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후, 내가 물었다.
"아니, 그래도 그쪽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사는 동네잖아
그러면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살만 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좀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투표하면 안 될까. 결과를 보니 좀 놀랍더라고."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한 말이나 비난하려는 뜻은 없었고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그때 나와 대화를 나누던 이는 한심하다는 듯이,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뭔 소리예요? 부자니까 더 자기 돈을 잘 지키고 싶지.
그리고 당연히 돈을 잘 불려줄 사람을 찍는 거지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 그 입장에서는..." 하고 깨갱했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자발적 가난은 아니고 체념적, 혹은 적응적 가난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태생적 가난일 수도.
예전 군산 월명동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때는 60-70년 대의 배경이 필요하면 우리 동네에 와서 영화를 찍곤 했다.
아직도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난한 동네,
묘하게도 나는 그 가난한 분위기에 빠져서 생전 처음 해보는 타향살이의 이질감을 금방 잊어버렸다.
이렇게 가난과 찰떡인연이지만 그렇다고 부자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니 좋아한다. 부러워하기도 하고 종종 반하기도 한다.
내 주변에는 사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살만은 하고
또 더러 부자도 있다.
아주 오래전인데 나는 아직도 그녀의 말을 잊지 못한다.
"언제든 어려운 일 생기면 SOS 쳐"
그 말이, 그리고 그녀에게서 전해오는 진심이 그 허허벌판 같던 내 삶에 얼마나 힘이 됐는지...
지금도 고맙다.
그리고 가장 최근으로는
평소 나하고 말 한마디 해 본 적이 없이 서로 얼굴과 이름만 알고 지내던 그이가
내가 섬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언제든 도울 일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라고 했다.
똑같은 말도 부자가 하는 말과 가난한 사람이 하는 말의 무게가 다르다.
그들은 언제든 실제적으로 도울 준비가 되어있고 또 도움이 되어 주었다.
솔직히 내가 부자가 그다지 되고 싶지 않은 건 어쩌면 이렇게 살지 못할까 봐서 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우리 섬에 찾아온 나그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 말도 했다.
"섬에 살아보면 정말 우리나라가 좋다는 걸 금방 알아요.
이렇게 사람이 안 사는 곳에도 밤에는 가로등을 켜 주고, 병원선이 와서 약도 무료로 주고,
또 물이 없다고 하면 언제든지 물을 실어 보내주고...
이게 다 부자들 세금 덕분이지요. 고마워요. 부자들..."
내 형제 가운데는 건물주에 억 소리가 나는 부자가 있다. 불에도 안 탄다는 금고를 사놓았다고 자랑하는 소리도 건너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있다.
나는 우리를 왜 그렇게 떨떠름하게 보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사실 그래도 그런 갑다 하고 살았다.
워낙 나는 나대로 사는 게 바쁘고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따위로 고민하느라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또 사는 수준 자체가 다르니 뭐....
그래서 그 집의 부를 부러워한 적도, 관심을 가져 본 적도, 혹시 도와주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들은 단지 우리가 자기들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모양이었다.
얼마 전, 통화를 하다가 내가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는 그래도 우리가 같이 가난했다면 적어도 정은 나누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것이 아쉽다면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다지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면에는 내가 이렇게 살게 될까 봐 인지도 모른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없이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속 편한 심보 말이다.
그나저나 내일은 대선일, 투표하려고 섬을 나왔다.
그쪽 동네 색깔이 어떠할지 여전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