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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Oct 16. 2019

삶에서 꼭 가져갈 단 하나의 주제

성 고정관념을 파헤치는 18세 김수연

<Who’s Next?> 네 번째로 만난 10대는 김수연(이하 수연)입니다. 온더레코드가 생기고 거꾸로캠퍼스가 온에어에 자리한 이후로 이웃처럼 지냈죠. 거꾸로캠퍼스에 다니는 학생은 시험 대신 자신이 깊게 탐구하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한 학기에 두 번 e-book을 만들어 배움을 증명합니다. 주제를 매번 바꾸며 흥미를 찾는 학생도, 하나의 주제를 쭉 끌고 가면서 관심사가 깊어지는 과정이 보이는 학생도 있습니다. 수연이는 후자였죠. 젠더 이슈가 많았던 2018년, 성평등을 주제로 쓴 e-book을 시작으로 성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 문제를 해결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지금까지 단 하나의 주제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연이의 방법은 특별합니다. 주제 범주 안에서 다른 키워드와 다른 형식의 콘텐츠로 매번 다르게 주제를 담아내기 때문이죠.


내 주제의 시작은 주변의 촉을 세우는 데서 

제가 성 고정관념에 주목하게 된 건 2018년 SNS를 통해 젠더와 관련한 사건과 이슈가 많이 퍼질 때였어요. 지금, 미디어는 자료조사를 할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떤 언어나 행동이 성 고정관념에서 출발한 것인지 확인시켜주고 제 관심사를 떠올려주는 도구이기도 해요. 학교에서 학생이 탐구해야 할 개인 주제를 정해야 한다고 했을 때 하고 싶은 것은 곧 궁금한 것이더라고요. 젠더 이슈를 보며 처음에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이야기하는 건지 궁금했어요. 점차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차별의 언어를 알면 알수록 살면서 생각해 보지 못했을 뿐 일상에서 아무렇게나 듣던 말이었어요. 계속 새로웠죠. 저 자신에서 주변까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데다 어디에나 있어요. 한 번 차별의 언어나 행동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모른 채, 관심 없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며 계속 공부하게 돼요. 나이를 먹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도 성 고정관념을 마주할 거예요. 섣불리 남녀의 역할을 정의하거나 잘못된 칭찬을 하는 경우를 발견하죠. 축은 젠더에 있지만 본질은 결국 고정관념이에요. 삶에서 계속 가져가야 할 주제죠.


주제를 담는 그릇의 모양은 정해져 있지 않아

성평등과 양성평등 두 가지 단어 중에서도 더 넓은 의미의 젠더를 포함할 수 있는 성평등을 택해 한 모듈 동안 파헤쳤죠. 그러다 다른 주제로 잠시 눈을 돌린 적이 있는데, 역시나 떠나보니 성평등이라는 주제로 돌아와야겠더라고요. 돌아와선 마녀사냥을 주제로 e-book을 썼어요. 당시엔 여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깊이 살펴봤어요. 이어서 제가 집중하고 있던 젠더 이슈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을 모아 어린이 애니메이션 75개를 분석하는 팀 프로젝트를 했어요. 만화를 방영하는 주요 채널들의 방송 편성시간표를 보고 홈페이지의 캐릭터 소개로 들어가 한 작품에 남, 여 캐릭터의 비율은 어떤지, 주인공은 누가 맡는지를 살폈죠. 역시 주인공이나 한 작품에 차지하는 캐릭터의 비율은 남자가 많았고 여성이 다수인 만화는 적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만화를 보며 성 고정관념을 익힐 수 있겠다는 생각을 결과로 확인한 거죠.


다음 세대를 만나온 지난 인터뷰에서 공통으로 물었던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관심사를 지속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과 제약이 되는 것은 무엇 일지요. 공간, 사람, 도구, 시간의 카테고리를 주고 생각을 물으면 공간은 학교가, 시간은 입시가 빠짐없이 등장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거꾸로캠퍼스를 선택한 수연이는 원하는 경험을 하고자 하면 제약이 없는 교실에서 개인 주제를 탐구하고 팀 프로젝트를 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쏟습니다. 지난 모듈에는 성 고정관념에 대한 생각을 대화록으로 담은 책을 독립 출판하기도 했죠. 그런 수연이에게도 제약이 되는 것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 답은 의외로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습니다. 어쩌면 관심사를 이어가는 데에 환경의 제약을 없애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제약과 도움이 되는 요소가 이루는 균형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거꾸로캠퍼스라는 한계가 없는 공간

성 고정관념에 집중할 수 있는 건 거꾸로캠퍼스라는 공간 덕이죠. 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마음껏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교실이 없었다면 관심이 뉴스 기사 하나를 읽는 것으로 끝났을 일들이 개인 주제로 더 알아보고 깊게 생각해보다 보니 책까지 출판할 수 있었어요. 거꾸로캠퍼스를 나가더라도 언제든지 찾아와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제한도 한계도 없는 공간이에요. 제 관심사의 시작부터 개인 주제에서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해보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분기점을 넘는 지금까지 지켜봐 온 사람들이 있죠. 누구보다 저를 잘 이해하고 있어요. 주제를 바라보는 제 시선과 목표, 욕심을 알고 있으니 때에 맞는 기회를 제안해주고 레퍼런스를 소개해주며 제가 미처 다 보지 못하는 시선과 의견을 던져주죠. 다음 단계로 가는 초록 신호를 켜주는 사람들이에요.


