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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Oct 09. 2019

낮에는 출석하고 밤에는 출근하는

고2, 곤충사료 제조기업 칠명바이오 대표 공희준

<Who’s Next?> 세 번째로 만난 10대는 공희준(이하 희준)입니다. 희준이의 이름 앞에는 ‘완주고 2학년’과 ‘칠명바이오 대표' 두 개의 타이틀이 붙습니다. 낮에는 학교에 출석하고 밤에는 회사에 출근하죠. 희준이가 하는 사업은 ‘곤충 사료 개발'입니다. 중학생 때 친구를 따라 곤충을 키우기 시작한 게 곤충이 잘 크도록 곤충별, 성장시기별 맞춤 사료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사업까지 이어졌습니다.


희준이의 곤충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럽게 시작됐지만, 대화를 되짚어보면 계속 좋아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 고슴도치, 햄스터, 도마뱀, 강아지 등 다양한 동물을 키워본 희준이는 왜 곤충에 정착했을까요? 더 알고 싶을 때 알 수 있는 환경이 손 닿는 거리에 있거나 나의 배움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일 때 관심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희준이의 이야기가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합니다.


돌덩이 같은 것의 반전미

곤충은 돌 키우듯 키우거든요? 그냥 흙 속에 묻어 놓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면 미동도 없던 게 어느새 자라있는 거예요. 재미 포인트는 애들이 다 자란 성충이 되면, 같은 곤충이어도 크기와 색이 다 달라요. 또, 개체마다 변이가 조금씩 있는데, 이걸 발견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곤충을 키울지에 대한 기준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모든 곤충은 개체마다 차이가 있어서 그냥 다른 종이면 호기심과 기대감이 생기더라고요.


번식을 관찰하는 것에서 설계하기까지

번식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곤충을 좋아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었어요. 사실 처음부터 많은 곤충을 키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곤충은 다른 말로 벌레잖아요. 그래서 번식력이 진짜 좋아요. 암수를 한 공간에 두기만 하면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거든요?


그런데 이 과정을 실험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더라고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질(돌연변이)을 반복 교배를 통해 고정하는 과정을 설계하고 관찰하면서요. 개체 수를 늘리는데,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다양한 성질의 곤충을 수집하는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친구가 많이 알려줬어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이잖아요. 그다음엔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해서 정보를 받아보고 도움을 받았어요. 인터넷 카페가 있었다는 게 곤충을 키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됐어요. 점점 아는 게 많아지고 개인적으로 진행한 실험이 반복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었어요. 실험의 기본 구조에 대해 검증을 했고 응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죠.



희준이는 2018년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방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주최한 ‘도전 K-스타트업 2018 혁신창업리그’에서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전국 9위)을 수상해 상금 1억 원을 받았습니다. 결과만 보았을 때는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앞서겠지만, 2018년까지 이어온 희준이의 행보를 봤을 때, 대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2때부터 단순한 아이디어와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실험을 이어왔기 때문이죠.


곤충을 키우기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키우는 곤충들이 늘어나자 사료비가 부담스러워진 희준이는 개인의 필요로 직접 사료를 만들었고 남는 사료를 동호회에 나눔 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반응이 좋아지자 시제품을 만들었고 곤충 마니아들에게 검증을 받았죠. 의도치 않았지만, 차근차근 창업에 필요한 과정을 밟아나간 게 인상 깊었습니다.


동시에 개인의 관심사를 유지하기 위해 취미나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사업이라는 방법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습니다. 희준이와의 대화를 통해 관심사를 지속하는 방법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고,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며 나와 잘 맞는 방법을 찾아나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어지는 글을 통해 관심사를 지속할 방법을 찾는 여정을 확인해보세요.



돈이 없는데 곤충은 키우고 싶어

처음에 시작한 이유는 돈이에요. ‘돈을 벌고 싶다.’가 아니라 ‘돈이 없는데 곤충을 키우고 싶다!’라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첫 단계는 ‘돈을 아껴서 곤충을 키우자 : 자체 사료 개발로 단가 줄이기’를 목표로 했어요. 동호회에 남는 사료를 배포했는데, 기존 사료보다 낫다는 반응이 많아서 두 번째 단계로 ‘식용곤충가게와 협력해서 대량으로 제작하기’를 수행했죠. 반응이 또 좋아서 세 번째 단계로 ‘평택에 있는 외삼촌 공장 일부를 빌려 생산하기’ 에 돌입했고 외삼촌의 추천으로 <2018 K스타트업>에도 도전하게 되었어요. 큰돈을 받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죠. 각 단계의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곤충을 키우고 싶다.’ 였어요.


무럭무럭 자라는 생각의 단위

아직 18세니까 생각이 커지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난 인터뷰를 다시 보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 깨달은 변화는 처음 시작은 취미였고, 그 이후에는 곤충을 계속 키우기 위한 자금을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장사에 가깝게 일을 했다면, 요즘은 사고하는 방식이 사업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취미와 연구를 넘어서 사업이 됐다고 느끼는 지점은 혼자 사료를 개발하고 팔 때까지만 해도 대학에 가서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제가 지식을 충분히 갖추는 것보다 이미 제가 바라는 수준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을 고용하는 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까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당장 곤충을 파는 것보다 곤충을 어떻게 팔지 구상하고 제안해서 투자를 받는 전략이 더 잘 통할 때가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이렇게 계산법이 조금 달라졌고 생각하는 단위가 커졌어요.


