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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Sep 25. 2019

새는 휴덕기가 없어요.

학교 뒷산이 연구소인 새 탐구가 18세 이수연.

학교 뒷산이 제 연구소죠.

수연이를 알게 된 건 씨프로그램이 투자하는 <탐험대학*>을 통해서입니다. 와글와글 초등학생과 중학생 사이에 고등학생으로는 유일하게 활동을 시작했죠.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활동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무엇을 탐험하고 싶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수연이의 관심사가 ‘새’라는 것은 1시간만 같이 있어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동네에는 어떤 종류의 새가 사는지 새의 흔적을 찾기 위해 주변을 부지런히 살피거든요. 수연이의 관심이 특별한 이유는 ‘새’를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탐구하고 새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인지 모르게 새에 입덕하여 휴덕기 없이 10년을 좋아한 수연이가 새를 대하는 자세와 인사이트로 글을 시작합니다.


*탐험대학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획,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과학계의 전문가들을 멘토 삼아 탐험을 위한 방법과 태도 등을 배우고 나만의 탐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매니저의 코멘트는 초록색 글씨로 표시합니다.


비둘기는 똑똑해

인간들을 정말 잘 써먹어요. 진화를 잘했죠. 굳이 틈새에 잘 들어가잖아요. 사실 비둘기의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은 도시화 탓이 커요. 비둘기들이 나무에 둥지를 잘 짓지 못하는데, 콘크리트에서는 맨바닥에서도 지을 수 있거든요. 도시의 건축이 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 데에 노하우도 생겼을 것이고 비둘기는 세대교체 주기가 짧아서 적응력도 빨라요. 비둘기의 뒷발가락 길이를 보면 다른 새들과 달라요. 나뭇가지나 전봇대에 앉을 수 있게 진화한 것이죠. 맹금류처럼 날기도 해요. 건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돌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공중에서 멈추는 정지 비행을 하거든요. 아름답죠. 걸어 다니는 비둘기들을 보며, 살쪄서 날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살쪄서 걷는 게 아니라 걸어서 살찐 거예요. 난다는 것은 모든 걸 3차원으로 보고 변화시켜야 하는 일이거든요. 가슴근육을 다 쓰기 때문에 엄청 많은 열량이 필요하죠. 비둘기는 열량을 아끼는 거예요. 영특한 종이죠.


깃털이 있는 동물은 새뿐

새가 좋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하나만 꼽자면 깃털 때문이에요. 깃털 있는 동물은 새뿐이에요. 앞다리가 변형된 날개를 가진 박쥐도 있지만 새는 구조가 신기해요. 까치 깃털은 파란색 색소가 없지만, 깃털 사이로 미묘하게 푸른 빛만 반사하게 되어있어요. 털이 모여서 판을 이루고 진화하면서 달라진 깃털 형태만 20개가 넘어요. 그런 색을 잘 찍은 직캠은 모아두죠. 제가 좋아하는 맹금류와 직접 찍은 사진을 구분해둔 정도라 사진을 특별히 관리하지는 않아요. 친구들이 새에 관해 물으면 바로 폴더에서 찾아서 보여주기도 해요. 5천 장짜리의 백과사전을 들고 다니는 것이죠.


거짓말하는 까치를 발견할 때

제가 새를 탐구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탐조 사진이 잘 나와서 확대해 보면서 새로운 걸 발견할 때와 보기 드문 새나 행동을 봤을 때예요. 하천에서 번식기의 원앙 여섯 마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이 선명해요. 줄지어 먹이를 찾고 쉬다가 다시 가는 행동을 실제로 보니 책으로 사실을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어요. 까치도 거짓말을 한다는 걸 읽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다른새에게 먹이를 숨기기 위해 돌멩이를 대신 파묻는 모습을 보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만 예상 가능한 행동을 집 옆에서 실제로 확인했을 때 배움을 실감했어요.


새에게는 점잖은 손님이 되고 싶어요.

주로 혼자 탐조를 하러 가는 편이에요. 사람이 많으면 새가 놀라거든요. 새들 입장에서는 제가 침입자이기 때문에 점잖은 손님이 되고 싶어서요. 점심시간에 남은 과일 같은 것들은 가지고 산에 가기도 해요. 점심시간에 과일이 나오면 안 먹는 친구들 것까지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요. 새들이 저를 자판기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태학을 공부하고 새 연구를 하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아마존 화재처럼 인간의 실수로 생물이 희생하는 큰 재해 앞에서 너, 나, 우리 전체가 왜 이럴까 하고요. 사람 때문에 화가 나지 새 때문에 화났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사실 학교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학교에서 새집을 설치하고 기록하는 일을 전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어요. 까치를 연구하려고 실험 설정을 해두고 가져가지 말라고 해도 매번 망가져 있었어요. 무려 4번이나 재설치를 해야 했죠. 둥지에 머물다가도 습하면 알을 버리고 가기도 해요. 진균이 많으면 알은 다 상해버리고요. 둥지를 설치하는 최적의 상태는 복잡해요. 너무 휑하거나 가지가 많아도 안 되고 개미집도 피해야 하죠. 자연환경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결국 최선의 자리를 찾지 못해요. 차악만 남죠.