두려움을 이길 경험이 필요해

제게 성 고정관념이라는 주제를 이끌어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부족한 경험이에요. 거꾸로캠퍼스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사회에선 적은 편이기 때문에 직접 겪은 사례의 깊이도 경험도 부족해요. 책에는 10대부터 30대까지 일기의 형태로 성 고정관념을 느낀 순간을 재구성해 모았는데, 사실 20대와 30대는 인터뷰를 통해 받은 사례일 뿐 직접 겪었던 건 아니어서 공감을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의견을 듣고 싶어요. 단순히 자료조사를 하면서 책상에 앉아 추측하기보다는 사람마다 다른 경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 고정관념과 관련하지 않더라도 얼른 거꾸로캠퍼스 밖의 사회의 경험치를 쌓고 싶기도 해요. 거꾸로캠퍼스는 한계가 없지만 여전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안전한 학교 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 집단 안에서 성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검사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거꾸로캠퍼스에서 시작할 예정입니다. 다른 집단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땐 세상으로 나갈 거예요. 여전히 SNS나 뉴스에서 페미니스트를 부정적으로 칭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의 반응은 두려워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 이면에 제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가 욕을 동반해 공격과 해를 입는 일이 될까봐요. 아직 방어할 솔루션이 없거든요.


결국은 내가 하는 일이니까

나중에 극복하면 관심사를 지속하는 걸 방해하는 다른 제약들이 나타날지도 몰라요.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어 두려움이 줄어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여전히 존재할 테니까요. 제 스스로에게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게 과제죠. 그러려면 남의 이야기만을 쌓기보단 제 안에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야겠더라고요. 그리고 학교 밖에서도 이런 제 생각을 지지해주는 동료의 존재가 가까이에 있다는 게 필요해요. 강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약하게 느껴지는 게 의지니까요.


학기를 시작하거나 마칠 때가 되면 받았던 종이엔 장래희망을 쓰는 란이 있었습니다. 다시 들춰본 성적표에도 ‘내가 이런 꿈을 가졌었나’ 싶은 직업들이 칸을 차지하고 있죠. 부모님의 희망 직업도 함께요. 당시 장래희망의 개수를 세어 통계를 낼 수 있을 만큼 종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해 유행했던 드라마의 직업을 너무 많이 써서 다시 써오라고 돌려받기도 했죠. 장래희망은 직업과 동의어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수연이의 답은 조금 달랐습니다. 장래희망을 척척 써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하고 싶은 게 없던 수연이는 이제 빈칸에 이루고 싶은 목표와 달성하기 위한 방법들을 적어 내려갑니다. 하고 싶은 건 여전히 정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


미래를 묻는 질문을 바꾸다

거꾸로캠퍼스 입학설명회를 왔을 때 이 학교에서의 경험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도, 진로도 명확하게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부모님도 제가 원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기를 바라며 추천해주셨던 거고요. 하지만 아직도 장래희망을 적을 수는 없어요. 대신 성 고정관념이라는 삶의 주제를 찾았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때 이루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나갈 거예요. 특정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 대학을 선택하고, 원하는 경험을 하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는 거죠. 막연히 정해진 선택지를 쫒기보단 제가 만든 목표점을 가지고 결정할 거예요.


지금은 설명해야 하는 문장들이 당연해지기를

성 고정관념이라는 주제는 궁금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엔 재미있어 보였던 주제가 재미없어지는 시점에도 결국 다시 재미를 찾고 이어나갈 수 있었죠. 과학과 수학은 때론 흥미롭고 궁금하지만 둘 다 높은 수준으로 충족된 적은 없어요.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설득을 시도하면서 이어가다 보면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점차 줄여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럼 지금은 부정당하는 이야기들이 당연한 진실이 되어있을지도요. 지금의 프로젝트의 끝이 아닌 제 관심사의 끝은 그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 글.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황혜지


'세상의 변화에 필요한 배움은 무엇일까?'질문에 대한 세 번째 답 'Who's Next?'는 다음 주 수요일 마지막편으로 찾아갑니다. 연재 이후 이어질 다양한 다음 세대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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