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희 Dec 06. 2023

Flowers Need Nurturing.

나의 길티 플레저인 Bling Empire New York. 미국 뉴욕에 사는 부자들의 일상을 다루는 리얼리티쇼이고, 아시아인이 나오는 카다시안 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넷플릭스에서 한 화를 시작하고는 밤새 모든 에피소드를 연달아 보느라 다음날 회사에서 고생했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피곤한지 당당히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제목을 말하기는 살짝 부끄러운, 마치 숨어듣는 명곡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온통 마라맛일 것만 같은 블링 블링 엠파이어 뉴욕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티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너무 따뜻해서, 여기저기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스타그램 pimfeels



모델/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는 티나는 insecure한, 불안정한 캐릭터로 나온다. 어릴 때의 가정환경 때문에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크게 느끼고, 자신의 일에 대한 부담도 많이 지니고 있어 가끔씩은 자신도 모르게 무너지는 모습들을 보인다. 그러던 중에 티나가 아주 기대하던 쇼가 있었는데, 차가 막혀 행사장에 늦게 도착하고 만다. 경비원들은 이미 쇼가 시작했기 때문에 티나를 들여보내줄 수 없다고 하는데, 티나는 집에 가는 차 안에서도, 친구들을 만나서도 심하게 자책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이 때 도로시가 굉장히 어른스러운 위로를 해준다. 티나 네가 꼭 모든 쇼에 가야하는 건 아니고, 너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잘 안 풀리는 일들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에게는 관심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친구인 티나를 꽃에 비유하면서, 꽃이 피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But Flowers need nurturing and watering to blossom.)는 말을 해준다.



@인스타그램 chroniclesofmariana



도로시의 말을 듣는 순간 멍해졌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지만 나 스스로의 못난 모습은 참지 못하는 ISFJ로서, 나도 티나처럼 스스로를 엄격히 대할 때가 많았다. 차가 막혀 쇼에 지각했다면 그걸 미리 예상하고 일찍 나오지 못한 나의 잘못이 될 것이고, 모든 실수들에 대해 '내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꽃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생각들이 조금은 바보같이 느껴졌다.


꽃이 피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꽃이 피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햇빛도 보여주고, 필요할 때는 물을 주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꽃을 가꿔나가고 싶다. 여린 잎이 잘 돋아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 보살피고 싶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은 온전히 나의 무의식과 가까워지는,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전 01화 Come Walk With M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