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불안을 다루는 방법
| 의외의 모습?
나에게는 의외의 모습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인형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굳이 의외라고 덧붙이는 이유는, 늘 당당하고 지고는 못 견디는 자존심 강한 성격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같이 '네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을 종종 봤었기 때문이다. 인형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에 황당해할 어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일화로, 초등학교 1학년 첫 야영 때 분홍털의 토끼, 일명 '토순이'를 가방에 몰래 넣어두고 함께 다녀온 일화가 있다. 그 시절의 나도 '인형과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간식들 아래에 꼭꼭 숨겨두었다. 그리고 토순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어쩌면 부모님과 처음 떨어져 느낀 불안 때문인 것 같다) 가방을 열어 토순이의 귀털을 만지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얼마나 함께한 인형이기에?'라고 질문한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언젠가부터 토순이가 인식이 되었고, 불안할 때마다 그 인형의 털을 만지면 마음이 진정되었던 기억이 있다. 한 날은 엄마가 내 품에 있는 인형이 너무 더럽다며 세탁령을 내렸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세탁기가 돌돌이를 멈출 때까지, 빨래집게에 기다란 두 귀를 고정시킨 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까지 지켜보며 토순이가 마르기만을 기다렸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면 덜 마른 인형이라도 끌어안았다. 차가운 물기가 옷에 스며들었지만 괜찮았다. 내 온기로 말려주면 되는 일이었으니. 물기가 흥건한 귀를 입으로 쭉 빨아 당겨 뱉기도 했을 정도로, 그 인형은 내겐 전부였다.
| 사라진 토순이
그러던 어느 날, 토순이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도, 언니와 오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너무나도 지저분하고 해진 토순이를 끝내 떼어내지 못하는 내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우리 부모님은 극단의 조치로 토순이를 버린 것이라고 들었다. 이해는 한다만, 그렇게 나는 토순이를 잃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열병에 시달렸다. 아빠는 내가 독감에 걸린 줄 알았다고.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지어 먹였지만, 좀처럼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 아빠는 최후의 치료가 되었던 한 마디를 건넸다. '인형 사러 가자'
저녁 무렵이었던 것 같다. 통유리 너머로 진열된 인형들이 빼곡한 가게에 도착했다. 고열로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인형 가게에 들어섰고, 아빠는 어느 인형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노랗고 통통한 몸뚱아리에 빨간 볼터치를 하고 있는 '피카츄'에 시선을 멈췄다. 놓칠세라 가게 주인은 그 인형을 집어 흔들어 보라고 권했다.
피카츄
소리가 울리는 순간, 토순이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다. 피카츄 인형의 가격, 23,000원이라는 숫자는 지금도 또렷하다. 아빠는 잠시 비싸다는 듯 망설였지만, 금방이라도 열이 내릴 듯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는 결국 결제를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거짓말처럼 열을 가라앉았고, 피카츄는 나의 두 번째 애착인형이 되었다.
| 말할 수 없는 비밀
피카츄와 남은 초등학교 생활을 함께했다. 귀가 터지면 서툰 바느질 기술로 엉성하게 고쳐 주었고, 날 매료시켰던 '피카츄!'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아도 내가 대신 성대모사를 하면 될 일이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친구나 공부가 중요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 방에는 인형이 가득했다. 바비인형 같은 딱딱한 재료보다는 통통한 몸에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인형이라면, 아빠의 말을 빌려 '사족을 못 쓰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할 때까지 기숙사나 자취를 하며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되었는데, 내게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친구들과 지나갈 때는 관심 없는 척 지나쳤던 인형 뽑기 기계를, 나중에 혼자 찾아가 아까 눈여겨본 인형을 꼭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은, 나는 인형을 꼭 끌어안고서야 잠들 수 있는 '아이'라는 사실이었다. 밖에서는 독립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무수히 받았고, 무표정하고 잘 웃지도 않았지만, 인형 앞에서만큼은 토순이를 찾는 그 시절의 나였다.
| 퓨리오사의 애착인형
세월이 흘러, 서른셋이 된 나는 연인과 함께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관람하러 갔다. 영화관 로비 한가운데, '퓨리오사의 애착인형'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익숙한 구매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뭔가 달랐다. 분명히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에 '꼭 가지지 않아도 괜찮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형이 주는 만족은 일시적이었구나. 지난 30년 동안 수없이 모으고 교체해 온 인형들은 불안한 나를 위로했지만, 영원히 내 곁에 머물며 나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늘 떨어지고, 잃어버리고 결국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퓨리오사의 애착인형은, 퓨리오사의 품에 남겨두기로 했다. 손을 뻗지 않고 뒤돌아서던 그 순간, 새로운 나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곤 알았다. 더 이상은 인형에게 내 불안을 맡기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서른셋이 되어, 어린 시절의 토순이를 보내주었다.
| 당신의 애착인형은
어린 시절의 애착 인형은 불안을 달래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토순이를 잃은 나의 에피소드와 반응은 내가 상실과 불안에 대처하는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준다. 불안을 가라앉히는 유일한 수단을 잃은 나는, 처음에는 고열이라는 신체 반응으로 그 상실감을 드러냈다. 또, 새로운 인형을 얻으며 다른 대상으로 대체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상실과 불안을 신체화, 대체라는 방식으로 조절하며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서른셋, '퓨리오사의 애착인형'에 뻗으려는 손을 멈출 수 있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외부의 대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불안을 조절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상실과 그에 따르는 불안 앞에서, 우리는 각자 어떤 방법으로 위안을 얻고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는가, 계속 다른 것들로 바꾸고 있는가. 어쩌면 외부 대상이 아닌 자기 안에서 불안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장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도 놓지 못한 당신의 애착인형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