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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Jul 24. 2019

나는 동등한 관계를 맺는
선생님입니다.

나는 선생님입니다(4) 이화미디어고등학교 이윤승 선생님

2019 온더레코드 기획 '나는 선생님입니다'의 네 번째 인터뷰는 이화미디어고등학교 이윤승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학생과 선생님 간의 반말하는 사이를 다룬 영상으로 먼저 알게 되었지만, 선생님께 반말은 삶과 일상의 의문을 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600명의 학생과 60명의 선생님이 아닌 660명의 학교 구성원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선생님의 학생과 관계 맺기가 시작됩니다. 


교사 집단에 속한 1명이지만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 660명 중 1명일 뿐입니다.

” 


선생님과 학생이 똑같이 반말을 한다는 건 많은 편견을 마주하는 시도일 것 같아요.


모두가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저하거나 지속하는데 도움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교사 집단에 속한 1명이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면 학생 600명에 교사 60명으로 구성된 사람 660명 중 1명일 뿐입니다. 그중에 의견이 잘 맞는 사람 하나쯤은 있죠.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 다른 모습과 색깔을 가지고 자신과 맞는지 안 맞는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면 그만이죠. 학교에서는 색이 드러나지도 다양하지도 않다는 게 아쉽습니다.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하고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로서의 교사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단 중립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겐 신념일 수도, 누구에겐 두려움일 수도 있죠.


 

반면, 선생님은 SNS에 솔직하게 의견을 표현하는 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하죠. 저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학생뿐만 아니라 생각이 달라 저를 싫어하는 학생도 대화하면서 저를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질 거예요.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 사람 개인의 이야기로 남기 때문에 제 생각을 이야기할 뿐 틀렸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학생이 언제든 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서 저도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위한 방법이죠. 반말도 상대방과 같은 언어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고요.  



보통 학교에서 가장 규율이 세다는 방송반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맡은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맡아보니 말 그대로 규율이 센 곳이었지만 군기를 모두가 싫어하는 이유만 알면 없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방송에서는 실수하면 안 되니까 긴장하라고 시작한 것이 군기인데, 방송국도 실수하는 마당에 학교 방송부는 왜 실수하면 안 되는 건지 의아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문화에 익숙해진 것도 이유였지만, 실수에 대한 지적으로 시작해 선생님에서 후배 학생까지 화가 군기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었어요. 방송반을 맡고 가장 먼저 이 흐름을 끊고 실수해도 괜찮은 환경을 만들려고 했어요. 자기가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건 괜찮지만 누군가에게 혼날까 봐 실수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냥 실수해도 됩니다. 잘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살리되 누군가가 실수를 지적하지는 않기를 바랐어요. 외부의 지적과 요구는 교사가 막고  학생은 뉴스, 라디오, 라이브 방송 등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해보도록 하는 거죠. 예전의 방송반은 늘 백스테이지에서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지금은 주인공이 되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친구들에게 알리는 영상도 만들고 음악방송 라인업도 직접 기획하고 있어요. 



요즘 청소당번 없는 교실을 생각해요. 어느 아나키스트의 ‘우리 사무실은 당번이 없는데 늘 깨끗해요’라는 말이 멋지더라고요.


이 문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요? 


재밌으면 알아서 해요. 오래 걸리더라도 연초에 일 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정합니다. 말을 꺼낸 사람이 주도하지만 결과물에 신경 쓰지 않아요.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고, 중간에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시작해도, 도중에 그만둬도 됩니다. 부담 없이 시작하고 안되면 마는 거죠. 계획한 10개의 영상 중에 1개만 만들어지더라도 적당한 결과물에는 적당한 성공에 대한 쾌감과 경험이 따라오고 다음 시도의 좋은 동기부여가 되죠. 앞으로는 리더 없는 조직을 만들고 싶어요. 리더가 없다는 건 적당한 책임 아래 누구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스스로 동기를 찾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교과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나요? 


수학 수업을 시작할 때 문제를 푸는 방법보다는 문제를 풀 때의 생각과 어떤 태도로 수학을 공부하면 되는지 이야기해주는 편입니다. 비슷한 문제를 풀어봤는지에서 시작해 어떤 개념에서 출발한 문제인지를 묻도록 합니다. 이 질문은 인생에 맞닥뜨리는 문제 앞에서도 유효하죠. 비슷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했는지 생각하며 시작점을 잡아 당면한 문제의 핵심 주제를 파악하고 필요한 공식을 찾듯 스스로에게 빠르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수학 문제 하나를 푸는 것과 비슷합니다. 수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다른 과목과는 달리 한 단원에 필요한 지식들로 단시간 안에 질문을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해 보는 패턴을 연습하기에 좋습니다. 어떤 단원이든 상관없이 수학을 한 번쯤 꼭 배워야만 한다면 이렇게 문제를 풀었다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수학에선 많은 문제를, 삶에선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우선인가요?


