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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Oct 07. 2021

기획안의 쓸모

잘  쓴 기획안이 계약을 부른다

기획편집자는 신간을 기획하기 위해 가장 먼저 기획안을 쓴다. 머릿속에서 이런 책을 만들면 어떨까, 상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보여야 한다. 기획안의 형태는 자유다. 보통 출판사에서 저마다 사용하는 기획안 샘플이 있는데, 나는 처음 기획안을 쓸 때 머리가 멍 하고 뭘 써야 할지 막막했다. 직급에서 오는 부담감과 제대로 된 기획안을 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이전에 수험서를 만들 때는 기획안을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아니 쓸 기회는 많았지만, 매년마다 개정을 위해 바쁘게 달려오다 보니 ‘신간’을 위한 기획안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단행본 출판사에서는 기획자의 기획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만들고 싶은 책이 있어도, 저자 섭외를 하기 전에 ‘기획안’이 우선 통과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예상하지 못하겠다. 어쩌다 운 좋게 한 번에 통과되기도 하지만, 콘셉트와 저자 그리고 내용 부실 등의 다양한 이유로 기획안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신입이라면 계속 기획안을 쓰고 피드백을 받으며 기획력을 꾸준히 늘릴 수밖에.


나는 첫 단행본 기획안을 쓸 때,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생소한 분야보다는 가급적이면 내가 흥미 있어하는 분야가 더 좋은 기획안을 쓸 수 있는 자극체가 되지 않을까? 나는 평소 자칭 빵순이로 빵을 좋아해서 빵과 관련된 기획안을 써보기로 했다.




빵집 에세이? 빵 만드는 요리책?


뭐로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잠시 일을 쉴 때 직접 들으러 갔던 책 강연회가 문득 떠올랐다. 타 출판사에서 주최한 <빵 브랜드 마케터>분의 강연이었다. 당시 작가님의 책을 구매해서 사인까지 받았었는데…! 그래서 그 저자님을 섭외하는 것을 목표로 빵 마케터 기획안을 썼었다. 대망의 회의 날. 나는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기획안을 팀원들에게 돌렸다. 여러 피드백을 받았는데, 결론은 이 기획안은 쓸모가 없어졌다. 편집장님은 빵 마케터로서 그 직업에 관한 원고는 핵심 독자층과 대중성을 다 잡기에 애매모호하다고 평가하셨고, 차라리 빵 덕후 이야기가 더 대중성이 있다고 피드백을 주셨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빵 덕후의 빵 여행>을 주제로 기획안을 수정했고, 드디어 첫 기획안 통과의 참맛을 봤다. 기쁨도 잠시, 이제 다음 할 일은 작가 섭외. 보통 저자 섭외 때 컨택할 연락처를 구하기가 어려운 편인데 강연을 계기로 sns 계정을 서로 팔로우하고 있어서, 쉽게 연락이 닿아 다행이었다. 미팅 때 기획안을 좋게 봐주신 저자님 덕분에 계약도 한 번에 ok로 이어졌었다.


요즘은 계약도 치열해져서 미팅 후 여러 번 피드백을 주고받은 다음 계약이 이루어지는데, 이때는 바로 계약을 하고 진행을 했었다. 기획안이 빛을 발했다.   기획안이 빠른 계약을 부르다는 . 아무것도 준비된 것 없이 미팅하기보다는, 작은 정성이라도 보여주면 작가로 하여금 글을 더 쓰고 싶게 만들지 않을까? 웃프지만 진지하게 출판사의 계약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그럼 기획안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아직 성장하는 기획편집자라 뭐라고 정의하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원활한 기획을 위해 기록해본다.




1. 분야와 저자, 둘 중 뭐가 우선일까, 나만의 우선순위 정하기

처음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과연 주제를 먼저 정하고 저자를 찾을 것이냐, 아니면 저자를 정해놓고 저자에 맞춰 분야를 찾을 것이냐. 둘 중 정답은 없으므로, 기획자의 선택에 따라 작성하면 된다. 내가 평소 써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주제를 먼저 정한 다음, 그에 맞는 저자를 섭외하면 된다. 나는 평소 기획안을 쓸 때 분야를 먼저 찾고 그 이후 저자를 서칭하는 걸 선호한다. 저자를 먼저 찾고 분야를 정하는 게 더 수월한 분들도 있을 테다. 만약 네임드 있는 저자를 먼저 찾은 다음 그 저자의 콘텐츠를 이끌어낼 주제를 찾는다면 더 쉽게 기획안이 써질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주제와 콘텐츠가 무엇인지 찾은 다음 그에 맞는 저자를 찾는 게 더 편한 것 같다.


2.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핵심 독자층 찾기

작가 입장에서는 본인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사람들을, 기획자 입장에서는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을 생각한다. 과연 내가 기획한 책이 출간되면 누가 그 책을 필요로 할까. 핵심 독자층을 바로 정하기 어렵다면 확산 독자층을 먼저 생각해본다. ‘육아 에세이’를 예로 들자면 현재 아이를 키우는 육아 맘, 워킹 맘, 출산을 앞둔 임산부, 신혼부부, 예비부부 등이 모두 확산 독자층에 포함된다. 여기서 핵심 독자층은 이 책의 주제와 가장 근접하고도 공감 형성에 유리한 육아 맘이 되는 것이다.


3. 경쟁 도서를 이길 ‘콘셉트무기 내세우기

시중에는 한 가지 분야의 책이 나오게 되면 무조건 경쟁 도서는 반드시 출간된다. 어떤 분야의 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 그건 출판사마다 희소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확률이 크다. 희소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해당 분야의 첫 책이 나오게 되면, 그 도서는 아마 더 좋은 경쟁 도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출판시장을 독식할 것이다. 요즘 출판시장의 트렌드는 바로 콘셉트 무기를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독자들은 콘텐츠의 만족도가 높다면(도서를 정하는 기준에 부합한다면) 정가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니 꾸준한 온오프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 트렌드의 동향을 파악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4. 독자의 흥미를 이끄는 목차 구성 짜기

저자에게 기획안을 보내기 전, 적어도 목차의 기본적인 틀은 잡아놓고 보내는 것이 좋다. 기획의도와 콘셉트는 좋지만, 어떤 형태로 구성할지 틀이 잡혀 있지 않으면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힘들 수도 있다. 목차는 대략적인 틀만 잡아놔도 저자가 책의 방향을 이해하기 한결 수월해진다.



 


똑같은 계약 조건일 경우, 간단한 용건만 주고받고 헤어진 곳과 여러 피드백을 통해 소통한 곳, 둘 중 어느 곳에 더 마음이 기울게 될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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