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상담을 한다고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에 걸린 상담자 이야기

by 따콜


세상에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유튜브에서 심리 분야 전문가들이 '조심해야 할 사람', '친해지면 안 되는 사람', '멀리해야 하는 유형'이라는 주제로 만든 영상에 이런 부류가 자주 등장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따뜻하고 몽글한 감정을 녹여내는 로맨스나 신파극보다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가차 없이 보여주는 스릴러물을 즐기고, 드라마나 영화 속 착한 주인공보다는 악역들이 나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 왜 그런 것들이 흥미로울까.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그렇게 어두운 인물들의 사연이 나와 조금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감정을 느낀다는 게 뭐예요?




30대 초, 공황 발작 때문에 시도한 두 번의 상담에서 공통적으로 꺼낸 질문이다. 오랫동안 궁금했다. 두 상담 선생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라는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에도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끼리 모여 칭찬과 웃음꽃이 난무하는 자리에서 '우리 이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라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 순간 친구들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지며 침묵만 흘렀고, 다시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영화관에서는 관객들의 우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 감수성이 있는 척 연기하는 건가. 굳이 왜 밖에서 눈물을 흘릴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크게 울어본 적은 고사하고, 누군가가 울고 있는 것, 기뻐하는 것을 봐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를 머물다 나왔다.



나는 감정에 무딘 사람이었다. 내가 경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울며불며 감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고, 돌고 도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나한테 털어놓는 순간에는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 다시는 엮이지 말자.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아주 편했다. 덕분에 나는 서로의 감정을 세심하게 다루는 전략이 필요한 집단에서 고립되었고, 같은 동성 무리에서는 더(조금 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간혹 서운하다며 떠난다는 사람이 생기면 약간의 미안함은 있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떠날 거면 떠나라. 나를 고립시킬수록 나는 더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만 인정하는 나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뒀고, 내가 정한 목표를 두고 나 혼자 준비하고 이루어가는 과정이 그리 괴롭지만은 않았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는 감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상담이나 개인의 히스토리를 깊이 분석하며 질환의 기원을 추적하는 임상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두 전공은 유사한 지점이 많아 대부분 같이 공부하게 된다.). 사회성이 부족한 나로서는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이 ‘사회’라는 녀석의 실체를 연구할 수 있는 '사회심리학'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즐겨 보던 <EBS 지식채널 e> 제작팀에 들어가 허상에 감춰진 사회의 민낯을 까발리는 짧은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게 작은 꿈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가난한 내게는 쉽게 열리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취업을 도와줄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며 무기력하던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던 것은, 절대로 상담이라는 분야에는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저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하는 데 이 전공을 쓰겠다는 것. 그것이 내가 그토록 재미없는 이 전공을 선택하는 조건이었다.








| 감정이 없을 수 있을까


자격증 유지를 위해서는 환자들을 만나는 동안 짧은 면담은 필요했다. 딱 3~4시간. 온갖 기술을 사용해 공감을 열연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분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독 이런 환자들은 객관적인 분석이 어려웠다. '저는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저, 사이코패스인가요?'라고 말하는 환자들. 그들의 이야기는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분석보다는 이입이 되었다. 그래, 그런 걸 감정이 없다는 것 말고 무엇으로 더 설명할 수 있을까. 감정이 없을 수도 있지. 그런 것도 치료가 필요한가? 그냥 감정을 조금 학습하면서,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감정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삶의 여정 중에 어떤 문제를 경험하고 병원으로 왔고, 나는 그들을 만나고 이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끼리, 또 그들과 나를 상호 분석하며 유사한 경험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내게도 공황이 찾아왔고(프롤로그 '너는 어디서 위로받아' 편 참고), 상담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아주 거대한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안에 꽁꽁 감춰진 이 감정을 막상 들여다보려니 덜컥 겁이 났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엉켜 있는 이 감정의 끈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 나의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미 눈이 마주쳐버린 그것들은 나의 삶을 계속 흔들어댔고, 결국 그 끈들을 마주하기로 했다. 상담을 받는 기간 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순간들을 하루하루 더듬어가다 보니, 기억 저편 어딘가에 멈춰 있는 한 아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당장이라고 울고 싶은 순간임에도 이를 꽉 물고 버티고 있는, 불편한 일이 있어도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짓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늘 괜찮아야 했던 그 아이는 오래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 니 알아서 온나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누구 하나 의지할 수 없었다. 언니는 학창 시절 내내 혼자였는데,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언니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섯 살이나 많은 언니, 오빠들과 싸웠다. 우리 언니 괴롭히면 죽는다! (효과는 미미했다..) 오빠는 우리 집에서 가장 공감 능력이 뛰어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오빠였지만, 그 당시 군 복무 중 흔히 있었던 괴롭힘으로 자살 시도를 하였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엄마는, . 솔직히 엄마에 대한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입학 무렵부터 엄마는 우편물의 글을 읽는 일부터 은행 업무 같은 사소한 일까지 우리에게 의지했기에 어느새 우리 남매는 엄마보다 일찍 어른이 되어 있었다.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아빠는 늘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을 응원하셨지만, 생활 패턴이 흐트러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정서적이든 경제적이든 최소한의 도움 이상은 기대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석사까지 총 5번의 졸업식이 있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고, 이사나 병원, 사고 같은 삶의 굵직한 일들도 혼자 감당하는 일이 많았다.



