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디 연대기
인터넷 세상이 시작되면서 두 번째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본명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이지만,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디'라는 두 번째 이름은 나에게 큰 설렘을 주었다. 덕분에 아이디 하나를 만드는 데 꽤 신중했고, 오랜 시간 고민하게 되었다.
첫 번째 아이디를 만들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지금이야 검색이 자유로운 시대가 되었지만, 내가 처음 아이디를 만들던 시기에는 검색이란 직접 사전의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었다. 아이디를 만들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방문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멋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책들을 참고하고자 했다. 책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멋진 단어 하나만 얻으면 되었다. 도서관을 천천히 둘러보며 책 제목을 훑기 시작했다. 끌리는 제목이 보이면 책을 펼쳐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아냈다.
첫 번째 아이디는 ‘카타르시스 katarsys’였고, 당시 친구는 ‘모피어스’라는 아이디를 만들었다. 내 아이디는 뭔가 저렴해 보였지만, 친구의 아이디는 고급스러웠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이름처럼 느껴졌다.
‘katarsys’는 영어 단어 'catharsis'를 변형해 만든 것이다. 원래 'catharsis'로 하고 싶었지만, 이미 사용 중이라 변형했다. 카타르시스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문학에서 비극 속 연민과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이 정화되고 쾌감을 느끼는 일. 둘째는 자신이 직면한 고뇌를 표출해 강박 관념을 해소하는 일. 사실 이건 최근에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만들었을 땐 그냥 ‘쾌락’이라는 의미만 담겨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심오한 뜻이 있는 줄 알고 혼자 기뻐했다.
첫 번째 아이디는 그렇게 탄생했다. 친구들끼리는 서로 아이디를 물어보고 놀리는 게 일이었다. “너랑 어울리지 않아”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군가 아이디를 물어볼 때면 대답이 여전히 쑥스럽다. 멋지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쉬움이 항상 남아 있었다.
아이디로 불릴 때마다 나는 이상한 힘을 얻었다. 현실에서 주어진 이름보다 내가 만든 이름이 더 좋았다. 아이디는 또 다른 분신이자 대변인이었고, 그래서 나도 아이디처럼 살려고 했다.
첫 번째 아이디에 익숙해지고 지칠 즈음, 두 번째 아이디를 만들었다. 두 번째 아이디는 ‘불태우리라 bulteulila’였다. '아낌없이 불태우고 살자'는 의미를 담았다. 그래서일까, 30대가 되기 전까지는 쾌락을 좇아 방황했고, 30대가 된 후에는 아낌없이 불태우기 위해 더욱 쾌락을 좇았다.
40대가 된 지금, 나는 ‘오류 Oryu’라는 아이디를 만들었다. 나의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해 보자는 뜻에서다. 어릴 적에는 왜 그런 아이디를 만들었냐고 물었을 때 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다섯 가지 버전의 설명을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로 이렇게 묻는다.
“혹시 오류 동에 사세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느낌이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제는 안다. 노래방에서 노래할 때 남의 노래에 관심이 없듯, 사람들은 나에게도 그리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도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그냥요”라고 대답하고 넘어간다.
아이디에는 어떤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름은 주어지지만 아이디는 내가 만든다. 그렇게 만든 아이디를 따라 삶이 흘러가는 것 같다. 물론,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디에 값을 치렀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하며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었고, 그 안에는 불순한 의도와 잡생각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불순한 효모와 잡균이 향기로운 빵을 만들듯, 나도 그런 불순함을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발효가 이루어진다. 내 안의 불순함과 잡생각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내 안의 발효가 일어나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