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간호사 Jun 18. 2020

7.이거 뭔지 몰라요?찾아보고 나한테 말해주고 퇴근해요

어떻게 네이버에도, 구글에도 안나올 수 있지?


" 간호학과로 편입하겠다고? 그래,결정 잘했어. 얘, 간호사는 회사원처럼 야근도 없어. 3교대인거 알지? 내 근무시간 8시간만 딱 끝나면 뒷턴한테 넘기고 퇴근하면 돼. 얼마나 속편하니?"


간호사는 워라밸을 누리며 일할 수 있는 꿀 직업이라고 꿈과 희망을 마구마구 뿜어내는 어머니의 입을 선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아! 내가 정말 옳은 결정을 했구나 싶어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담쓰담하고 싶었던, 세상 나이브(naive)했던 나.

물론 그런 꿈같은 곳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원이고 간호사고 결국 날 채용해준 분들을 위해 이 한 몸 갈아넣으면서 돈버는 것 아니겠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 천지에 편하고 쉬운 일은 거의 없을거라고 본다.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과거의 나를 생각의자에 앉혀, 니가 꿈꿨던 대형병원 중에 그런 높은 QOL(quality of life) 을 가진 병동은 없을테니 정신차려야 한다고 어깨라도 붙잡아 앞뒤로 세차게 흔들어주고 싶다.







"대형병원은 개인의 보건이 보장되지 않은 보건집단"


간호사가 회사원보다 힘들고 괴로운 직업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간호사를 꿈꾸는 분이 계시다면, 당신이 앞으로 걸어갈 길은 생각보다 혹독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부디 마음 단단히 먹고 버텨내라고 당부하고 싶을 뿐이다. 


밥은 무슨, 화장실조차 갈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며 당장 그만두겠다고 씩씩대는 딸에게, "남의 돈 버는거 다 힘든거다. 너만 그런거 아니야."라고 쓴소리를 하셨던 부모님. 인생 회사 것인거마냥 '줄줄이 야근'이나 '주말 출근'도 당연한 것처럼 해내셨던 분들이다. 자신의 딸은 그래도 전문직이란 타이틀을 달아 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라셨다는 걸 알기에 속마음은 씁쓸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나, 그 말, 비유나 과장이 아니였어. 어쩌다 굶는것도 아니였어. 그저 밥먹는 시간 30분이라도 있었으면 했었어. 다른 사람들 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거 알지만, 쟤도 힘드니 너도 참으라는 말보다 우리 모두의 근무환경이 함께 나아지길 바라는 건 너무 속편한 생각일까?





'입사 1년까지 D-305일'


이제 나는 아무 생각없이 디데이 어플을 열어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최소 1년, 가능하다면 2년은 버티라고 말씀하셨던 교수님의 유달리 컸던 눈이 떠오른다. 2년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소소하지만 현실적으로 내 목표는 1년으로 잡아놨다. 퇴사 뒤에는 뭘 먹고 살지 정해진 것 하나 없으면서 그만두는 날은 생일보다 더 기다려진다.


병동에서 일하면서 하나 배운 것이 있다. 내 생각보다 나는 꼼꼼한 편이 아니였다는 것.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시간이 흘러 뒷 턴 선생님께 인계를 드리다 보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노트 한바닥을 가득 채웠다.

어휴, 진짜 민폐다. 세상에 더 없는 쓰레기가 된 듯한 기분으로 조용히 손을 놀려 빼곡히 노트를 메워간다.


"이 환자 이거 뭐예요? 선생님이 적은거잖아. 몰라요? 퇴근하기 전에 찾아보고 나한테 말해주고 가요."


안그래도 오늘 새로 입원한 환자의 의무기록을 뒤져보니 생판 처음 보는 의학약어가 나와 슬쩍 핸드폰으로 검색도 해봤는데 당췌 나오지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조금 해봤는데 이렇게 딱 잡히니 민망하다.


그런데 네이버에도, 구글에도 나오지 않는 이걸 어떻게 찾아야 하지?



'나머지 일'을 하기 위해 간호사 스테이션에 혼자 남겨졌다. 신규의 어설픈 인계를 힘겹게 머리에 넣은 이브닝번 선생님은 벌써 저 쪽 병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다.

그러나 환자나 보호자들은 지금 눈 앞에 앉아 있는 저 간호사가 근무시간은 진작 끝났지만 미처 못한 일들을 하느라 여기 남아있는 것이라는걸 알기란 쉽지 않다.


여기가 RPG게임 속 '병원 map'이라면 나는 이 병동의 영원한 NPC였다.


