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잘 써지는 장소는 따로 있다 3

버스에서 술술 써지는 글쓰기

by 오류 정석헌

앞서 쓴 두 편의 글들에 반응이 좋아서, 3편을 준비했다. 이전 글을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은 본문 제일 하단에 링크를 살펴보시길.


글이 잘 써지는 장소는 따로 있다. 정말이다. 나의 두 번째 책인 <<인생은 살사처럼>>을 오늘 소개하는 방법으로 초고를 완성했으니까. 오늘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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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꼭 책상에서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책상에 앉아야만 써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마다, 써지는 환경이 전부 다르다.


영화 <더 킹>에는 주인공 태수(조인성 배우)가 사법 시험에 합격한 공부 비법이 나오는데 혹시 기억하시는지? 그 비법은 바로 책상을 벗어난 공부였다. 태수는 책상에 앉기만 하면 졸려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롤러스케이트장에만 가면 정신이 맑아지고 명료해졌다. 하루는 공부는 하고 싶은데, 롤러스케이트도 타고 싶다는 자신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는데, 그때 친구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여기서 공부해 부러.'


태수는 그 말에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내 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이게 웬 말인가. 책상에서는 그렇게 안되던 공부가 여기서는 그렇게 잘 될 수가 없었다는. 글쓰기도 그렇다. 책상에서 안 써진다면 굳이 책상에서 쓸 필요가 없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홍대 보니따 살사바에도 태수와 비슷한 사례를 목격했다. 그분의 직업은 수학 선생님 같았다. 추정이다. 하지만 근거는 있다. 왜냐하면 살사바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계셨으니까. 처음엔 학생인가 했다. 그런데 거의 나와 동년배처럼 보여서 아닌가 했다. 또, 계속 수학 문제집만 푸는 걸로 봐서는 수학 선생님이 분명하다는 게 나의 추측이자 결론이다.


태수처럼 그분도 그랬다. 살사바는 오고 싶고 수학 문제집은 풀어야 하는 고민을 했을 터. 그분은 자신이 둘 다 좋아하는 것을 한 장소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그분도 영화 <더 킹>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몸소 실천하고 계셨다.




나도 비슷하다. <<인생은 살사처럼>>의 초고를 시원한 곳에서 썼다. 책상에서 쓰지 않았다. 에어컨이 바로 머리 위에 있고 사람들의 시선도 느낄 수 있고 주변 풍경도 감상할 수 있는 곳. 바로 버스다. 버스 맨 앞자리, 혹은 맨 뒷자리는 글이 잘 써지는 의외의 장소다.


버스의 장점이 무엇인가? 날씨의 변화에 맞게 에어컨을 틀어주고, 히터를 틀어주는 곳 아닌가. 뿐만 아니라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주변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적당한 사람들도 있다. 1석 3조의 효과가 아닐까. 글을 쓸 때 반드시 필요한 환경이 자동으로 세팅되는 곳이 바로 버스인 셈이다.


지금처럼 무더웠던 여름날이었다. 내가 살사를 시작한 시점도 7월이었다. 살사바에서 기분 좋게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의 티셔츠는 절반쯤 땀으로 젖어있는 상황. 때마침 5712 버스 제일 앞자리에 운 좋게 앉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집까지 이동 시간 30분. 멀뚱멀뚱 있자니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수업 영상을 복습하자니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난 브런치 앱을 켜고 오늘 있었던 살사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두 편씩 글을 쓰다 보니 금세 40편의 원고가 완성됐다. 한글 A4 기준으로 78페이지에 달하는 원고였다. 그리고 운 좋게 샘터 출판사와 계약했다.


애초부터 책을 염두하고 쓴 원고가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에게 살사라는 취미 생활을 알려주고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그런데 살사 원고를 쓰면서 어느 카페에서 브런치 원고 연재를 부탁하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한 곳이 아닌 무려 두 곳이었다. 그래서 초고가 완성될 즈음에 혹시나 하고 투고를 해봤던 것. 그렇게 출간 계약을 했다. 물론 계약 후에 퇴고는 책상에서 열심히 7번 했음을 밝힌다.




또 있다. 매력 글쓰기 참가자 중에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글을 쓰신다는 김*미 작가님. 적당히 흔들리는 지하철, 적당한 소음, 적당한 사람들. 버스 못지않은 글쓰기의 최적의 트리거(Trigger)다. 그 틈에서, 그 공간에서 의외로 글이 잘 써진다는 후기를 남겨주셨다.


그러니, 책상에서 글이 안 써진다면, 책상을 과감히 벗어나보자. 태수처럼, 살사바의 수학 선생님처럼, 나처럼. 글은 꼭 책상에서 써야 써지는 게 아니란 걸 몸소 경험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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