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시즌2 배경지가 되어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도시 썸터.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이곳엔 공군기지가 있었다. 부모님의 발령을 따라 이동하며 겪었을 수많은 헤어짐과 시작이 빚어준 다정한 마음일까, 이곳 학생들은 태평양을 건너 전학 온 내 주위를 맴돌았다. 마치 갓 태어난 새끼돌고래를 보호하고 길을 안내해 주려는 어른 돌고래 무리처럼.
한때는 미국 전체에서 흑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주였던 만큼 썸터 학교에는 아프리카계 학생들이 많았다. 하루 종일 피부색도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재미난 사실은, 막상 들여다보면 서로 크게 다를 것도 없단 거였다. 신세계에 숨어있는 익숙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인사치레일 수도 매우 진심일 수도 있는 한국의 “밥 먹었어?”와 “언제 한번 밥 먹자~”의 미국버전은 “그거 맘에 든다. 어디서 났어?"(I love your OOO! Where did you get it?)”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아기자기하고 신박한 내 학용품들이 어디서 났는지 묻곤 했다. 하지만 더 뜨거운 관심을 보인건 따로 있었다. 숱 많고 자기주장이 강한 내 머리가 썸터 주민들 눈엔 예뻤다. 볼 때마다 "I love your hair."를 연발하며 내 검고 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들의 애정 가득한 호들갑에 용기를 얻은 나는 늘 묶고 다니던 머리를 풀었다.
학교 field day(운동회) 날, Egg and Spoon Race (숟가락 위에 달걀 얹고 달리기)에 사활을 건 팀 대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강한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와 산발이 된 머리를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정돈했다. 내 양옆으로 앉은 샤이와 애슐리의 머리는 끄떡없었다. 그때 알았다. 흑인친구들의 모발은 바람에 저항한다는 걸.
유난히 다리길이가 긴 친구들 옆에 나란히 앉을 때 도드라지는 내 숏다리처럼,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릿결 앞에서 흑인 친구들의 머리카락은 더욱 움직임이 없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당연한 그 무언가가 다른 이에겐 결핍이 되어 마음을 콕콕 찔렀다.
"I love your OOO."이라는 만만한 표현을 금세 익힌 나는 마주치는 모두에게 남발하기 시작했다. 내 취향이 아닐 때조차도, 단어를 모를 때도 말이다.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What's this?"라고 물어본 뒤에 그게 좋다고 고백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반친구들에게 '나도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는 내 방식이었다.
할 수 있는 말이 한정적인 대신 주변을 살피는 관찰력이 늘어갔다. 등교 첫날부터 눈에 띈 건 사람들의 팔찌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동일한 디자인의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색상은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W.W.J.D.라는 약자가 박혀있었다. 학교 단체팔찌인가? 첫날엔 물어보지 못했지만 익숙한 문장을 야무지게 활용하여 질문할 차례였다.
"네 팔찌 너무 좋다! 어디서 났어?"
나와 겹치는 수업이 많아 늘 옆에 있는 미씨가 손짓발짓을 총동원해 팔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미국에서 대유행 중인 국민템이란다. 내친김에 미씨는 종이까지 꺼내 적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W.W.J.D. 는 ‘What Would Jesus Do?’의 약자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지.”
일상생활에서 어떤 결정이나 행동을 할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미국 적응 꿀팁을 전수해 주던 그레이스언니,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 준 입학담당관, 응원의 쿠키를 구워온 미세스 그린, 인종차별 없이 내 친구가 되어준 같은 반 친구들까지... 팔찌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나에게는 꽤 친절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첫째 언니에겐 그렇지 못했다. 우리 가족이 다른 도시로 거처를 옮긴 뒤에야 언니는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와 둘째 언니가 다닌 학교엔 백인과 흑인 비율이 반반이었다면 첫째 언니 홀로 다닌 고등학교엔 백인이 얼마 없었고 동양인은 언니가 유일했다. 수업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언니는 줄곧 혼자였다.
하루는 큰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는 언니 앞에 한 남학생이 나타나 음료캔을 땄다. 앞뒤로 열심히 움직여 캔에서 분리시킨 알루미늄 따개를 애플소스에 투하했다. 그 먹지 못할 것을 수저로 석석 비비고 섞어서 언니에게 들이밀었다. "먹어."
언니 뒤편에 앉아 대기 중이던 다른 여학생은 두 손가락으로 애플소스를 듬뿍 퍼내 언니의 땋은 머리 위에 펴 발랐다. 수치심과 분노에 언니는 꼼짝도 못하고 얼어버렸다.
나의 봄이 언니에겐 차디찬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