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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Jun 04. 2022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 20초 민망한 순간

승기야 미안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진구의 결혼식 날 사고를 쳤다. 대형 사고였다. 잊을래야 절대 잊을 수 없는 20초의 민망한 사고가 의도치 않게 일어났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 일어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났다. 사고는 축가 중 발생했고 정확히 걸린 시간은 20초다. 


축가로 준비한 곡은 국민 남동생 이승기의 ‘나랑 결혼해 줄래.’다. 노래방에서 100번도 넘게 부른 곡을 축가 때문에 다시 100번을 더 불렀다. 가사는 예전에 이미 다 외웠고 눈감고도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만들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꿈에서도 축가를 불렀고 잠꼬대로도 축가를 불렀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백업 플랜까지 만들었다. 백업 플랜은 악보 준비였다. 모든 곡을 외워 부르던 고등학교 중창단 출신인 내게 악보 준비는 사실 수치였다. 그렇지만 단 한 번뿐인 웨딩 축가를 망칠 수 없었기에 수치심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악보를 준비했다.


결혼식 시작 2시간 전에 식장에 미리 도착해서 리허설을 했다. 사운드를 체크하고 동선을 확인했다. 머릿속으로 식순을 그리며 축가를 성공적으로 부르는 장면을 계속 그렸다. 결혼식 시작 1시간 전, 양가 어머님에게 식순을 설명하는 시간을 틈타 나도 동선을 따라 축가 무대에 서는 리허설을 했다. 결혼식을 하는 당사자들보다 내가 더 열심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난 자리에 앉아서 악보의 가사를 보고 또 보면서 계속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식장에 도착해서만도 족히 50번은 넘게 불렀다. 목이 쉬지 않도록 연신 물을 조금씩 마시며 준비를 했다. 준비는 완벽했고 자신 있었다.


혼인 서약이 끝나고 사회자가 ‘축가’ 순서임을 알렸다. 앞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절도 있고 당당하게 축가 무대에 올랐다. 연습한 대로 피아노 옆에 자리했고 사회자 뒤편 웨딩 관계자에 고개로 신호를 보냈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나랑 결혼해 줄래’의 시작은 기타 스틱으로 ‘탁, 탁, 탁, 탁.’ 네 번이 다다. 만약 사운드가 작거나 내가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특별히 첫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웨딩 관계자에게 처음 부분만 볼륨을 최대치로 키워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식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웅성웅성 소리에 혹여나 놓칠까 봐 했던 염려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 조명 하나가 켜졌다.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름이 느껴진다. ‘탁, 탁, 탁, 탁.’ 정확히 내 귀에 들렸다. 100번 연습했던 실력을 뽐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탁, 탁, 탁, 탁, 나랑 결혼해 줄래, 나랑 평생을 함께 살래? 우리 둘이 알콩달콩 서로 사랑하며.”


완벽한 시작이었다. 사운드 밸런스도 너무 좋았다. 처음엔 내 목소리 하나만 시작해서 어색했지만 이윽고 합쳐지는 MR이 노래의 분위기를 더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 그냥 쭉 가기만 하면 대성공이다. 첫 소절을 끝내고 두 번째 소절도 그렇게 밀고 나갔다. 


“나 닮은 아이 하나, 너 닮은 아이 하나 놓고, 천년만년 아프지 말고 나 살고 싶은데.”


‘다음 뭐지? 다음 가사 뭐냐고? 뭐?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다음 가사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이 아니 목소리가 더 나오질 않았다. 얼른 악보를 쫓았다. 그런데, 그런데, 악보가 보이질 않았다. 준비한 악보가 스포트라이트 반사되어 하나의 점으로만 보였다. 앞이 막막했다.


100번의 노래 연습으로 앞부분 30초까지는 문제없이 끌고 왔는데, 내 기억력은 정말로 30초가 고작이란 말인가. 신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망신도 이런 개망신을, 그것도 제일 친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나를 모르는 300명의 하객 앞에서 말입니다. 귀에서 ‘삐~’ 소리가 계속됐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널 더 좋아해.)”


 결국 세 번째 소절이 목소리 없는 MR만 나오는 상태로 지나가고 있었다. 신을 원망해도 가사는 떠오르지 않았다. 악보도 여전히 보이질 않았다. 쥐구멍이 있다면 어디든 뚫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민망했다. 몸의 털이란 털은 최고의 경계 태세를 갖추고만 있었다. 나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고 동공은 멍한 상태로 하염없이 진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그게 좋다고 하던데)”


진구의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휘자가 합창단을 지휘하듯 손으로 노래의 흐름을 지휘하고 입으로는 노래 가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혼자 노래에 심취해 내가 그걸 보질 못했는데 그런 그의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짝, 짝, 짝, 짝.”   


귀에서 나던 ‘삐~’ 소리가 멈추고 박수 소리가 들렸다. 하객들이 노래하는 가수를 응원하듯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박수를 듣자 몸이 반응했다.


“내가 더 사랑할게, 내가 더 아껴줄게. 눈물이 나도 힘이 들 때면 아플 때면 함께 아파할게~.”


축가가 잘 끝났다. 딱 20초 정막의 순간만 빼고 말이다. 정장 안의 입고 온 흰색 와이셔츠는 땀에 다 젖어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축축한 회색. 딱 내가 그랬다. 축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민망함에 옷도 벗지 못하고 예식을 끝까지 지켜봤다. 


20초, 20초만 오늘에서 삭제하고 싶었다. 어찌 내게 이런 평생 잊지 못할 실수를 하게 만드셨나이까. 신이시여. 할 수 있는 건 원망뿐이었다. 미안함에 단체 촬영까지 할 자신이 나지 않았다. 의자 옆에 가로누워 사라진 척 연기하고 있었는데, 사진 촬영 기사가 나를 불렀다.

“아까, 축가 하셨던 분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어디 계시죠?”


이건 나를 두 번이나 죽이는 행위였다. 조용히 이대로 있으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었는데 사진 촬영 기사가 그걸 막아선 것이다. 와, 하루에 두 번이나 이런 경험을 하다니. 결국 나는 진구의 하객들에게 평생 각인을 한, 단 한 사람이 되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1달쯤 지나 진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진구는 힘내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그러데, 일부러 연출까지 하고 대단하다며. 많은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그런 연출은 본 적이 없다며.’라고 하객들이 소감을 전하더라고.  


“미안하다. 친구야. 한 잔 하자.”


그 뒤로 나는 축가를 다시는 부르지 않았다. 축가 요청은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내 생에 축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초등학교 동창 철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날짜 잡았어?”

“뷔페.”

“응?”

“너 좋아하는 뷔페.”

“축하해. 언제야?”

“9월 4일 저녁 6시야. 축가 좀 불러 줄 수 있어?”

“........ 어?”

“너 원하는 거 다 해줄게.”

“원하는 노래 있어?”

“없어.”

“그래?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전화할게.”
 
10년간 피했던,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축가 의뢰를 다시 받았다. 난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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