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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에: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

by 문성 moon song

여름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흠뻑 내린 비와 함께 기온은 10도 이하로 떨어졌고 한낮의 반짝 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새로이 시작한 일때문에 다급해진 매일의 일과에 쫓기다보니 지난번 글 이후로 근 3주가 넘어버리고 말았다.


폭염에 이를 갈며 더위를 잊어보고자 시작한 겨울베트남여행기가 이러다 다시 겨울이 오고야 끝나는 게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나누고 싶은 베트남이야기들을 적어본다. 느리더라도 끈질기게 적어 다시금 그 즐거움을 맛보고 함께 나눠봐야지 혼자 다짐해본다. 산더미같은 할 일을 모른 척하고 다시 베트남이야기를 풀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씨익.




두번째로 소개할 베트남 음식은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고 또 어딜가나 쉽게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간편한 한끼이자 다양한 재료가 듬뿍 담긴 영양만점의 음식.

프랑스의 인도차이나점령으로 오랜시간 식민지로 지내야했던 베트남의 아픈 역사는 음식에도 그 흔적을 남겼고 베트남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자신들의 풍부한 음식문화와 더불어 베트남식 음식으로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바게트는 한번에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손바닥만한 크기의 베트남식 바게트가 되었고 반을 가른 속에는 베트남사람들이 즐겨먹는 다양한 고기들 (닭고기나 소고기, 돼지고기 등)과 당근, 오이같은 아삭한 야채들, 고수를 비롯해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채로운 허브들을 가득 채우고 마지막에는 소스를 듬뿍 뿌린 베트남특유의 샌드위치, 반미가 된 것이다.

한가득 쌓아놓고 파는 베트남식 바게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기차역 플랫폼에서조차. 식사용으로 바게트를 사는 현지인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반드시 반미를 파는 노점상이 있다.


얄팍한 속재료에 기분상할 일따위는 없었다. 건네줄때부터 느껴지던 묵직함은 반미를 싼 종이를 벗기자 꽉 찬 내용물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입이 찢어져라 벌려 한 입 베어물자 바게트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빵과 함께 고기의 육즙과 아삭하게 씹히는 야채들 그리고 그 사이로 퍼지는 특유의 허브향과 소스의 매콤하고도 고소한 맛에 몇번이고 혀로 입술을 핥아가며 음미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자꾸만 줄어드는 반미를 아쉬워하며. 그렇게 처음 반미를 맛보고 난 뒤,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점심으로 혹은 간식으로 꼭 반미를 먹고야 말았다.

하노이 어느 반미 가게 풍경.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온 혹은 걷다가 들어온 손님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작은 테이블 앞에 목욕탕의자와 거의 흡사한 크기와 모양의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가 만들어 건네주는 반미를 받는다. 종이에 싼 두툼한 반미를 건네받을 때까지 허기와 기대가 교차하는 그 기분.


반미는 그 자체가 다양한 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맛있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빈번히 이동해야하는 여행객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간편한 음식이기도 했기에 자꾸만 먹게 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기차에 오르기 전 식당에 들어가기엔 애매한 시간에,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허기를 채우고 기운을 내서 이동하려고,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식사시간을 놓쳐서, 바삐 움직이다보니 식사와 식사사이에도 허기를 참지 못하고...

적다보니 그냥 내 식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행객이라는 핑계로 잘 먹어야한다고 허기를 참으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눈앞에 반미가게가 나타날때마다 지나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매번 반미는 맛있었고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곤 하며 다음 반미가게에 눈을 반짝거렸으니.

기차를 놓칠까봐 급하게 이동하다가 들렀던 반미가게. 점포 앞에 그려진 귀여운 바게트그림을 놓칠 순 없는 법.


기차를 놓칠까봐 급하게 이동하다가 들렀던 반미가게. 기차역 앞에 있어서 그런지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었는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고 맛은 훨씬 진하고 양도 푸짐해서 감탄을 하게 했던 곳. 점포 앞에 그려진 귀여운 바게트그림을 놓칠 순 없는 법.


기차역 앞의 현지인들의 반미가게에 홀딱 반한 후로는 나름의 요령으로 현지인들을 유심히 살피며 그들이 많이 가는 노점상반미를 따라서 사먹곤 했다.

