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0대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50대가 된 셈이다. 돌이켜보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던 내 모든 순간들이 다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멋모르던 10대 때는 얼마나 20대가 되기를 소망했던가. 하루 만에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된 것만 같았던 그때. 모든 것이 눈부셨고 찬란하여 나이듦도 아깝지 않던 시간이었다. 나의 행복과 나의 기쁨, 나의 절망과 나의 실패, 나의 성장과 나의 사랑. 오직 내가 주인공이었던 나만의 시간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던 나의 30대와 학부모로서 살았던 나의 40대는 참으로 정신없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이의 학년으로 내 시간이 흘렀고 아이의 삶이 내 삶이라 바쁘지 않은 날들을 찾기 어려웠다. 아이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었고 아이의 실패가 또 나의 실패를 의미했으니 나만을 위한 시간들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내 나이를 세어본것이 언제였던지. 언제부턴가 사는 데 있어 내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게 되었던것 같다.
이제 아이들의 대입을 끝낸 요즘 나의 삶은 잔잔하고 평온하지만 따분하고 지루하며, 자유롭고 느긋하지만 심심하고 허전하다.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그런 삶이다.
2025 트렌드키워드
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
행복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한걸음 비켜서서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있게 여기는 태도
처음 아보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이건 지금의 나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50대의 지금 내 삶이야말로 평범한일상 그 자체이니까.작더라도 행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대로의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면 그 자체로도 행복이라니 왠지 안도의 한숨마저 쉬어졌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평범한 일상이란 게 보통 힘든 녀석이 아니다.평범은 깨질 때에야 더욱 감사하고 소중함을느끼게 되는 반면 그토록 원하던 평범이 찾아와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히 여기고 소홀히 대하게 되니 말이다.
또한 평범한 일상은 참 공평하지도 않은 듯하다. 누군가에겐 따분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함이 되고 내가 가진 무난한 것들이 너에겐 지독한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타인에 대한 기대에 또 타인과의 비교에 내 시간을 내어주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으로 50인 나의 아보하에 한걸음 다가서려 한다. 그저 아무것도 안함으로 무탈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찾아가는 평안함으로 매일매일을 살아내야겠다.
먼 훗날 지금을 되돌아볼 때 50대의 아보하로 참 행복했었노라 말할 수 있기를.
50대에 들어선 너무나 평범한 사람의 너무나 평안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50대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