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
| 매일 먼저 지나가고 싶었다.
매일 아침,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는 나는, 꼭 지나가는 짧은 횡단보도가 있다. 행인과 운전자의 눈치와 배려에만 맡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그곳을 행인들보다 먼저 지나갈 수 있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 바쁜 출근길, 멈춰서는 건 번거롭다. 내가 더 늦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고 멈추기도 하지만, 대개는 먼저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인들이 다 건너기를 기다리며, 이 사람까지만 보내고 가야지. 라고 생각하던 순간, 멀리서 이 기회를 놓치기 않기 위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순서로 따지면 내가 먼저 지나가는 게 맞았다. 고민이 좀 됐지만, 출근 시간이 여유롭기도 했고, 내 뒤에 줄지은 차들도 없었기에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 왜 인사를 하지?
요즘 이런 걸로도 인사를 해?
그때였다. 길을 건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앞유리 선팅이 되어 있어 내 표정이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작은 인사에 나도 모르게 따라 고개를 숙였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요즘 이런 걸로도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구나, 사실 나 그렇게 매일 양보하지도 않는데. 내가 먼저 왔으면,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일이 더 많은데. 그러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그 사람의 인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같은 횡단보도에서 다시 멈춰 섰다. 마치 길을 지나는 사람들 중에 어제 만난 그 사람처럼 다들 고마운 마음을 느끼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사람의 인사가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한 템포, 더 여유를 두려고 했다. 바쁜 마음만 가득한 예민한 출근길에, 누군가에게 이런 여유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그분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이런 경험은 심리학에서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라고 한다. 특정 행동을 한 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 행동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원리이다. 우연히 더 멈추기로 한 그날, 한 행인의 인사가 나로 하여금 그 횡단보도에서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만들었다. 5m가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에 건넨 그 작은 인사 하나가 나의 배려를 강화했다.
| 더 이상 손해 보기 싫다.
먼저 베풀면, 손해 보기 쉬운 세상이다. 이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득실하다. 정말 그렇다. 20대 초반,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경험들만 기억에 남아 상처가 깊이 박혔다. 난 다시는 바보가 되지 않으리라. 나의 배려와 여유를 아무에게나 베풀고 싶지 않아 졌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의 경험도 떠오른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정거장에 한꺼번에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함께 있었던 친구를 놓쳐 버린 적이 있다. 길에서 부딪혀 사과를 하면, 상대는 이미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의 사과나 실수에 연연하지 않는 멋지고 쿨한,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다짐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친절한 마음은 정말로 닫혀버렸다. 그런데 거창한 명언이나 강연이 아니라, 그 작은 순간의 인사가 내 마음을 살짝 열었다. 우연히 선택한 기다림이 인사라는 보답으로 돌아왔고, 그것이 나의 친절을 강화시켰다. 내가 닫아버린 마음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배려를 경험할 기회를 놓치게 한 것은 아닐까. 내가 닫아버린 마음 때문에,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닫아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 거창한 배려는 아니지만
나는 오늘도 다시 배려를 선택해 보고 싶다. 때로는 손해 볼 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뒤차가 빵빵 거리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나도 회사에 지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작은 인사가 나의 행동을 변화시킨 것처럼, 나의 작은 배려도 누군가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바쁜 아침에도, 작은 배려와 감사가 스치는 순간들을 통해 다른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