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도 없고, 겁도 없는 여정이었다.
환승지는 하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승객이 오간다는 애틀랜타 공항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찾아 사우스캐롤라이나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바짝 긴장해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세 자매는 시차에 몽롱할 뿐이었다. 비동반 소아 서비스 (Unaccompanied Minor Service) 전담직원은, 잠에 취해 입국심사를 통과한 우리와 태산만 한 이민가방을 빠르게 찾아내 환승 비행기에 실어주었다.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착륙이었다. 자느라 땅콩은 받지 못했고, 옷은 꾸깃꾸깃하고 입맛은 텁텁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첫 비행이었다.
전담직원을 뒤따라 꾀죄죄하지만 당당하게 입국장을 걸어 나갔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환영객들 사이로 아빠가 보였다. 서로를 향한 반가움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쁘게 걸음을 옮겨 아빠의 오랜 친구인 이목사님이 몰고 온 승합차에 올랐다.
차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새로운 보금자리는 2층높이의 아파트 단지였다. 나무로 된 초록색 현관문을 끼익 열고 들어서니 가구 하나 없는 넓은 거실이 펼쳐졌다.
아빠는 스탠드 조명 줄을 잡아당기며 혀를 찼다.
“이 노란 불빛 때문에 미국 사람들 시력이 나빠진다니까.”
하지만 나는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따뜻한 빛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은 거실에 대충 밀어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세 자매가 함께 쓸 방에는 침대 하나와 3단으로 접히는 매트 2개가 전부였다.
매트 위에 드러눕자 마치 캠핑을 온 듯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오래 못 갔다.
진짜 미국에 와버렸으니까. 문을 열고 나가면 초원분식도 홍삼빌라도 없단 사실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억지로 끌려온 것도 아니고 데려가 달라고 우긴 마당에 누구에게도 이 두려움을 들킬 수는 없었다.
‘지금은 새벽이라 밖도 너무 어둡고 낯설어서 무서운 것뿐이야. 내일 이목사님 집에 놀러 가서 그레이스 언니도 만나고 바깥 구경을 하면 분명 기분이 나아질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두려움과 기대감 사이를 뒤척이다 아침을 맞았다. 어둠이 걷히자 창문밖 인기척이 느껴졌다. 밤새 우주공간을 홀로 떠돌던 울적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의 이웃이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문밖까지 나갈 용기는 없어서 창문가를 서성이다 누군가가 사정권에 들어오면 “Hi.”를 외치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든 이웃은, 바깥구경삼매경에 빠진 강아지처럼 창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밝게 웃어주었다. 그 환대가 좋아 나는 그 뒤로도 한동안 아침 인사를 멈추지 못했다.
어른의 눈으로 돌아본 과거는 미스터리이다.
왜 우리 셋만 비행기에 태웠을까,
집은 왜 가구도 제대로 없었지?
하지만 어린 시절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최선이라고 믿으니
불완전한 상황마저 관대하게 바라봤다.
없는 것 빼고 다 있었고
몰랐기에 용감했고
불완전한 채로 충만했던
어여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