이 과정에서 옛날에는 스트레스 안 받던 부분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이전에는 개발한 사료에 곤충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 그냥 ‘이번 실험은 실패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다면, 이제는 기업에서 해결해야 할 큰 이슈가 발생하게 된 것이죠. 좋아만 하기에도 바빴던 곤충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니.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일로 선택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을 일로 선택해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잘하는 것 또는 싫어하는 것을 일로 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거든요.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다시 곤충에 정이 가요.

대부분의 조직은 앞뒤로 1세대 차이가 함께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386세대는 X세대와 X세대는 밀레니얼과 주로 함께 일하게 되죠. Z세대인 희준이는 공식적으로 4명의 직원과 비공식적으로 수많은 사람과 일하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한참 어른이죠. 첫 공식 직원이 아버지라는 것은 주로 함께 일하는 직원이 2세대 차이가 남을 의미합니다. 흔히 말하는 세대 차가 존재하는 조직 구성인데, 이곳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다른 특징이 있을까? 희준이는 지난 4년간 어른들과 같이 일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 같은 게 쌓지 않았을까? 와 같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희준이는 ‘대표지만, 청소년'의 자세로 일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자신을 정답이라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자라는 존재로 여기며, 주변의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고 업무를 지시할 때 부탁하는 입장을 고수하죠. 이는 자신을 지키면서 사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글을 통해 10대 대표가 유연하고 현명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살펴보세요.



나를 지키면서 일하기

채용은 K스타트업과 같은 대회에서 만난 전문가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했던 부분이에요. 회사이기는 하지만 제가 많이 어리니까 업무지시나 질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거든요. 차라리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청소년으로만 구성된 기업을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불가능한 상상이었죠.  청소년은 어떤 결정을 할 때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할뿐더러 방과 후에만 근무 할 수 있다면, 업무효율이 당연히 떨어질 거고 시스템적으로 봐도 여러 지원사업에 입찰하기 위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기에 불리할 수 있어서요. 어른을 채용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어요.


대신 1호 직원으로 아빠를 채용했죠. 방법을 찾은 것 중 하나는 업무지시를 아빠를 통해서 해요. 그리고 저는 아빠를 관리하죠. 대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제게 명령권은 없고 부탁권만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 업무 지시가 필요할 때는 부탁을 드리죠. 직원분들은 제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부를 때는 편하게 ‘희준아'라고 부르세요. 이런 상황이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일하기 편한 세팅을 만든 거예요. 뭔가 20년 정도 후에는 명령권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20년 지나도 38세거든요.


최근에는 모든 책임을 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에서 기업 가치를 낮게 잡아서 투자를 받고 책임 주식을 분할했어요. 계속 버티다가 지치면 안 되니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나를 지키면서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중이랄까. 앞으로 7년은 보고 있어요. 열심히 할 거예요.


인정하며 함께 일하기

‘칠명바이오’라는 회사 이름은 할아버지랑 목사님이 한 자씩 주신 글자를 조합한 거에요. 처음에는 제가 지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회사 이름 같지 않다고 하셔서 고민하다 의지하는 어른들에게 맡겼어요. 막상 받고 보니 너무 옛날 이름 같아서 살짝 당황했지만, 지금은 만족해요. 주변 분들도 입에 잘 붙고 친숙하다고 얘기해주시고요. 회사 이름은 같이 일할 어른들에게 익숙하면 좋으니까 어른들에게 맡겼다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나 프로젝트 네임은 소비자층에 맞도록 트렌디하게 제가 지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식회사 칠명바이오에서 ‘라바푸드’를 만들고 있죠.


사업을 하는 10대로서 생각을 키우는 과정에서 어른들을 만나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지원사업을 받으면 교육을 들어야 하는데, 이를 통해서 사업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기업가정신도 알게 됐어요. 이외에도 소비자, 투자자 등을 직접 만나고 부딪히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희준이는 청소년 진로와 교육 영역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희준이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기사 <청소년의 진로를 위해 청소년이 나섰다>를 발견했습니다. 2019년 9월에 이런 생각을 했다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MIC4TEEN은 예술, 기술, 사업 등 여러 영역에서 인지도가 있는 청소년 사이에 네트워크가 없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먼저 해본 친구들이 힘을 모아 뒤에 올 친구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합니다. 10대로서 관심사를 지속하기 위해 힘들었던 경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좋은 가이드와 지원을 하는 역할을 할 조직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관련한 대화를 나누며 희준이는 ‘뒤에 오는 청소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청소년 사이에서도 속도와 도달한 거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늘막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어요.


마지막으로 희준이는 교육부 장관의 정책 자문기구인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교육에 어떤 변화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기초교육을 습득하는 기능으로서 지금 학교의 시스템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교육 제도의 장점을 잘 살리되, 본인처럼 현장에서 경험하고 실험하며 학습해야만 하는 친구들을 위한 환경이 더해지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학교가 존재했다면, 사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업은 곤충이라는 관심을 지켜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는 선택보다 확신에 찬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충분히 누리는 다음세대가 늘어나길 바라며, 세 번째 인터뷰를 마칩니다.



인터뷰 & 글.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문숙희


'세상의 변화에 필요한 배움은 무엇일까?'질문에 대한 세번째 답 'Who's Next?'는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온더레코드 문숙희, 황혜지 매니저가 10대와 함께 쓰는 다음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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