청소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학교'는 다양한 역할이 모인 집단인 만큼 다양한 규칙으로 가득합니다. ‘등교할 때는 교복을 입어야 한다.’, ‘핸드폰은 수업 시간 전에 걷는다.’와 같은 생활규칙부터 ‘점심시간은 1시간’, ‘방학은 1년에 2번’과 같은 학교 운영에 관련된 학사와 관련된 약속 역시 규칙에 해당합니다. 수많은 규칙이 행동을 제한하는 장치로 느껴진다면, 학교가 갑갑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겠죠.


하지만, 수연이와의 대화를 통해 ‘규칙은 제약일 뿐일까?’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수연이는 학교에서 해야만 하는 규칙과 시스템을 잘 활용해 ‘새를 탐구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1개의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한다.’는 규칙은 학교 수업 시간에는 할 수 없는 생태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동아리를 ‘학생부종합전형’에 기입하기 위한 시간으로 여긴다면, 수연이는 학교에 새집을 짓고 연구를 하고 번식률을 확인할 기회로 활용합니다. 동아리는 활동이 있어야 운영되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들도 수연이 의견에 따르고 맡기는 편이죠. 이외에도 ‘학생’으로서 따라야 하는 학교 시스템 안에서 자원을 만들고 관심사를 지속해가는 수연이의 영리함을 엿볼 수 있는 대화를 살펴보세요.



기왕이면 새를 볼 수 있는 학교에 가자.

새는 주변에 산이 있어야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뒷산이 있는 학교로 골랐죠. 찾아보니 학교 이사장님이 새를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그래서인지 학교 입구엔 이사장님이 찍은 새 사진이 걸려있고 나무마다 새집이 달려있었어요. 뒷산으로 새를 보러 갈 때 친구들에게 비유하기를 ‘너희들이 동대문에 우리 애들 콘서트 보러 갈 동안 나는 뒷산에 우리 새들 콘서트 보러 간다.’고 하죠. 학교 곳곳에 최애 직캠이 걸려있고 심지어 이사장님과 같은 팬덤이예요. 얼마나 좋은 학교예요.


물론 학교에 다니는 건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시험 기간에 야자를 하면 학교에 귀속된 시간이 많아져요. 제약이 많죠. 새 보려고 자퇴하고 홈스쿨링 하는 애들도 많아요. 제 성격상 나태해질 것 같아서 제 선택으로 학교에 다녀요. 새들이 자주 활동하는 시간에 교실에 있지만 쉬는 시간이나 열람실을 가는 길에 산 가까이에서 소쩍새를 보는 것도, 등굣길에 몇 마리의 까치를 보는 것도 탐조예요. 계속 새를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공부에 파묻히지 않고 새를 지금까지 좋아할 수 있었죠. 이런 상황에 양가감정이 들지만 역시 둘 다 놓지 못해요.



동아리는 나의 독무대

학교 안의 생물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학생부종합전형을 노리는 학생들이 많이 몰려 이과에서 가장 인기 많은 동아리예요. 저도 첫 계기는 다른 친구들과 같았지만 지금은 새 관련 활동도 많고 선생님도 열정적이라 재미있어서 해요. 의대 가려는 친구들이 많아서 생태학 관련 발표나 새집 달고 번식을 지켜보는 것까지 제가 혼자 다 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새로운 일을 제안하고 책임집니다. 그 덕분에 더 과감하게 해볼 수 있죠.


보고 싶은 책은 학교 돈으로 보자

보고 싶은 책은 독서지원금을 신청해서 구매하기도 해요. 정보도 얻을 겸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며 사서 선생님께 눈도장을 찍어뒀죠. 주문도서 목록은 저만 쓰는지 중학교 졸업할 때는 자연과학서 쪽이 새 관련 책으로 도배가 되어있었어요. 선생님이 허락해줄 만하신 코드를 잘 파악하는 게 되게 중요한데, 학교에서 새를 촬영하거나 새가 목욕할 얕은 연못과 모이대를 만들기 위해선 허락을 받아야 해요. 이때, '학교 홍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처럼 말을 잘 포장해서 학교의 지원을 받는 편이에요.



Z세대인 수연이는 성장하는 시기에 늘 똑똑한 도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2009년 7살이었거든요. 덕분에 SNS 환경에도 익숙하며 탐조 활동을 기록하는 데에 활용합니다. 특히 스마트 폰과 트위터 조합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닐 수 없어서 스마트폰을 쓰고, 진득하니 글을 쓸 시간이 별로 없는데 140자에서 280자 만으로도 불특정 다수에게 알릴 수 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각 플랫폼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새 둥지를 설치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찾는 연구를 위한 데이터는 공책에 기록합니다. 공간마다 습도를 기록하고 쌓아가고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알리는 것보다 축적과 분석이 필요한 작업에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죠. 이외에도 망원경, 책 등 관심사를 지속하고 알리는 데에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수연이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세상 사람들~ 세상에 ‘이런 새’가 있어요~

페이스북은 탐험대학 친구들과 교류하기 위해서, 트위터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해요. 밖에 나가기 귀찮을 땐 유튜브로 코넬대 조류학과에서 새를 관리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기도 하죠. 특히 트위터는 한 대학의 조류동아리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개인계정을 만들었어요. 새에 대한 제 트윗이 공유되면서 새를 더 알게 되었다는 이야길 들을 때 재밌어요. 모든 사람이 새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기를 바라진 않아요. 그저 오해하지 않고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어요.


