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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호사 Jul 22. 2020

11.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지만

환자에게도 역시 그러할때,


적지 않은 나이로 새로운 직종에 도전하면서, 특히 ‘생명’을 다룬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위계질서가 어느 곳 못지않게 엄격하기로 유명한 병원 속의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으면서, 혹시 나이대접 받을 것을 기대한 적은 없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망설임 없이 ‘아니오’라고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한참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한 선배의 입에서 뱉어지는 반말을 듣고 있자니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다잡았던 내 마음이 내 마음같지 않음을 느끼며 속이 부대끼듯 하다.

‘대접’을 받자는건 아니여도 서로 존중하며 일할 수 있길 바랬지만, 그것마저도 과한 욕심이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선생님, 다른 올드 선생님 앞에서는 실수하지 말라고 알려주는 거잖아. 이건 왜 이렇게 한거야?“        

  

‘나이 많은 신입’한테는 말 한마디 거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어렵다며, 저보다 나이 깨나 먹은 경력 간호사 앞에서 하하 호호 즐겁다가도, 정작 내 앞에서는 선배의 표정을 하곤 명령조로 쏘아대는 차가운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 얼굴이 혹시 그래도 될 정도로 동안으로 보이는 건 아닌가 싶어 한번은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여기저기 살펴보기도 했었다. 역시나 그 이유는 아닌 듯 싶었다. 앞 뒤가 다른 그녀의 사회생활 처신력에 감동하고 다시 한번 마스크를 매만지며 눈이라도 웃어보이는 연습을 해보고는 화장실을 나섰다.     



           

”선생님, 애기 얼굴이 짜부라져있는 것 같아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예뻐지겠죠?“


초산답지 않게, 유도분만 약을 투여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통이 걸려 보통의 경우보다 절반도 안되는 시간 안에 별다른 이벤트 없이 예쁜 딸아이를 낳은 산모가, 보호자 핸드폰 안의 ‘도담이(태명)’ 사진을 나에게도 보여주며 기쁜 표정을 짓곤 침상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앉아 있다. 회음부 절개 부위가 가장 아프다면서 신랑이 ‘도넛 방석’을 사러 나갔다고 하는 산모에게 진통제를 챙겨주며, 의례적인 말투로 "소변은 시원하게 잘 보셨는지" 질문을 하자 안그래도 방금 화장실에 가보았는데 나오지 않더라며 가만 가만 고개를 가로젓는다.


산모들의 경우, 분만과정에서 혹시 방광 쪽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분만 후 일정 시간 안에 소변을 제대로 보았는지 확인하는 것은 산후 간호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또한 분만 후 화장실을 잘 다녀오곤 했던 산모라 할지라도, 깨어있는 시간동안 주기적으로 소변을 보지 않으면, 늘어난 방광이 아이를 내보내고 원래의 크기로 수축되려고 노력하는 자궁을 방해할 수 있기에 매번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아직은 소변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 마신 것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않겠냐며 이제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해맑게 웃는 산모는, 그건 그렇고 아기를 낳았음에도 왜 배는 바로 꺼지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가장 걱정이라며 활짝 미소 지었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이 산모가 언제까지 소변을 봐야하는 것인지 시간 계산을 해보고는 뜨악했다. 뒷턴 선생님이 병실을 돌며 환자를 볼 딱 그때쯤이 타임리미트였다. 지금 바로 요도를 통해 소변줄을 넣어 방광이 비워지도록 도와드리겠다고 말하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산모를 뒤로 하고 드르륵거리는 병실 문을 열어 준비물을 챙기러 재빠르게 처치실로 향했다. 소변이 마렵지는 않다고 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였다.     

이 산모가 나중에라도 소변을 잘 본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에라도 제때 소변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내 뒷턴 선생님이 그 일을 해야 할 경우,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상황을 내가 야기한 것 마냥 날이 잔뜩 서있는 불평을 쏟아낼 것이 뻔하기에 차라리 내가 미리 해놓아 버리자는 심산이였다. 

산모의 안위보다는 올드 간호사와의 관계를 걱정하는 내 모습을 보자니 이런 것이 ‘현실 간호사’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잰걸음으로 서둘러 도착한 처치실 앞에서 생각이 많아져버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 앞에 앉아있던 산모는 교과서 안의 딱딱한 텍스쳐 속의 ‘가상인물’이 아니라, 열달을 고이 품었던 첫 아이를 방금 출산해내 마음이 들떠있는, 오늘도 바쁘셔서 어떡하냐며 따뜻한 손으로 음료수 하나를 건내주던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이였다. 

뒷턴 간호사에게 인계를 줄 때 책잡힐 만한 부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업무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느라, 웃는 얼굴로 줄곧 나를 바라보던 산모에게 축하한다는 흔해빠진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사진속의 딸아이의 얼굴도 훑듯이 스쳐보며 무심하게 병실을 나선 스스로에게 나도 몰랐던 매정한 구석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한껏 긴장했던 무거운 어깨를 누군가가 한번 더 짓누르는듯한 불편함이 느껴지며 그녀에게 마음이 쓰였다.     

오늘 나에게서 인계를 받을 ‘어린 선배’는 이유를 불문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일이 넘어오는 부분조차 ‘미룬다’라고 표현하며 호되게 나무라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혹여나 나올지 모를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면, 환자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며 기다리기보다는 내 턴인 지금, 약간의 무리를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방광의 소변을 제거해주는 것이 더 옳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비록 매일 일을 질질 흘리고 다니고 손끝이 무뎌 뭐 하나를 시켜도 빠릿하게 제대로 해내기가 아직은 버거운, 한 사람 몫을 하기에는 한참은 더 있어야겠다는 푸념을 매일같이 듣는 신규간호사이지만, 그래도 ‘간호사’라는 명함을 달고 환자의 옆에서 땀내 폴폴나게 뛰어다니는 이상, 함께 일하는 동료뿐만이 아니라 환자에게도 역시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두가지의 선택지를 머릿속의 저울에 올려 흔들어보니 환자 쪽에 몇 그램정도의 무게가 더 실렸다. 그랬다. 뒷턴 간호사에게 한 소리를 듣더라도, 아직 남아있는 시간을 볼모로 산모에게 여유를 더 주고 싶었다. 요도에 소변줄을 꽂는다는 것 자체가 아주 거북스럽고 기분 별로인 일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알고 있다. 그래도 안된다면, 그때가서 조치를 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설명을 해드리기 위해 산모의 병실로 달려가듯 향했다. 뒷턴 간호사의 눈치를 보기 보다는, 의사의 처방을 잊지 않으면서 환자의 안위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간호‘사’가 되고싶서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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