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세 번째 봄날, 집은 손님들로 북적였고,
빼꼼히 열린 대문 밖 세상은 나를 불렀다.
바삭하게 튀겨지는 닭냄새를 따라 골목길 모퉁이 치킨집에 들어갔을 나는 한참 동안 치킨을 받아먹으며 TV에 빠져있었다.
집에 갈 생각이 없는 귀여운 불청객을 애타게 찾고 있을 부모가 걱정이 된 노부부는 나를 경찰서로 데려다주었고 첫 가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후로도 몇 번은 더 홀로 마실을 시도했다 하니 미지의 세상이 많이도 궁금했나 보다.
탈출본능뿐만 아니라 나는 언니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어느 날 짭조름한 콩자반을 왼손으로 집어 먹는 나를 본 엄마의 심장은 '쿵'하고 내려앉았다.
외삼촌이 왼손을 쓰는 게 장애로 여겨지던 모습을 보고 자란 엄마는 결연했다.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감추고 문제의 왼손을 붕대로 동여매봤지만 본능은 쉬이 꺾이지 않았다.
결국 백번 양보해 글은 오른손으로 쓰게 교정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왼손잡이였다.
바로잡아야 할 잠재적 결함은 또 있었다.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믿었던 아빠 눈에 나는 연약한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아이였다.
아주 작은 것도 크게 느끼고 깊이 공감하며 더 상처받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소식이 들려오기라도 하면 전쟁 속에 놓인 사람들의 무력감과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져 며칠 밤을 앓았다.
남의 아픔을 내 것처럼 끌어안는 성정은 때로는 나를 지치게 했지만 결국엔 알 수 있었다.
이 마음이야말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이유와 용기가 되어주었단 것을.
나는 나의 정서적 예민함과 세상을 향한 서툰 사랑을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 미국, 영국 그리고 또다시 한국. 원했던 항해였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어느 틀에도 맞지 않는, 어정쩡한 삶이 된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빛이 유리 조각의 불규칙한 단면과 각도를 만났을 때 무지개 빛깔을 뿜어내듯,
부서진 내 삶의 조각들은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비춰주었다.
이 모든 건 매끈한 유리판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세 나라에서 만난 인연들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 살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같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국적이 달라도 모든 개인의 행복과 슬픔은 타인의 것에서 분리될 수 없단 걸 깨달았던 순간들,
이에 대한 기록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테마곡
왼손잡이-패닉 (1995)
https://youtu.be/-Au44y63lHE?si=we7HJlohDzRwwF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