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의 화려한 첫 외출을 축하하듯 하늘이 맑았다. 좁은 진입로 양옆으로 무릎 높이까지 자라난 풀과 야생화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회오리바람에 땅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한 도로시의 집처럼, 막다른 길 끝에 놓인 하얀집은 공중부양 중이었다. 이 특별한 집을 요리조리 살펴보는데 뒤에서 친절한 해설이 들려왔다.
“이건 이동시킬 수 있는 집이야.”
집의 주인인 이목사님이었다.
“우와. 진짜요?”
움직인다니, 캠핑카 같은 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서둘러 들어간 집 안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에어컨도 빵빵하니 쾌적했고 가족 수에 맞는 방들과 샤워실, 주방과 거실까지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게다가 집안 공기는 베이커리에 온 듯 달콤했다. 바닐라 향이 나는 케이크를 손에 들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은 말로만 듣던 그레이스언니였다.
“환영합니다!”
더워진 날씨에 어울리는 핫팬츠와 탱크톱 차림, 환한 얼굴의 언니는 우리 앞에 손수 만든 입국선물을 내려놓았다. 새하얀 아이싱을 아낌없이 펴 바른 케이크 위에 빨갛고 파란 초콜릿으로 Welcome to USA란 문구가 알알이 박혀있었다. 울퉁불퉁 거친 마감이었지만 정성이 가득 담겨있었다.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큰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미국적응 Q&A를 시작했다. 일곱 살 때 태평양을 건너와 곧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그레이스언니는 이제 막 미국에 온 동생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았다. 미국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중요한지, 경험자의 노하우를 다 알려주고 싶어 했지만 우린 다른 게 더 궁금했다.
언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발음해 줄 수 있어?”
“거북이는?”
“게토레이도 부탁해~”
한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영어 리스트가 동이 날 때까지 요청은 계속됐다. 본토 발음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언제 다 배워서 세련되게 영어를 할 수 있을까?’ 갈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첫 만남 이후 그레이스언니를 다시 만난 건 교회에서였다. 피아노 반주, 주일학교 교사와 통역까지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는 늘 분주했다. 본인의 생일날에도 예외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뒷정리 중인 언니 뒤로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잠시 망설이다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고 눈이 마주치자 작은 쇼핑백을 내밀었다.
“Happy birthday!”
“어머나~정말 고마워!”
언니는 두 팔을 벌려 아이를 품 안 가득 안았다. 그리고는 안아준 두 손을 풀어 망설임 없이 카드 봉투를 뜯었다. 직접 만든 카드에 적힌 편지 한 줄 한 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 앞에 선 아이는 언니의 눈길이 닿는 곳에 자신의 눈을 맞추어 그대로 따라갔다. 상자에 담긴 종이별을 꺼내 요리보고 저리 보면서 감탄하는 모습을 직관하는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났다.
“정말 감동이야. 언제 다 준비한 거니? 너무 고마워. 맘에 쏙 들어~”
언니는 모든 말을 동원해 기쁜 마음을 보여주었고 아이는 흡족하게 돌아섰다.
장의자 귀퉁이에 앉아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내게 언니는 다정하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카드나 선물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고 반응을 보여주어야 하거든. 누군가의 작은 노력도 놓치지 말고 꼭 고맙다고 표현하도록 해. 미안할 때도 마찬가지. 알겠지?”
감사, 반가움, 그리움, 미안함, 자랑스러움, 기쁨, 감동, 슬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전달된다고 믿어온 나에게 모든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미국의 문화는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세상엔 말로 해야 전해지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울퉁불퉁한 환영 케이크
작은 종이별 생일 선물
표현의 순간에 완벽함이나
화려함은 필요 없었다.
충족시켜야 할 조건도 없었기에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마음을 보여줄 용기와
그 진심을 알아봐 주는 따뜻한 시선,
부족한 솜씨일지라도
맘껏 표현해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
본토발음을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