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선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들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특별한 순간은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일까.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을 맛보는 일, 북유럽의 절경을 직접 두 눈으로 담는 일, 멋들어진 브랜드의 로고가 달린 명품을 입어보는 일. 이런 경험들이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어떤 평범한 풍경들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를 것도 없는데 특별할 수 있지 않을까. 박준이 펼쳐 보이는 시들은 바로 그런 평범함이 자아내는 특별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박준의 시를 사랑해 마지않는데, 그중에서도 「선잠」은 특히 더 그렇다.
시 속에서 화자와 더불어 연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우리’로 묶여서 등장한다.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다. 첫사랑일수도 있고,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을 이르는 말일 수도 있다. 관계의 초입에서 우리는 섣부름에 대해 경험한다. 나 자신의 섣부름일 때도 있고, 상대방의 섣부름일 때도 있다. 이런 섣부름이 일으키는 일들은 당혹스럽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섣부름은 평생을 걸쳐 마주하는 일이기에 비교적 견딜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섣부름에는 쉽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너를 나의 섣부름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너의 섣부름이 되게 한다. 상대방의 섣부름을 나의 것으로 떠안을 때, 실망과 상처는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우리는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마주 보며 꾸벅꾸벅 존다. 한바탕 졸고 나서 산책을 나갔을까.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괜스레 상대방의 발을 툭툭 건드려도 보고. 어젯밤 같이 들었던 노래를 어설픈 솜씨로 흥얼거리기도 한다. 같은 소절을 같은 멜로디로 부르느라 화음이 없었나.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잠에 든다. 이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아, 잠에 들고 나서도 잠에 든 줄 모르고 다시 한번 눈을 감는다. 그러느라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선잠을 잘 뿐이지만, 대관절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일 텐데.
이 시에서 두고두고 찾아보고 싶은 문장은 3연이다. 화자는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해보자고 다짐한다. 다짐이란 건 조금 더 거창해야 옳은 게 아닌가? 가령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겠다든지. 그게 아니면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 집을 장만하겠다느니, 10억을 벌겠다느니.
그러나 이 다짐은 어찌 보면 단출하다. 다짐이라고 할 것도 없어 보인다. 남들이 하는 일들은 다 해보자. 남들이 안 해본 특별한 일들을 해보자는 게 아니다. 한강 뷰가 보이는 고가의 고층 아파트에서 살아보자, 해외로 나가서 몇 년이고 여행을 다녀보자, 고급 외제차를 사서 타고 다니자. 이런 게 아니다. 적당한 크기의 집과 너와 함께 거닐 수 있는 작은 공원, 함께 다닐 수 있는 두 다리, 그리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한 소절. 이런 남들이 다 누릴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것만 있으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화자가 시 안에서 늘어놓은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너와 함께 그런 일상을 계속 살아보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그 두 세계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 선명해진다. 나를 우리로 만드는 너라는 존재. 평범한 것들을 꿈꿔도 그 꿈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러니 이건 담백하지만 절절한 고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