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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Jul 17. 2019

나는 지도를 넓혀주는 선생님입니다

나는 선생님입니다(3) 전인고등학교 김성광 선생님

2019 온더레코드 기획 '나는 선생님입니다'의 세 번째 인터뷰는 전인고등학교 김성광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지난 4월 디퍼러닝(Deeper Learning) 공유회에 준비해오신 한 장의 그래프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의 중간에 재미의 구름을 지나는 모양이었습니다. 만나는 학생의 수만큼의 그래프 모양이 있겠지만, 재미의 구름을 지나는 신나는 과정이 펼쳐지도록 더 넓은 세상의 지도를 보여준다면 각자 원하는 지점에서 배움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교사 생활을 시작한 8년 전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요?


대안학교를 지원하며 바라는 바도 달라졌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기를 바라는 교육당사자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학교는 점점 경쟁이 치열해졌죠. 체인지메이커나 사회적 경제 교육 등 세상과 연결되는 교육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왜 세상과 연결하려고 하나요?  


그냥 공부하기 싫은 게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수능특강’ 푸는 걸 지루해하고 힘들어하는 학생에게는 체인지메이커나 사회적 경제 활동을 통해 살아있는 배움을 경험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오랜 고민의 답이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학교 내 자원만큼 학교 밖 자원을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죠. 교사는 대안을 보여주고 같이 시도하는 역할입니다. 그 첫 시작은 홈페이지를 통해 학생이 관심 있을 주제인지를 먼저 보고 메일을 보냅니다. 잘 맞다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호의적으로 재능을 나누어주시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했던 시도들이 궁금합니다.  


최근 책 <평균의 종말>과 <공부의 미래>를 읽고 지난 시도들이 ‘개개인성’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한 학년의 30명의 학생들을 그룹 짓기도, 다른 욕구와 요구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담기도 어려웠습니다. 경제를 배울 때 누군가에게는 탐방 프로젝트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쉬운 경제학 책을 읽거나 물건 하나를 팔아보는 경험이 더 흥미로울 수 있거든요.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학생에게 맞는 것을 찾기 전까지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각자 지도의 영역을 넓게 확장시키는 방법뿐이죠. 활동을 할 때 의미를 모른 채 지나가지 않도록 학생이 가진 역량이나 어려워하는 지점을 알려주는 관찰자가 되려고 합니다. 



경험이 여러 번 쌓여서 지도가 확장된 후에야 흥미를 발견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합니다. 능력 수준이 낮은데 프로젝트를 높은 수준으로 제안하면 몰입할 수 없습니다.



학생이 수업에서 필요한 부분을 선생님께 요구하는 방향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나요?


그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지금은 스타크래프트나 롤 게임에서 지도가 좁은 상태입니다. 교사가 먼저 더 넓은 영역을 보여주고 동의하에 같이 해보는 경험이 여러 번 쌓여서 지도가 확장된 후에야 흥미를 발견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합니다. 능력 수준이 낮은데 프로젝트를 높은 수준으로 제안하면 몰입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섭외를 하고 인터뷰 질문을 만들어보는 데서 시작해서 지도가 넓어지고 성장한 이후에는 스스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보는 거죠. 



최근 배움을 위한 몰입의 환경을 만드는 디퍼러닝 공유회에서 <선택권으로 깊이 더하기>라는 주제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디퍼러닝’이라는 단어로 말하지 않았을 뿐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Project Based Learning)이나 도전 기반 학습, 배움의 공동체, 체인지메이커, 거꾸로 수업 모두 흐름은 하나입니다. 어떻게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하는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지점은 어디인지가 핵심이죠. 프로젝트 기반 수업도 학생의 역량과 동기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프로젝트 수업이 성공한다는 표준은 없습니다. 학급당 학생수가 줄어드는 지금이 학생마다 다른 개개인성에 집중할 기회이자 꼭 필요한 때죠. 


ⓒ김성광 (유쓰망고 공유회 중 발표 자료 화면 캡처)


디퍼러닝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합니다. 저는 좋은 여건의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인고등학교는 학생 대 교사가 5 대 1 비율이고 자기가 원하는 선생님을 선택해서 반이 만들어집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규모가 큰 학교를 위해 건물을 새로 짓기보다는 학급단위를 분류하고 선생님에게 자율권을 주면서 학교 안 작은 학교를 만듭니다. 



교사가 커버할 수 있는 수업의 적정 인원은 몇 명인가요?


4명씩 3그룹의 12명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적절합니다. 토론을 하더라도 4 대 4 구도에 4명의 평가단으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코칭은 2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3~4명이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고 가정할 때 6명 정도가 적절합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요. 


