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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by 문성 moon song

아직은 5년짜리 복수여권과 출국납부권을 써야하는 시절이었다. 공항리무진을 타자마자 엉겁결에 받아든 쿠폰에는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성시경이 티비 속 CF에서 그랬듯 전화기 너머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여권과 비행기티켓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출국납부권과 할인통화권마저 손에 꼭 쥐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러시아제 비행기는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내 눈에도 낡고 오래되고 너무나 작았다. 그 작은 크기에도 승객은 삼분의 일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그 안에서도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이미 한국이 아닌 듯 러시아어로 떠들어대는 목소리들과 생전 처음 맡아보는 코를 찡하게 하는 암내에 둘러싸여 여권과 티켓 그리고 쓸데없는 출국납부권 영수증과 할인통화권을 여전히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스케치북물건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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