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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15. 2022

아, 일하기 싫다.

이럴 땐 다림질도 너무 재밌다.

자타공인 일중독 인간형에 속하는 나로서도 도무지 일하기 싫은 그런 날이 있다. 어찌 그렇게 당당하게 일중독이냐고 하냐고요?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휴일)인데 오전엔 회사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집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여하튼...


여하튼 이런 날엔 집안의 모든 일이 회사 일하는 것보다 재미있다. 평소에도 빨래(특히 개기), 설거지, 다림질 등을 재미로써 즐겨하는 나인데 이렇게 일하기 싫은 날이면 정말 더욱더 너무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금 전 빨래와 설거지는 모두 끝냈다. 결국 다림질만이 남았다. 으으 아까워서 손을 못 대겠다. 저것마저 끝내면 뭐하지?(뭘 하긴 일해야지)


다림질을 위해 남겨놓은 주름 많은 셔츠를 멍하게 보고 있노라니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나처럼 일하기 싫을 때 집안일을 하고 싶은 사람과 집안일을 해줄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플랫폼은 상호 간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의 서비스로,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로 제한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02동 203호의 A 씨는 재택근무 중 일이 너무 하기 싫어 집안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는 자기 집의 모든 집안일을 모두 마친 상태이다. 그의 잉여 '집안일 의지'는 이대로 없어지기 너무나 아까운 자원이다. 그는 기꺼이 공짜로라도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때, 102동 마주 보고 있는 103동의 305호의 B 씨는 지금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잠시 후면 외출해야 하는데 아직 세탁기는 빨래를 신나게 돌리고 있고 설거지와 청소 거리도 한가득이다. 누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는 '일싫집하(일하기 싫다. 집안일하고 싶다)'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집안일 의지가 최고조에 오른 A 씨를 (이미 쌓아놓은, 혹은 구입한 마일리지로) 부른다. A 씨는 신이 나서 B 씨의 집안일을 처리해주고 행복해한다. B씨도 역시 행복하다. 이것이 바로 윈윈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고 무엇인가? A 씨가 B 씨의 집안일을 해주면서 쌓은 마일리지는 A 씨의 집안일을 누군가 해주기 바랄 때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아끼고 아꼈던 마지막 집안 일인 다림질을 마쳤다. 자, 이제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해볼까? 하고 막상 손을 대려다 보니 귀찮아진다. 갑자기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시 스타트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쯧쯧 혀를 차던 나는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모여있는 폴더를 열고 집중하기 위해 머리를 감싸 쥔다. 아, 딱 셔츠 하나만 더 다림질하고 시작하면 좋을 텐데 하면서.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gma1zfS3_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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