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란 Aug 20. 2023

방울토마토, 가지, 진딧물

4월로 기억한다. 방울토마토와 가지를 심었다. 둘은 커다란 플라스틱 화분을 마치 땅인양 살았다. 그들은 아파트 복도에 살았다. 낮에는 태양이 쏟아졌다. 키가 쑥쑥 자랐다. 초여름까지는 그랬다.


아파트 복도에 심어놓았던 방울토마토와 가지는 3개월쯤 살았다. 7월의 태양과 무더위에 지쳐 죽어버렸다. 죽은 모습은 마치 타버린 듯했다. 힘 있던 굵은 가지는 맥없이 꺾여 고개를 숙였다. 체액이 흘러나와 아파트 복도에 풀 냄새가 났다.


가지가 한창 크던 시기에 진딧물이 많이 생겼었다. 가지잎이 진딧물로 가득했다. 그들은 살아남으려고 빠르게 번식했다. 나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진딧물을 떼어내어 죽였다. 투명 테이프로 진딧물을 떼어낼 때, 가지의 가시가 손을 찔러댔다. 몇 백 마리는 죽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끊임없이 번식하여 가지의 잎을 뜯어먹어댔다. 뜯어 먹힌 가지잎이 투명해졌다. 


가지도, 진딧물도, 방울토마토도 이제는 모두 죽고 없다. 그들 삶에 가장 중요했던 태양이 숨을 앗아갔다. 물을 줘도 태양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는 모두의 숨이 끊길 때까지 그늘을 마련해 줄 생각조차 못했다. 태양은 당연히 좋은 것인줄만 알았다.


오늘도 하늘은 맑았다. 태양이 따갑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온다. 예보에도 없던 비다. 비는 살갗이 따갑도록 거세게 내린다. 화원에 있던 방울토마토와 가지 모종을 사 온 나를 책망하듯이, 살겠다고 애쓰는 진딧물을 떼어냈던 나를 원망하듯이, 태양빛이 따갑게 내리쬐듯이, 그렇게 비는 따갑게 내린다.




image: https://unsplash.com/photos/OG8L9s1bYKc

매거진의 이전글 풍속 1과 1/2단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