수능이라는 블랙홀이 있습니다. 기획을 직접 했다 하더라도 진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흥미를 잃어버릴 확률이 높거든요. 입시 준비에 몰입하는 때에는 기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교사의 비중이 높아집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을 때 대안이 될 경로가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죠. 표준화된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 생각에 동의하더라도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의 전제와 관련이 깊습니다. 첫 번째는 언어적 능력,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모든 것을 다 잘할 거라는 전제입니다. 실제로는 운동을 잘하는 학생, 감성이 뛰어난 학생, 다른 건 다 못해도 물건을 잘 파는 학생이 있듯 가진 능력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배움의 과정과 성장을 그린 러닝 커브 그래프도 아이들의 양상에 따라 다르죠. 그래프의 아래에 위치해있다고 수준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전문 영역을 먼저 도전하고 필요한 배움을 찾아가는 흐름의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에서는 밑에서부터 위로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는 두 번째 전제가 있죠. 



꼭 내가 이 학생은 좋은 대학을 보내야 하고 체인지메이커 활동을 잘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고 존엄한 존재로 살기 위해 이 활동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학생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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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의 구름이 러닝 커브에서 변곡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사는 이 구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목공을 배울 때도 처음 대패질, 사포질만 할 땐 재미가 없지만 능숙해지면서 재밌어집니다. 능숙해질 때까지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친근감이 생기고 관계가 두터워질수록 어려운 내용도 한번 더 살펴보면서 재미를 찾고 뭔가 해보려고 합니다. 결국 재미의 구름은 관계의 구름입니다. 관계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기에 전인고등학교에서는 함께 일주일 동안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지리산 종주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사의 고민을 함께 하기도 하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기 어려운 경우는 없나요.


어떤 노력을 투입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 똑같은 상태에서 3년을 보내는 학생도 있습니다. 교사가 모르는 깊은 상처가 있는 경우에는 어떤 자극에도 변화를 만들기 힘듭니다. 이럴 때 학교는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힘들어하는 부분을 메꾸고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친구들과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게 해 주고,  동기 수준이 넘치는 친구들에겐 새로운 사람과 세계를 보여주고, 아직 무엇을 할지는 모르지만 성실함을 가진 친구들에겐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교사를 만나는 단계에서 이 학생이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잘 파악하고 도와주는 게 가장 중요하기에 겉으로 보이는 큰 성과나 성적이 오르고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교사가 진학처럼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환경에서 개개인성은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요.


TV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 - 유시민 편>에서 “80년대 같이 사회의 변화를 꿈꿨던 사람들 중에 변절한 사람이 많은데 가장 많이 변절하는 케이스가 꼭 내가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이기는 편에 서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신념과 맞지 않더라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편으로 몸을 담는다. 왜 내가 변절하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외치기 위해서다.”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교사도 비슷합니다. 꼭 내가 이 학생은 좋은 대학을 보내야 하고 체인지메이커 활동을 잘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존엄한 존재로 살기 위해 이 활동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학생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요. 



교사는 스스로 어떤 러닝 커브를 그려나갈 수 있을까요. 


설명의 재미를 인지하는 데서 시작해 설명을 위해 지식을 소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다양한 수업방법을 접하고 공부합니다. 10~20년이 지나면 교과서가 머릿속에 있어서 다른 환경의 교실과 학생마다의 다양한 요구 수준에 유능하게 대처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되죠. 프로에게 가구 제작을 맡기면 마음에 쏙 들면서도 멋지고 창의적인 가구를 만들어내듯 능숙함 그다음은 자기 나름의 학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지고 교수법과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월급을 받는 직업을 넘어 일의 재미와 학생과 함께 성장할 때 교사는 새로운 것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교사는 자율성도, 시간도 없는데 많은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기에 재미를 느끼고 능숙한 단계로 도약할 여력을 만들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것이 현실이죠. 



체인지메이커 활동을 하면서 만난 열정적인 교사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재미의 구름을 타고 다닙니다. 에너지가 많고 아이디어가 넘쳐서 퍼스트 펭귄처럼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바로 실행에 옮기는 분도 많아요. 개개인성의 핵심 중 하나는 다양한 교사의 존재입니다. 기초를 재미있는 교수법으로 풀어내는 교사부터 재밌게 공부하게 하는 교사, 가족 같은 교사까지 다양한 교사가 자율성을 가지고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떤 교육자가 되고 싶나요. 

다양한 교사의 모습 중 저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교사입니다. 학생과 같이 동기를 주고받으며 배우죠. 체인지메이커활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만큼 학생들이 조금 더 세상과 연결되어 배우고 더 재미있는 사회적 실험의 계기를 만들고 촉진하는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 노트 

자기도 모르는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순간 새로운 분야로의 시야가 밝아지고 필요한 기술이 능숙해질수록 작은 손전등에서 큰 랜턴을 얻은 것처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됩니다. 지도가 넓어지는 순간은 사소하지만 어쩌면 배의 키를 1도 돌린 것처럼 시간이 지나 생각지 못했던 위치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교육자의 지도는 어떻게 넓어질 수 있을까요? 정해지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배우고, 재미의 구름을 넘나들면서 노하우를 주고받고, 자잘한 굴곡들을 계속 넘는 한 명 한 명의 시도가 조명받는 자리가 가능할까요? 언젠가의 그 자리엔 재미있는 러닝 커브를 그리는 교육자 분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글 & 인터뷰. 황혜지,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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