많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한 문제를 풀어도 어떻게 풀었는지 한번 더 생각하고, 더 잘 풀 수 있지는 않았는지, 더 단순하게 풀 수 있지는 않았는지 뇌가 잘 기억하는 방식으로 고민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책꽂이에 꽂고 뇌 속에 정리해 인덱스를 붙이는 작업입니다. 문제를 푼다는 건 나만의 분류를 만드는 것과 같죠.



선생님이 생각하는 인간관계를 수학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인간을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해보면, 2차원이라면 2개의 속성이 점 하나를 설명하고, n차원이라면 n개의 속성이 점 하나를 설명할 것입니다. 점과 점을 연결해 관계의 심리적 거리를 계산할 수 있을 텐데 점이 가까워진다면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차원을 달리 보면 점은 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평행선이 아니라면 언젠간 만나겠지만 평행선이더라도 공간을 뒤집는다면 만나게 할 수 있습니다. 관계의 평행선을 달리는 학생들이 고유한 속성을 버리지 않고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만나게 하는 방법은 상황과 공간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다양한 학생들이 관계를 맺는 작은 단위가 교실이라면, 선생님이 바라는 교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요즘 청소당번 없는 교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어느 아나키스트가 ‘우리 사무실은 당번이 없는데 늘 깨끗해요’라고 했다는 말이 멋지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되기엔 아직 서로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않아요. 자발적으로 모인 소수가 조직의 애정이 클 때 가능해서 방송반은 느슨하게 실현되고 있지만 하나의 반은 그 누구도 원해서 온 게 아니어서 애정이 생기는 것부터 어렵죠. 공간도, 만나는 사람도, 그저 이 교실이 좋아서 학교에 오고, 그래서 깨끗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기길 바라요. 



학교라는 곳이 덜 괴로운 곳이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며 학교를 떠나, 교사가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의 권위주의적이고 집단적인, 그리고 폐쇄적인 환경을 답답하게 느꼈어요. 학교를 그만두니 살 것 같다는 마음과 동시에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떠오르며 ‘나만 이렇지는 않을 텐데, 나 같은 학생이 많을 텐데’ 싶었어요. 나 같은 학생에게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고 교사를 준비했습니다. 수업을 잘해서 학생의 성적을 올리든지, 어떤 수업을 하든지, 수업이 진로에 도움이 되는지는 관심 없어요. 학교라는 곳이 덜 괴로운 곳이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지금도 학교에서 과거의 저 같은 학생을 만날 때마다 교사 되길 참 잘했구나 싶어요.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당면한 문제 앞에서 견디지 못할 때 위로해주고 함께 싸워주고 싶어요. 제가 계속 교사를 하는 이유죠. 



다른 필요에서 성장해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교육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사람들이 교사가 되기를 바라지만 교육기관에서 일일이 만들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가장 영향을 준 수업을 꼽으라고 한다면 교육학 수업도 아닌 철학, 사회학 같은 교양 수업이라고 답합니다. 대학에선 쓸모보다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 지에 대한 모델을 정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수업을 할지는 스스로 찾아서 배워야 하는 몫이고요. 



어떤 교사가 많아지기를 바라나요?


학생이 배울 만한 사람 말고 대화할 만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도 학교에서 뭐하면 재미있을지, 학생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볼 수 있죠. 대화의 즐거움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학생도 마음 놓고 대화를 시작할 겁니다. 



인터뷰 노트

'수학 문제를 풀고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이 뇌 속에 자기만의 분류를 만들고 인덱스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는 선생님의 말처럼 이번 인터뷰는 다른 사람의 책장을 살펴본 것 같습니다. 책을 고른 다른 이유와 그때의 생각이 들어있어서 베스트셀러에 가려진 생각들을 찬찬히 읽어본 기분입니다. 인터뷰에 싣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물었던 '다른 교육자에게 궁금한 점은?'이라는 질문에 '왜 교사가 되었는지, 처음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아직도 그 질문은 유효한지 묻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각자 문제를 푸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온더레코드에서 만날 때마다 기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질문과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글 & 인터뷰. 황혜지,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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