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에는 판권이 반드시 들어간다. 출판사마다 규정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 제목 뒷페이지 혹은 마지막 페이지에 판권을 넣는다. 이처럼 판권에는 해당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일반 독자들에겐 이 판권 페이지의 존재가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출판사 혹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판권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 나는 첫 회사에서 우여곡절 끝에 내가 만든 책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순간의 감정을 아직 잊지 못한다. 책이 나오기 전, 화면 혹은 가제본으로 보는 것과 실제 책으로 보는 것은 그 느낌 또한 다른 것 같다.
그럼 판권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1. 제목
2. 초판인쇄일
3. 초판발행일
4. 지은이
5. 펴낸이
6. 기획편집 or 책임편집 or 편집
7. 디자인(표지, 본문디자인)
8. 마케팅
9. 펴낸곳
10. 주소
11. 전화
12. 팩스
13. 홈페이지, sns 주소
14. 이메일
15. 등록
16. isbn
대략 이러한 정보가 들어가는데, 여기서 내 이름이 들어가는 곳은 6번이다. 기획팀과 편집팀이 구분된 곳이라면 두 부분을 따로 넣고, 기획과 편집을 동시에 한다면 기획편집에 이름이 들어간다. 내가 다니는 곳은 기획과 편집을 한 명이 담당하므로 기획편집으로 지칭하는데, 이 부분은 출판사마다 조금씩 명칭을 달리한다. 나는 주로 서점을 방문할 때 항상 책의 판권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이 책이 몇 쇄를 찍었고, 어느 출판사의 임프린트인지, 판권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관찰한다. 그래서 오프라인으로 책을 구매할 때는 간혹 같은 책이라도 1쇄, 2쇄가 함께 있다면 판권을 보고 최근에 나온 2쇄를 구매한다. (그래도 2쇄라면 오타나 수정사항을 모두 반영한 책이겠지, 라는 생각에.)
일반 독자들에겐 판권이 다소 생소한 부분이라 유심히 살펴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 편집과 디자인을 혼동하는 분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책임편집”이 디자인까지 모두 포함하는 걸로 착각하는 것이다. 나도 출판사에 발을 들이기 전에 이런 구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편집을 디자이너의 영역으로 알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기획편집, 책임편집의 명칭에는 책의 기획(기획안, 저자 섭외, 계약, 콘셉트, 피드백 등 전체 총괄)과 편집(교정, 교열, 윤문 등)을 포함한다.
편집자의 이름 앞에 들어가는 “책임”은 편집자의 의무이지만 한편으론 편집자들에겐 족쇄와도 같다. 물론 본인 이름이 들어가니까 더 열심히 책임을 지고 임하라는 뜻에서 들어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책이 오탈자로 뒤범벅된 딸기밭이 되었거나, 내용의 일부가 논란이 되는 등 오류가 나오면 책임을 지는 건 다름 아닌 이 책을 담당한 편집자의 몫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타가 너무 많아 책 판매에 영향을 끼쳤으니 다음 달 월급에서 그만큼 삭감할게”, “벌칙금 얼마 내야 돼”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미 출간된 책에서 오류가 나왔다면, 아예 다시 찍지 않는 이상 다음 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다른 편집자가 담당한 책에서 저자의 sns 아이디가 잘못 기재되어 나온 적이 있었다. 스펠링 한 글자가 누락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팀원 모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스티커 작업은 웬만해선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내 책에서 오류가 나와 스티커 작업을 하게 될 때는 ‘왜 제대로 못 봤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어쨌든 내 책이니까, 도와준 팀원들에게 미안해서 작은 음료수 혹은 간식을 건네주기도 한다. 분명 궁금해서라도 스티커를 뜯어보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이상한 문의전화나 오지 말았으면, 이런 생각에 붙이면서도 허탈한 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반대로 인쇄소의 잘못으로 책의 제본이 잘못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나는 종종 이런 상황을 겪었다. 예를 들어, 일부 페이지의 색상이 연하게 나오거나 내가 생각한 색상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다. 내가 생각한 색상이 아니라 속상하지만 이미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 다음에 더 잘 봐달라고 하거나 감리를 볼 수밖에. 그래서 컬러감이 중요한 책이나 사진이 많이 들어가는 책은 꼭 감리를 본다. 그리고 페이지가 일정한 순서대로 나오지 않고 중간에 다른 페이지가 찍혀 나오는 경우다. 이럴 땐 정말 큰 오류이기 때문에 서고에 내려가서 초판 부수를 모두 확인해야 하는 불상사가 뒤따른다. 이런 일 또한 역시 해당 기획편집자가 해야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책임편집이란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편집자가 많을 것이다. 이런 게 판권의 양면성일까. 내가 만든 책에 내 이름이 들어가서 뿌듯하고 좋지만, 한편으론 오류가 나거나 책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지는 건 본인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보람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오는 셈이다. 저자의 실수, 편집자의 실수, 인쇄소의 실수… 언제나 사소한 것 하나로 여러 실수가 동반될 수 있다. 그렇다고 책임을 회피할 순 없는 법. 어떤 실수가 일어나든 누구보다 속상한 건 바로 편집자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