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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 Apr 23. 2016

여보, 아이와 데이트를 하세요

아빠와 아이 사이의 간극 줄이기

 남편은 자상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그 가정적인 면모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장점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깨어 수유를 해야 할 때에도 한 번쯤은 본인이 일어나 분유 수유를 해주었다.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다. 잠들기 전에는 쌓여있는 젖병 설거지를 꼬박꼬박 해주었다. 그 당시 우리는 남편의 일 때문에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잠시 살 때였다. 부모님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둘이 의지하며 모든 일을 해결해야 했다.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힘든 줄은 몰랐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한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았다. 막 아이를 낳아 몸조리를 하기에도 아쉬운 시간에 첫째와 둘째 아이를 번갈아 안고 업고 달래며 보내는 하루는 정말 길었다. 때마침 남편은 일이 바빠져서 정시 퇴근은커녕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도 허다했다. 시간과 체력의 물리적인 한계를 견디다 못해 가사도우미를 채용했고, 식기세척기를 쓰고, 마트 배송 시스템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할 일은 끝이 없고 내 손길이 닿아야 할 곳에 닿지 못한 티가 역력했다. 6개월 정도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둘째 아이가 조금 크고 나니 익숙해질 건 익숙해지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적당히 생활에 균형이 맞춰졌다. 이제 나는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한다.




 남편은 여전히 바쁘고 앞으로도 계속 바쁠 것 같다. 아이들이 잠 들고나서야 집에 오고, 깨기 전에 집을 나선다. 아이들은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아빠가 있는 것을 보면 엄청나게 반가워한다. 남편은 밤마다 아이들이 잠든 모습만 보다가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깜짝깜짝 놀란다. "언제 이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지?", "이제 이런 말도 하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늘 함께 해온 나도 '간극'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첫째 아이가 기관을 다니면서 반나절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내가 모르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럴 때면 내 손을 떠나 다 큰 아이가 앞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요즘 인지와 언어가 급격히 늘고 있는 둘째 아이는 아침, 저녁으로 말과 행동이 다르다. "어머, 이제 이걸 할 수 있어?" 하루 종일 붙어서 지켜보고 있는 나조차도 놀랍다. 하물며 일주일에 한번 보는 남편은 오죽할까. 마치 할머니가 오랜만에 만나는 손주 보듯 그저 신기해한다.


 남편과 아이들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나는 평일에 아이들의 사진이나 처음 하는 말과 행동,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남편에게 수시로 전송한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정을 보내기를 적극 권한다. 그리고 대체로 네 식구가 함께 어딘가 외출하는 것으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시간을 보낸 일은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런 내가 지쳐 보였는지 아님 아이들이 좀 컸으니 데리고 다닐만하다고 느꼈는지, 최근 들어 남편이 자기가 아이들을 돌볼 테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런 남편이 아이들과 하는 일이란? 거실에서 TV 틀어주기, 냉큼 짐 싸들고 친할머니 댁 가기-아이를 좋아하고 마음 약한 우리 시어머니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체로 들어주신다-, 마트 가서 먹고 싶다는 군것질, 갖고 싶다는 장난감 사 주기다. 매번 아빠와 보내는 시간에 그런 걸 하길 원치 않기 때문에 난 결국 혼자 있기를 포기하고 넷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쪽을 택한다.


 미디어 매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기를 원치 않고 시판 간식을 제한하기 위해서 해온 그간의 노력이 손쉽게 무시되는 부분도 아쉽지만, 그런 것들은 당장의 즐거움을 선사할지언정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아빠가 사탕을 사주고 TV를 보여줘서 좋았다는 기억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본질은 남편이 아이들과 그저 '마음을 얻으려고 무엇을 사주거나' 단지 '한 공간에 있는'게 아니라 '교감하고 교류하는'데에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데에 있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보자. 만날 때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영화만 보거나, 술만 마시는 사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 요소가 없으면 할게 없는 어색한 관계일 것이 뻔하니까. 서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마음을 표현하며 교감해야 관계가 발전한다. 모르는 사람과도 술은 마실 수 있고, 안 친한 사람과도 밥을 먹을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매일 보고 있어도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큰다. 지금은 어리니 더 크면 같이 운동해야지, 말 통할 때 대화하면 되지, 하는 건 오산이다. 나중이 되면 아이는 더 커져버린 간극으로 낯선 관계가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가장임에도 가족 구성원의 지도에서 동떨어진 섬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게 일이 바빠서 어쩔 수 없었건 본인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건, 남편이 그렇게 되는 게 두렵다. 아이들이 아빠를 어색하게 대하는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주말 이틀간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려고 사탕과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도, TV나 다른 무엇이 끼어들지 않아도 온전히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뭘 할까?"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애할 때처럼 이 사람과 그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으면 좋겠다. 집 앞에 손 잡고 산책하고, 아무 말 안 해도 서로 마주 보며 그저 좋았던 시간처럼 아이들과도 그런 추억을 쌓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보!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하지 말고, 데이트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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