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어렵지 않았어요 :)
반 오십년이 넘게 뼛속까지 문과롭게 살아서 그런지 과학은 얘기만 들어도 괜히 움츠러 든다. 4차 산업혁명은 두렵기만 하고 비트코인이니 블럭체인 기술이니 하는 것도 영 와 닿지가 않는다는 핑계로 뉴스 한 줄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으로써의 과학은 약간 필요한 것 같아서 이 책을 구입했다. <지대넓얕>처럼 과학 지식을 짧게나마 설명해주는 책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샀는데 이게 뭐지.. 예상했던 내용의 책이 아니어서 당황스러웠지만 펼치자 마자 그 자리에서 다 볼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한 두 장 쯤 되는 짧은 글들이 여러 편 실려 있어서 짧은 호흡을 가지고도 틈틈이 시간 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목과는 다르게 사실 이정모 관장께선 과학을 그다지 어려워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 많은 글들마다 빠짐 없이 과학 이야기를 슬쩍 꺼내놓고 살면서 겪은 일들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제, 사고 방식 등을 거론하며 관장님께서 생각하는 정의(Justice)에 대해서고 풀어놓고 있다.
지식을 쌓기에만 급급했던 요즘, 과연 무엇을 위해서 지식을 쌓아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리고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삶의 태도를 무조건 바꿔야만 좋은 것이라고 믿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현재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으로 지금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야한다는 강박에 잡혀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은 마냥 어렵고 따분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과학은, 익숙한 것, 우리가 늘 마주하는 진실에 대해서 끊임 없이 질문하고, 그 대답을 이끌어 내는 과정 속에서 실수도 해보고, 예상치 못한 전개로도 성공하며 스스로를 검증하고 사고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우리는 조금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해서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버리거나, 인공기가 그려진 어린이의 그림을 불태우며 안보 문제로 선동하는 집단을 지지하거나, 자신의 성범죄와 각종 뇌물 수수 혐의가 드러난 이가 버젓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정치를 하도록 두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미 지난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시민 의식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향한 움직임이 그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세상물정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좀 희망차게 얘기하자면 세상물정 속에는 과학이 있고, 과학은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