도시에 살면서 볼 수 있는 새는 비둘기와 까치가 대부분이에요. 친구들을 데리고 다녀봐도 볼 수 있는 새가 갈색이나 회색뿐이라 쉽게 흥미를 보이지 않더라고요. 예쁜 새를 보여줘야 하죠. 누구나 미에 끌리니까요. 새의 아름다움에 끌려 새 자체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많이 봤어요. 조류 관련해서 유명하신 분들은 대부분 다양한 새를 볼 수 있는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분당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새를 찾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어요. 새로운 새를 보면서 동기 부여하기엔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대신 주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새를 유심히 관찰하고 개성을 찾으며 재미를 찾는 편이에요. 이런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 해외에서 볼 수 있는 새 사진을 구글링해서 SNS에도 공유하고 있어요.


직접 탐조하는 것도 주로 트위터에 올리는데, 학교에 맨날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순 없으니 가진 건 스마트폰이고 가장 빨리 알릴 수 있는 게 SNS죠. 진득하게 글을 쓸 시간이 별로 없는데 트위터엔 140자에서 280자 만으로도 불특정 다수에게 알릴 수 있으니까요. 학교에선 와이파이가 열람실 쪽에만 되는지라 임시저장해두고 집에 와서 기록과 사진을 올리고 있는데 이게 쌓이면 탐조기록이 되더라고요. 이제 수기보다는 온라인으로 쓰는 게 편해요. 물론 가끔 수기가 더 빠를 땐 노트를 쓰지만 탐조 수기를 쓰는 방법도 상황에 맞게 바뀌는 것 같아요.


‘관심사'는 전공, 직업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10대에게 관심사는 앞으로의 진로를 그리는 데에 당연하게 떠올리는 선택지 중 하나죠. 수연이는 고등학교 다음 단계로 대학을 선택할 예정입니다. 대학에서 새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지식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죠. 대학 이후의 삶 역시 ‘새'와의 관련성을 놓지 않고 탐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새 연구자가 될 거예요.’가 아닌 자연사 박물관 큐레이터, 1인 크리에이터 등의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하는 모습이 마치 언제든 방향키를 돌릴 수 있는 선장처럼 보였어요. 여러 방향은 어디서 온 걸까요?



유망하다고 뛰어드는 것은 배부른 생각이죠.

제 미래를 생각해보면, 대학에 가서 생물학 전공을 하는 것뿐이에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공대를 가야 할 바엔 철학과를 갈래요. 순수한 지성을 탐구하는 게 저는 재밌더라고요. 새를 예술, 문학, 사상의 소재로 써온 생각도 엿볼 수 있고요. 또, 이미 많은 사람이 공학으로 뛰어드는 데 저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유망하다고 뛰어들어야 하나요? 배부른 생각 같아요. 그러면서도 저는 메디치 가문 사람도 아니어서 탐험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 타협안을 찾아봤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밥벌이를 할지 고민하다가 생태원, 생물자원관, 수목원, 자연사 박물관 큐레이터, 1인 크리에이터로 탐조하는 걸 찍는 유튜버, 수의사 같은 선택지를 발견했죠.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떻게 일을 시작했는지 물어봤어요. 아니라면 개인 연구 같은 방법이 있을 텐데 이왕이면 직업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라면 책을 써서라도요.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면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즐겼는데 돈이 들어온다는 불로소득 같은 거죠.


다양한 종을 발견하고 지키기 위하여

저는 내 눈앞의 몇몇 새를 지키기보다 ‘생물 종’을 지키고 싶어요. 자연과학을 하면 일상에서 생각이 쌓이면서 확장돼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죠. 내가 보호하고자 했던 활동들이 새에게 실례이고 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늘 기억하고 있어요.  학문적으로도 다양한 종이나 생태를 확장하면서 본질적인 조류 해부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진화 생물학처럼 특정 종이 아니라 본질적인 생물로서의 새를 파 내려가는 중이에요.

진로, 진학 말고 꼭 참여하고 싶은 이벤트가 있어요. ‘버드 카운터(bird counter)’인데요.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지역에서 탐조하고 발견한 새들을 리포팅하는 대회인데, 새에 미친 사람이 모여요. 저도 이곳에 꼭 가보고 싶어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요. 한국에서는 거의 대학 동아리로 운영되거나 너무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어른들로 구성된 커뮤니티가 대부분이에요. 저는 참여할 수가 없죠. 버드 카운터에 참여한다면, 기간 동안 참가자들과 교류하며 발견한 새, 장비, 리포트 같은 것들을 공유할 시간이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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