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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Sep 12. 2021

보도자료의 늪

편집자에게 선고된 창작의 고통

인쇄를 내리고 나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보도자료 작성하기.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면 나오는 도서정보, 책 소개, 목차, 책 속으로, 출판사 리뷰를 모두 묶어 ‘보도자료’라 칭한다. 그리고 이 보도자료는 해당 책을 담당한 기획편집자가 쓴다. 기획자와 편집자가 구분된 곳이라면 아마 편집자가 보도자료를 쓰고 기획자에게 컨펌을 받는 식이다. 편집자들에겐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내 책이 팔리게끔 온 정신을 한 곳으로 쏟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 보도자료는 언제 쓰나요?

이건 출판사마다 규칙이 다를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곳에선 사실 보도자료 데드라인이 딱히 없었다. 그냥 인쇄 납기일에 맞춰서 작성해왔다. 그러다 마케터들이 상세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니, 인쇄를 내리고 3일 안에 보도자료를 작성하라는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현재 보도자료와 미리보기는 기획편집자가, 상세페이지는 마케터가 작업하다 보니 이를 한 번에 같이 발송하기 위해서(온라인 서점에서 한 번에 모든 자료가 보이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중요 도서는 언론사 보도자료도 같이 준비해야 한다.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안 그래도 다른 일로 바쁜데, 3일까지 작성하라니… 나는 말도 안 된다며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출판사 직원들만 모여 있는 오픈 채팅방에서 ‘보도자료’ 관련 대화를 보게 됐다.

“다들, 보도자료 쓸 시간을 얼마나 주시나요?”


여기서 어떤 편집자분은 하루 안에 보도자료를 작성해야 하는데, 많이 버겁다고 하셨다. 또 다른 편집자분은 편집하면서 미리 한두 줄씩 적어두고, 마감 이후 하루 이틀 내로 끝낸다고. 또 대략 4일 정도 기한을 준다는 곳도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하루는 너무 급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보고 편집자들이 보도자료에 들이는 시간과 공이 꽤 크다는 건 모두 똑같구나, 다들 보도자료를 쓸 때 막막하구나, 너무 공감되는 글들이 많아서 여러 생각이 오갔다.




‘우리 책은 어떤 분야이며, 핵심 독자층은 이렇고, 이런 독자분들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신간을 소개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이 보도자료에 편집자들은 사활을 건다. 한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구매한다고 치자. 책 정보를 얻으려 인터넷에 도서명을 검색하다가, 온라인 서점에서 책 소개와 미리보기를 보면서 이 책을 살지 말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을 클릭해 책 소개와 출판사 리뷰를 보고 너무 흥미진진하고 소장욕구가 막 샘솟는다. 그렇게 실물을 보지 못하고 구매했다가 실제로 책을 받고 나서, “아 뭐야. 낚였네. 책 소개와 전혀 다르잖아.”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독자들을 낚이게끔 전혀 다른 내용을 쓰면 안 되지만, 그만큼 독자들을 이 책에 홀리게,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보도자료를 써야 하는 건 편집자의 역할이다.


편집자들에게 주어진 창작의 고통, 그럼에도 쓰는 재미


어떤 편집자분은 이렇게 말했다. “업무시간엔 생각이 잘 안 나서 글이 막히는데, 야근할 때 보도자료를 쓰면 오히려 집중이 잘 되고 더 잘 써져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업무시간엔 편집 일 말고도 다양한 일을 동시에 작업해야 하고, 여러 사람과 일하니 어수선한 분위기가 형성돼서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야근할 때 혹은 집이나 카페에서 온전히 내 시간에만 집중할 때 보도자료가 더 잘 써지는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업무시간에 쓰는 편이고, 하루 만에 쓰기보다는 데드라인 안에서 도서정보를 먼저 작성하고, 책 소개와 출판사 리뷰를 가장 마지막에 공들여 작성하는 편이다. 다음날 다시 확인해보고 문장이 이상하거나,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다시 검토하고 자잘한 수정을 하기도 한다.


남들이 봤을 땐 보도자료가 뚝딱 나오는 것처럼 보여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곧 나올 신상품을 예로 들자면, 보도자료는 여태 보지 못한 이 신상품을 처음 소개하는 광고와도 같다. 온라인에서 주로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은 책 소개와 출판사 리뷰 그리고 상세페이지와 미리보기가 어느 정도 책을 구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보도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구매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보도자료가 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보도자료를 쓸 땐 쓰기 전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또 막상 재미가 들려 열심히 써내려 갈 때도 있다. 쓸 땐 힘들었지만, 인터넷에 내 책이 올라오면 괜히 기분이 이상하고 한편으론 뿌듯함이 밀려온다. 혹시 실수는 없는지 내가 쓴 보도자료를 읽고 또 읽는다.




한때, 같은 부서의 친한 디자이너가 온라인 서점의 책 소개를 기획편집자가 쓰는 거였냐고 물었을 때,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했다. 책 소개를 온라인 서점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편집자가 머리 빠지게 작성해서 각 온라인 서점에 발송한다고 강조하며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마케터분들도 마케팅을 위해 보도자료를 참고하는데, 글을 읽고 정말 대단하다며 편집자의 놀라운 발상과 공을 높이 사기도 한다.


기획편집자는 늘 보도자료의 늪에 빠진다. 그럼에도 계속 쓴다. 아니 써야 한다. 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어줄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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