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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Oct 12. 2022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딸이 아빠를 간호했더니

스텔라, 오늘은 한 아주머니 이야기를 해 줄게.


그날도 아빠를 간호하러 버스를 타고 지상철을 타고 15분을 걸어서 병원에 도착했어. 엄마가 잠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했거든. 아빠는 일하러 가는 엄마를 참 싫어했어. 얼마 더 못 살지도 모르는 자신을 두고 돈 벌러 간다고 말이야. 섭섭했나 봐.


그래도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고, 아빠가 떠난 이후에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서로 입장 차이가 있었지. 아빠는 내가 간호해주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불편해했어.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에 못 가니까 앉아서 소변통에 해결해야 했거든.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라. 환자가 되면 스스로 소변을 제어할 힘이 많이 부족해서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마려워서 일을 치르곤 하지. 그날은 그래도 내 나름대로 빨리 소변통을 준다고 했는데 좀 느렸어. 빨리 아빠 바지를 벗기고 해야 하는데 그냥 나가라고 하더라고. 아빠가 엄마 앞에서는 가만히 잘 있는데 몸이 불편해도 그 모습은 딸에게 보여주기 싫었나 봐.


그렇게 우리는 괜찮다, 아니다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아빠는 제대로 못 움직이는 몸으로 이리저리 용을 쓰다가 옷은 다 젖어버렸어. 옷 전체를 다 갈아입혀야 하는 더 힘든 일이 생겨버렸지. 그래도 숨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 젖 먹던 힘을 다 써서 아빠와 나는 서로 최대한의 힘을 내서 바지를 갈아입고, 상의도 새로 입었어. 나는 그대로 옆 간이침대에 털썩 앉았어.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더라고. 그리고 허탈한 웃음이 났어.


'이렇게 환자랑 몇 번 용쓰다가 하루가 다 가겠구나.'


그리고 아빠는 그날 근육이라고는 하나 없는 나와 같이 옷 갈아입는데 힘썼다고 저녁 먹을 때 평소보다 몇 숟가락 좀 더 먹더라고. 암환자는 못 먹어서 죽는다는 말이 있거든. 그 모습을 보니 오줌 싼 게 나쁜 일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 뭐야.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니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왔어. 나는 아빠한테 내일 또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서 나가려는데 엄마가 정거장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거야. 그렇게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이미 아주머니 한 분이 타고 계시더라고.


머리에 알록달록한 두건을 쓰신 걸 보고 그분도 암환자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어. 그분은 약간 쌀쌀했는지 패딩을 입고 계셨어. 그리고 패딩의 주머니 부분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어.     

“요즘엔 패딩이 하루 만에 말라. 옛날엔 몇 날 며칠 걸렸는데.”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맞받아쳤어.

“요즘엔 정말 안 되는 게 없죠.”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사람이랑 그렇게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게 되나 봐. 마치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랑 이야기하듯이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아주머니도 바로 이어서 말했어.

“세월 좋아진 만큼 예전엔 없던 병도 생기네요.”


그리고 내리자마자 나는 뒤로 밀려나고 엄마와 아주머니는 정문까지 친구처럼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눴어.

"진짜 아프면 세상만사 다 필요 없어요. 돈이 무슨 소용이고 친구가 무슨 소용이야."

"그냥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야. 나이 드는 거 별거 없어."

아주머니는 그렇게 나를 바라보며 말하고는 쌩하고 또 자신이 갈 길을 가셨지.


세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어. 엄마와 나의 나이 차이가 고작 30년이거든. 그런데 30년 사이에 엄마가 겪은 시대적 상황과 지금 환경은 너무나도 차이가 크지. 그렇게 세월이 좋아진 만큼 안 좋은 것도 같이 오는 건 가봐. 예전에는 거의 없던 병이 요즘에는 많이 생기기도 하니까.


그런데 반대의 상황도 어쩌면 똑같아.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다 안 좋은 것만도 아니더라고. 엄마가 일 때문에 내가 간호한 것도, 그 때문에 아빠가 오줌 싸서 힘을 많이 썼지만 덕분에 밥은 잘 먹은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호들갑 떨 일도,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슬퍼할 것도 없는 것 같아.


스텔라,

나는 아빠를 보러 오는 일이 전혀 귀찮지 않아. 병원에 있으면 환자들의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아픈 사람들의 공감대가 저절로 형성되거든. 일면식도 없는 사람끼리 아무 말 없이 눈만 마주쳐도 다 알아. 서로 얼마다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는지. 보호자끼리도 알지.

그렇게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잠깐의 대화에 그날 힘들었던 마음이 다 녹아버리기도 해. 나는 아빠 덕에 이렇게 또 인생의 진리를 하나 얻고 왔어. 오늘도 내 이야기가 너에게 도움이 됐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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