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기분은 무섭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진심으로 몰두한다는 기쁨도 생기지만, 이 일을 반드시 잘 해내야 할 것 같고, 잘못되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만다. 미국에 오고나서 집을 구하고, 가구를 채우고, 신분을 확정해나갈수록 여기에서의 내 몸이 무거워지니 정말 미국 생활에 commit 하는 기분이 들어 무서워졌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만 갖춰두고, 꽤 긴 기간을 빈집에서 지냈다. 이렇게 하면 마치 덜 헌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미국까지 왔으면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겠단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필요한 가구들을 주문했다. 이후 한달간은 퇴근하고 택배를 열고, 조립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DIY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조립을 계속해도 또 새로운 과제가 생겨나고, 서랍장을 조립하려 프레임 안쪽에 들어갔다가 눈을 들어보니, 정말 물리적으로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조립을 끝내고 나면, 내 손으로 채운 내 집이라는 생각에 내가 지내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더 생겨나기도 했다.
미국 생활은 벅스 라이프라는 이야기를 들어와서, 혹시나 벌레를 마주칠 일을 대비해 레이드도 샀다. 미국 생활을 혼자 해낸다는 것은 벌레도 혼자 퇴치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기에.
내 건강도 야무지게 챙기려 루테인, 종합비타민도 샀다. 소화가 안될때 미국인들이 항상 찾는다는 텀즈도 ultra strength 로 쟁여두고.
처음이 무서워서 그렇지, 하나둘씩 미국 생활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생활반경도 조금씩 넓히고 주말에 혼자 바닷가도 처음으로 가봤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방인이 아니라 정말 여기에 내 삶을 집중시키고 헌신하면서, 캘리포니아에서의 내 삶을 더욱 견고하게 지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