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종일 비 내리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았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우중산책을 했다.
수건 모두 꺼내서 삶고 집안 정리도 하면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데도 마음에는 서운함이 달라붙어 속이 시끄러웠다.
그래도 이만큼 살아오니 그 정도는 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 서운하게 하면 안 된다는 사명을 띠고 오지는 않았다는 것.
나 또한 살면서 서운한 감정을 느끼면 절대 안 된다는 조항도 없다는 걸.
그러니 서운하면 서운한 대로 그런갑다 하고 지낼 수밖에 없다.
오래전, 어느 책에선가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는데 지진이 나서 다들 혼비백산하여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오직 한 사람만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그리고 지진이 그치고 다시 사람들이 들어오니 그때까지도 그 사람은 그대로 앉아있더라는 것이다. 모두들 밖으로 피할 때 그 사람은 자기 안으로 피했다며 우리도 문제가 생길 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와, 그런 세상이 있다니... 충격이었고 그 사람이 부러웠고, 나도 거기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뿐.
그러다 40대 후반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환경은 지옥 같은데 정작 본인은 늘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비결이 뭡니까?"
"...??...."
"평안을 유지하는 비결이요."
"아~"
그는 삐그시 웃으며 뜸을 들이다가 앉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앉는 법을 들었고, 들은 대로 해 보았다.
그때는 결가부좌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까지 앉기도 했는데 열심은 있는 반면 끈기가 없으니 그러다, 말다, 하다가 결국 말다 쪽으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다행히 몸은 기억하고 있어서 섬에 들어와 다시 앉기 시작했다
처음엔 5분도 힘이 들더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은 앉으려고 하면 앉아진다.
특히 오늘처럼 마음이 시끄러울 때 앉으면 퍽 도움이 된다.
서운함을 느끼는 나를 편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난하지도 않고 그저 분리해서 바라본다.
위빠사나 같은 데서는 바라보면 즉각 사라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잠깐 딴생각으로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또 앉는 동안은 가라앉는 것 같다가도 또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활개를 치며 종주먹을 대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점점 힘을 잃고 그러다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 그러니 그걸 당장 어떻게 해결해 보겠다고 머리 굴릴 것 없이 조금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면 된다.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할 것도 없고 또 당사자에게 너는 왜 나를 서운하게 하느니 어쩌니 따질 것도 없다.
나한테 앉는 건 일종의 무기다. 나를 지키고 또 이웃을 공격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오늘도 덕분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