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어디선가 새소리도 들려오는 저물녘.
나는 내가 지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곳에 무사히 도착해서 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이 다만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