고등학생 시절,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야자 학습이 끝났다. 늘상 큰 불만 없이 40분 정도의 등하굣길을 자전거로 오갔지만, 그날은 유난히 친구들의 부모님이 하나둘 자가용을 몰고 와 눈길을 뚫고 안전하게 친구들을 데려가던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그렇게 낭만적인 장면을 보다 보니 혹시 우리 아빠도 이 늦은 밤에 나를 위해 데리러 올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던 것이었다.



- 아빠. 오늘 눈이 많이 내리는데, 데리러 와줄 수 있어?


- 난 모른다. 니 알아서 온나.



전화가 끊기고, 다른 친구들과 대비되는 내 모습이 초라했는지 무언가 울컥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괜찮아. 우리 아빠는 원래 이렇잖아. 더 기대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앞섰다. 가족들은 각자의 몫을 버텨내는 데 급급했기에, 서로를 보호하거나 위로할 시간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뭘 기대했던 걸까. 어차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심이 없어. 표현할수록 초라해지고 거추장스러우니, 드러내지 말자.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되는 법을 익히기로 했다. 덕분에 조금 아프고, 불편한 것, 더러운 것은 감내할 능력이 생겼다. 그렇게 점점 괜찮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에 화가 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지만, 잘 살아졌다.








| 감정표현불능증


심리학에서는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이라는 개념이 있다. 감정을 인식하거나 구별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상태를 말한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무감각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감정을 인식하거나 표현하는 기능이 약화된 경우가 많다(자신이 감정표현불능증 경향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에 마련한 TAS-20K 테스트를 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상담을 끝나고 한참이 지나 내가 사실은 감정이 없는,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아주 작은 것에도 상처받고, 어려운 사람만 보면 빚을 내서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촌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무도 의지할 수 없었던 가족 안에서 자라며, 나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방식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이라는 것도. 이 전공에 발을 들이면서 내가 가진 공감 능력으로는 절대로 상담은 하지 않겠다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담의 문 앞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사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은 '상담'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오해는,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진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와 같다는 인식이다. 언뜻 만날 때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등은 대중매체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것들은 정식 진단으로 '성격장애(더 정확하게는 B군 성격장애)'에 포함되는 개념인데,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조종한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공감 능력도 결여되어 있다. 심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표현불능증은 감정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감정을 느껴도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언어가 부족한 상태이다.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감 능력이 본질적으로 결여된 것도 아니다. 단지 감정을 느끼고 다루는 방식이 낯설 뿐이다. 겉으로만 무감각하지, 내면에는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억눌려 있다.








| 얼어붙은 감정이 녹아 흐를 때까지


이 글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감정을 느끼고 싶은데 잘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상처받은 사람들, '나는 사이코패스인가 봐, 나는 눈물이 없어, 감정이 없어'라며 집단에서 스스로 고립시킨 사람들. 당신들은, 우리들은, 사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감정을 억누르는 선택이 인생 서바이벌 전략이었던 사람들이다.



아직도 나는 모든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담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깊은 고통과 맞닿는 상담은 여전히 두렵다. 내 감정의 또 다른 문을 흔드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이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줄 수 있는 상담자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감정을 얼리기로 결심해야 했던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다시 흐르기까지 머물러 줄 수 있는 사람. 내게는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감정을 잃었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감정도 여전히 살아 있다. 어쩌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삶이 편하고 익숙해, 그 시간에 계속 머무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억눌러왔던 감정은 언젠가 예고 없이 폭발해 당신의 삶을 뒤흔들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그날이 오기 전에 감정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서툴고 두려워도 천천히, 말과 표정과 관계로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상담실에 앉아 감정을 잃었다는 누군가에게 건네려 한다.



당신, 이상하지 않아요.









*감정표현불능증 테스트(TAS-20K)


1점: 전혀 그렇지 않다.

2점: 그렇지 않다.

3점: 보통이다.

4점: 그렇다.

5점: 매우 그렇다.


1. 지금 나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잘 모를 때가 종종 있다.

2. 내 기분(감정)을 적절한 말로 표현하기 힘들 때가 있다.

3. 의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을 몸에 느낄 때가 있다.

4. 나의 감정을 남에게 손쉽게 표현할 수 있다.

5. 나는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문제의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6. 속이 많이 상했을 때 자신이 슬픈 건지 놀란 건지 화난 건지를 잘 모를 때가 있다.

7. 자신의 몸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져서 당황할 때가 종종 생긴다.

8.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가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놓아두는 편이다.

9.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느낌(감정)을 느끼고 있다.

10.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1.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을 설명해 내기가 어렵다.

12.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감정 표현을 더 많이 하라고 권한다.

13. 내 마음속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잘 모르겠다.

14.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잘 모를 때가 종종 있다.

15. 다른 사람들의 어떤 느낌보다는 그들의 일상적인 활동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16. 나는 심각한 드라마보다는 가벼운 오락 영화를 더 좋아한다.

17. 나의 속마음을 친한 친구에게조차도 말하기가 어렵다.

18. 서로 아무런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19.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때 내 감정을 되새겨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20. 영화나 연극의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4, 5, 10, 18, 19 역순으로 채점

*51점 이하: 정상 / 50점 이하: 가능성 높음 / 61점 이상: 감정표현불능증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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