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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Aug 10. 2021

그래서 나는 맞춤법 파괴자가 되기로 했다

편집자는 맞춤법 틀리면 안 되나요?


- 편집자도 사람인데, 맞춤법 틀릴 수 있지 뭐.


편집자에겐 알게 모르게 강박감이 있다. 안에서든 밖에서는 올바른 맞춤법을 써야 한다는 것. 책에서는 오탈자가 나오면 안 되는 게 당연하지만, 지난번에도 올렸듯이 책이 나오고 나서야 꼭 오탈자가 발견된다. 그래서 늘 눈에 불을 킨 채 틀린 부분을 찾아내려고 용을 쓴다. 나는 그렇게 계속 일하면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아서,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맞춤법 파괴자’가 되기로 했다.


- 보통은 편집증(직업병)에 걸린다던데, 맞춤법 파괴자라고요?  


나도 한 때는 누구나 말하는 그 ‘직업병’에 걸렸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그때 띄어쓰기를 해야 할 단어가 계속 눈에 아른거리거나, 문장의 자간이 조금씩 다른 부분을 보면 고치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했다. 내 담당 원고의 오탈자를 찾아봐야 할 판국에 다른 데서 더 열심히 찾고 있다니, 조금 웃프기도 했다. 편집자는 기계가 아니다. 그러니, 편집자도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인터넷을 활용해 도움을 얻는다. 즐겨찾기에 국립국어원, 맞춤법 검사기가 빠지면 섭하다. 기획편집팀이 아닌 다른 팀과 얘기를 하거나, 메신저를 할 때 모르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럼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단어의 뜻은 무엇인지, 맞춤법이 이게 맞는 건지 내게 묻는다.


- 죄송한데, 저도 그 뜻 몰라요..

- 잠시만요. (인터넷에 재빨리 검색해서 그 뜻을 알아본다)





내가 아는 선에선 최대한 지식을 끌어내 설명해줄 수 있지만, 아리송할 때도 있고, “이건 맞고, 이건 틀리다”라고 확언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편집자인데, 그것도 몰라요?” “당연히 알 줄 알았죠.” 그래서 공부가 필수인가 보다. 나는 일할 때는 집중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최대한 업무를 잊기로 했다. (물론 진상 저자와 작은 언쟁이 있었거나, 마감을 지켜야 해서 집에서 급하게 교정을 봐야 한다거나, 내일 할 중요 업무가 계속 생각난다거나 기타 등등으로 지키기 어렵지만.) 회사에선 편집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밖에선 맞춤법 파괴자로 살지 뭐. 별거 있나? 요새는 이런 마인드로 살고 있다.



나는 주로 카카오톡을 이용할 때 남들보다 오타를 많이 내는 편이다. 빨리 쓰려고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ㅆ’이 ‘ㅅ’으로 써져도 그냥 알아듣겠거니 하고 다시 돌아가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보낸다. “돼, 되”의 사용법에 관해 사람들의 간섭이 유독 심하다. 유명 연예인이 sns에 “돼, 되”를 잘못 구분하여 써서 질타를 받기도 한다. 업무가 아니니까, 봐야 할 교정이 아니니까 나는 이런 걸 발견하면 굳이 고치려 들지 않고 그냥 두는 편이다.  괜히 이런 사소한 일을 꼬투리로 잡아 친한 사이가 멀어지거나,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다. (실은 귀찮은 게 1순위지만)


라떼는 이런 말 안 썼는데 말이지, 새로운 유행어가 나오면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요즘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신조어를 찾아보고 따라 써보기도 한다. 줄임말도 스스럼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바이러스는 ‘코바’, 저분자 피쉬 콜라겐은 ‘저피콜’ 같은 식이다.




세 달 전 갤9+를 갤21로 바꾸었는데, 바꾸기 전까지 나는 천지인 자판을 쭉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키보드를 천지인보다 쿼터를 많이 사용할 텐데, 나는 천지인이 훨씬 편했다. 휴대폰을 바꾸고 나서 이제 쿼터로 바꾸라는 남편의 권유에 몇 년 만에 키보드 형식을 바꾸었는데, 오타가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게 아닌가. 타자 속도도 더딜뿐더러, 자꾸 반복되는 오타에 답답함이 들었다. 쿼터와 천지인으로 구분하여 타자연습을 해봤더니 결국 천지인의 타자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는 걸 증명해내고 나서야, 나는 당당하게 다시 천지인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오타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됐을 때, 책임감은 배가 된다.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취미로 즐기는 책과 만드는 책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잠시나마 편집자의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 ‘맞춤법 파괴자라는 모순적인 명칭을 달고 소심한 반항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나의 오타쟁이 삶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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