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류 Jul 24. 2022

잊을만하면 한 번씩 추억 소환하는 야속한 페이스북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

IT 개발자에서 디저트 사업으로 전향해 성공한 J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같이 공부하고 기술을 익힌 동기 하나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선 자신을 험담한다는 것이 고민이라 했다. 모른 척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볼 사람이라 한 번 들은 이야기는 계속 가슴에 남아 자신을 괴롭혔다. 그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전해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편히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도 J처럼 같은 고민으로 괴로웠던 적이 있었기에 J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처럼 들렸다. 난 그런 J가 안쓰러워 이렇게 얘길 건넸다.


“험담은 숨 쉬는 것과 같아요. 사람이면 누구나 숨을 쉬는 것처럼 험담도 당연한 일이에요.” 무덤덤하게 건넸지만 J에게 내 얘기가 들릴 리 없었다. J는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한 때 나도 험담에 시달렸던 때가 있었다. 좋아하던 사진을 업으로 시작하고 동호회에서 알게 된 H와 동업을 시작했다. H 지인에게서 시설 투자도 받았다. 여태 프리랜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 둘만의 아지트가 생긴 것이다. 호리존 페이트 칠도 같이 하고 소품도 사러 다니고 컴퓨터와 장비도 새로 들이면서 행복한 때를 보냈었다. 출발이 좋았다. 스튜디오 오픈과 동시에 일도 자연히 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개월 뒤 예상치 못한 메르스가 터졌다. 당시 중국 행사 촬영이 주요 일거리였던 난 큰 타격을 입었다. 매달 10건은 기본으로 촬영하던 일이 하루아침에 0건이 되었다. 당연히 수입도 0원. 메르스는 많은 이의 발도 묶고 내 발도 묶었다.


투자자에게 월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한 지 3달 만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스튜디오 계약 기간은 아직 10개월도 더 남은 상황이었다. 수입은 둘째치고 월세라도 내려면 당장 뭐라도 해야 했다. 메르스만 아니었다면 월세를 내고도 200만 원 이상은 가져갈 수 있었겠지만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바이러스의 공격이 끝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행사 촬영 대신할 수 있는 프로필 촬영을 시작했다. 연락처에 있는 모든 연락처로 광고했다. 스튜디오 오픈했으니 프로필 촬영하러 오라고. 고맙게도 몇 명이 프로필 촬영을 의뢰해주었다. 덕분에 잠시지만 수입을 챙겼고 그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결국 해결책은 하나였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스튜디오를 접는 것. 난 H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H는 투자자와 관계도 있었기에 접는 것은 안된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한배를 타기로 결정했기에 계약 기간까진 어떻게든 버텨보자며 나 또한 버티기를 선택했다. 계약기간을 채웠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난 다시 혼자가 되기로 했고 H는 남기로 했다. 운 좋게 얼마 뒤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조금씩 안정을 찾던 내게 어느  스튜디오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H  며칠 연락이  되며 잠수   같다는 얘기였다. 급한 촬영이 2건이나 있는데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했다. 가능하면 대신 촬영해  요청받았다. 급한 불은 꺼야 하니 2  1건은 내가 대신 처리했다. 처리  H에게 전활 걸었지만 H  전화도 받지 않았다.  사건 뒤로 H 몰래 도망을 택했다. 더는 혼자 버티지 못했기에 선택한 결과라 생각한다. 또한 나는 H에게 각종 소셜 미디어 채널에서 접근 차단당했다.  


1년쯤 뒤, 이상한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렸다. 내가 H의 일을 모두 뺏어갔다는 얘기였다. 황당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사진으로 연을 맺은 사람들과 모든 관계는 끊어졌다. 난 그 세계에서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나와 연락을 주고받은 C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처음엔 황당했고 다음엔 당황스러웠으며 마지막은 편안했다. ‘내가 H에겐 이런 존재로 비쳤구나.’ 변명하고 싶었지만 변명한다고 끊어진 관계가 다시 붙는 것도 아니라 그렇게 마음을 접었다. 끊어질 관계였으면 끊어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험담의 사례는 인터넷 세상에도 차고 넘친다. 네이버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엔 기발한 상상이 펼쳐져 있다. 방구석에 앉아 키보드만 잘 두드리는 천재들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친히 까는 일을 대단하게 해내고 계신다. 더욱 놀라운 것 이런 험담이 주로 베스트 댓글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왜 다들 워런 버핏을 현자니 뭐니 치켜세우는지 이해가 안 돼. 그 사람 그냥 주식해서 돈 번 사람 아닌가. 개미들 피 빨아먹는 투기꾼일 뿐이야.’

‘사실 아이폰을 만든 건 스티브 잡스가 아니지. 잡스는 진짜 천재인 워즈니악한테 빨대 꽂은 인간이지.’

‘빌 게이츠? 그저 운이 좋아 프로그램 하나 만들고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잖아.’


그들은 험담으로 당장의 행복을 산다. 하지만 공부하지 않는 주식쟁이가 그렇듯, 그들의 추락은 불 보듯 당연한 일이다. 당장의 험담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줄지 몰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한다. 결국 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떠나게 된다. 그들에겐 항상 변명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부모가, 시대가, 적성이, 성격이, 상황이, 건강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핑계 뒤로 숨는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진짜 원인을 본인은 한사코 외면하고 만다. 색안경을 벗지 않는 한 삶이 늘 제자리걸음인 이유와 같다.


일본의 심리학자 시부야 쇼조에 따르면, 타인을 깎아내리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사람은 사실 칭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험담은 내가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간절하게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발생하며 상대방을 험담으로 내리찍어 자기 수준으로 격하시켜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험담은 가장 흔한 복수다. 하지만 험담은 이야기를 꺼낸 사람에게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험담을 꺼낸 사람은 착각한다. 자신이 깎아내린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한 존재에 있다고. 듣는 사람은 험담을 꺼낸 사람을 절대 우위에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말 한마디엔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 전부가 들어있는데 험담하는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험담은 사실 내 평판이다.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진리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내 모습이다. 남들에게 난 여태 그렇게 비치고 있었다는 뜻과 같다. 평소 태도가 어정쩡하다거나, 행동이 갑갑하다거나 한 순간들을 잘 관찰하고 기억한 이가 사석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며 꺼내는 이야기니까.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험담은 팩트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니 험담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외면하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내가 여태 이런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해 주니까. 잘 새겨듣고 바꾸면 된다.


진짜 친구는 앞에서 진실을 말하고 가짜 친구는 뒤에서 험담한다. '너 살 많이 쪘어. 건강도 안 좋아 보여, 술 좀 그만 마셔. 너 그 행동 보기 안 좋아'라고 과감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하는 이도 있다. 내가 잘못하면 '그런 행동은 이기적이야'라며 콕 짚어 충고하는 이가 있는 반면 내 뒤에서 나를 까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어딜 가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꼭 있기 마련이다.


험담을 당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물 흐리기를 일삼는 이들에게 아까운 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는 건 낭비다. 그들이 사는 방식은 내가 어찌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렇게 살라고 내버려 두고 나는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하면 그만이다. 가짜 친구 곁에 있느니 차라리 혼자가 되는 편이 낫다. 내 감정을 소모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관계는 없으니까.


페이스북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잊고 싶은 기억을 상기시켜준다. 좋은 추억만 공유해주면 좋으련만 지우고 싶은 추억도 공유시켜준다. 페이스북이 가끔 야속하고 고마운 이유다.





이전 02화 잊지 못할 웨딩카 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