'항생제를 맞았는데 팔이 너무 아프다, 진통제 준다고 했는데 아직 안줬다, 사식을 먹고 싶으니 저녁식사는 취소 해달라, 수액이 잘 안들어가는 것 같다' 등등 요청들이 우다다다 정신없이 귓속으로 들어온다. 서둘러 몸을 움직이며 해결하면서도 이러다 언제 퇴근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뒷턴 선생님께 엉망으로 인계를 줬다는 죄책감으로 신규 간호사는 그녀의 일을 대신 하면서도, 마음의 빚을 느끼는 것이다.




'나머지 일'은 이제 얼추 마무리한 것 같은데, 인계때 질문이 들어왔던 그 의학약어 하나는 아무리 검색포털을 종류별로 돌아가며 탈탈 털어봐도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어쩌나 싶어 문자 그대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날 보고는 천사같은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왜 아직도 퇴근하지 못하고 엉덩이를 비비고 있냐며 한마디 툭 던진다. 이때다! 혹시 이 약어가 뭔지 아냐며 슬쩍 곁으로 다가가 물어보자, 바로 술술 읊어주는 선생님께 무한감사를!


이제 정말로 다 마무리지었으니, 뒷 턴 선생님께 보고만 하면 된다. 눈치껏 선생님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실 문 밖에서 노트를 손에 쥐고 얼른 나오시길 간절하게 바래본다. 이 병실에는 총 6명의 환자가 있고, 1환자를 보는데 5분 정도가 걸린다고 가정하면, 길게 쳤을때 앞으로 30분 정도는 기다릴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걸리진 않겠지. 어쨌거나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기다려보기로 한다.


퇴근이 고프다. 새벽 6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당시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사람같았지만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였을뿐. 회사에 오고 보니,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고 새벽1시고 남아서 PPT를 다듬거나 액셀 파일을 만드는 등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추가근무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이러다보니 신입사원인 내 마음속에도 날카로운 뿔이 돋아난다. 신입 간호사 교육때 얼핏 들었던 초과근무 수당이 번뜩 생각나 어떻게 올리는지 옆팀 선생님께 방법을 여쭤보자, 무슨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신다.


"니가 일을 못해서 늦어진거잖아. 왜 초과근무 수당을 신청하려고 해?"


아뿔싸. 괜히 뒷담화 소재만 하나 더 던져준 꼴이 됐다. 옆 병동에서는 신규 간호사가 오면 바로 초과근무 수당 신청하는 법부터 알려준다던데. 하루종일 뛰어다니며 일했지만 오늘도 12시간 공복, 동물적으로 예민한 상태다. 그런데 저 말까지 들으니 단전에서부터 불같은 화가 긴 호흡으로 올라온다.

어차피 내 월급 자기가 주는 것도 아니면서 별걸 다 못하게 막는다라는 생각에 표정관리도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이다. 난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버타임 수당만 제대로 받아도 한달에 100만원은 너끈히 더 벌 것 같다. 5년 일했으니까 6천만원이구나. 세상에!





뒷턴 선생님이 병실에서 나오시면서 문을 닫는 드르륵 소리가, 퇴근을 알리는 달콤한 종소리같다. 이제 그만 병원을 나서고 싶다는 급한 마음에 랩을 하듯이 처리한 일들의 리스트를 쭉 읊는다. 오늘은 왠일로 선생님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 한거면 됐으니 집에 가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쿨내가 풍긴다.


퇴근 후 병원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가 이미 너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마음이 급하다. 병원 밖으로 세걸음 정도 내딛었을까? 전화가 걸려와 꺼내보니 화면에 병동번호가 찍혀있다. 순간, 우두커니 멈춰서서 내가 안하고 온 일이 뭘까에 대해 3번 정도 고민해봤지만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아 혼란해진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땡땡땡 환자 I/O 체크하잖아. 수액백 남은 잔량 카운트 안하고 그냥 버렸죠? 버릴때 얼마 정도 남았었어요?"


아, 어쩌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총망라하듯 머릿속으로 돌려보며 머리를 쥐어짜듯이 탈탈 털고 나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언제쯤에야 일을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할 수 있을까?


간호사의 일은 내가 못하면 나만 힘든 그런 일이 아니다. 3개의 근무조가 힘을 합쳐 병원의 24시간을 돌려야 한다. 작은 구멍 하나라도 일단 생기면, 뒷턴 간호사들은 무조건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전 턴의 영향으로 뒷 턴의 일이 몇 배는 늘어날 수 도 있다는 뜻이다. 또 대부분의 실수는 환자의 안전과 건강에 직결되기에 사소한 일이더라도 결코 허투루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걸 알고는 있더라도,신규 간호사는 오늘 역시 무언가 실수를 할것이다. 하지만 점점 줄어들겠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내 근무시간 8시간만 딱 끝나면 뒷턴한테 넘기고 퇴근하면 돼. 얼마나 속편하니?"는 절대 아닌 걸로.





이전 06화 6. 마스크를 쓸 수 있어 다행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