그렇게 먹으며 알게 된 사실, 반미도 쌀국수처럼 파는 주인마다 특유의 고기손질과 양념방식, 야채손질과 양념방식, 들어가는 야채의 종류와 가짓수, 소스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소스 하나만 보더라도 어느 집은 매콤한 소스를 어느 집은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한 소스를, 어느 집에서는 새콤달콤한 소스를 써서 제각기 맛이 달랐다. 당연히 소스외의 다양한 재료들이 어우러지는 맛 역시 천차만별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제각기 다른 맛들이 모두 너무나 맛있었다면 믿어질런지.

오토바이에 앉아 주문한 반미를 기다리는 이들의 시선 끝에 재빠른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숨겨져있다. :)

제일 저렴하면서도 제일 맛있었던 하지만 제일 허름했던 반미노점상. 역시 우연히 길을 걷다 발견한 곳으로 나짱의 관광지구에서 기차역으로 걸어가며 현지인들의 주택지를 지나가는 중에 들른 곳이었다. 멀리서 발견했을 때부터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던 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오토바이행렬때문이었다. 현지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 잠시 멈춰서서 반미를 주문해서 받아들고는 재빨리 다시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지는 모습이 나 역시 줄을 서 기다리게 만들었다.

더욱 경이로웠던 건 주문을 받자마자 신속하게 바게트를 가르고 속을 채우고 소스를 뿌린 후 건네주는 아주머니의 재빠른 손놀림이었다. 나는 반미를 받아 먹어치우며 아주머니의 손놀림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도 보이는지, 오토바이에 앉아 주문한 반미를 기다리는 이들의 시선 끝에 재빠른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숨겨져있다.


베트남은 외식이 일상화되어 있기에 바게트와 반미가 그들의 식사문화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게트상점, 바게트만 파는 노점상, 바구니에 바게트만 잔뜩 담은 상인들은 우리의 밥처럼 식사의 기본이 되는 바게트를 공급하고 각 반미가게는 간단한 식사로 반미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해주는데 우리도 각 집마다 고추장이나 된장, 김치맛이 다른 것처럼 가게마다 소스를 비롯한 모든 것의 맛이 미묘하게 달랐었다. 베트남 음식도 역사가 긴 다양하고 풍부한 식문화에 식재료를 손질하고 맛을 내고 소스를 만드는 과정이, 손맛을 내는 과정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동일한 케첩과 마요네즈를 쓰거나 동일한 레시피로 시간에 맞춰 감자튀김을 튀기고 패티를 구워내는 표준화된 식재료와 패스트푸드에는 느낄수 없는 손맛.

코카콜라의 빨간 로고가 박힌 낡은 노점상에 콜라와 환타가 가득차 있어도 그 아래 다듬어놓은 식재료들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노오란 바게트에 주인만의 비장의 소스가 가게의 인기를 좌우한다.


그래서 새로운 반미가게를 마주칠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맛을 보여줄까 기대하며 반미가게에서 발길을 멈추고 기웃거리고 말았나보다. 수많은 허름한 노점상 속에서 숨겨져있는 보물을 찾아내는 기분으로. 반미 1개 대략 2만동, 한국돈으론 천원짜리 길거리 음식, 반미.


프랑스식 바게트를 베트남식 바게트로 샌드위치의 내용물을 베트남식 고기와 야채와 소스로 채워넣어 독특한 풍미를 가진 반미에서 프랑스의 식민주의를 전쟁으로 끝내고 이어 미국과의 길고 긴 참혹한 전쟁을 치렀지만 결국 승리한 유일무이한 나라, 베트남의 일면을 본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볼이 터지게 베어물고도 손에 꼭 쥐고 있느라 카메라가 누구한테 가 있는 줄도 찍히는 줄도 몰랐다. 마지막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저녁을 만찬급으로 먹어놓고는 반미가 그리워질까봐 길거리에서 사들고 택시에 올랐다. 비행기에서도 소중이 들고 있다가 결국 다 먹어버리고는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쩝쩝. 지금도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곳에서 반미를 맛볼 때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맛을 살릴 순 없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다. 쌀국수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우리를 떠나게 만들고 그리워하고 추억하게 만드는 그래서 여행에 특별함을 부여하고 무엇보다도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무엇이 아닐까.



그런데 연남동과 망원동에도 반미를 파는 가게가 있다는 걸 아는지. 아마도 그들도 나처럼 그곳의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가게까지 차리게 된 건가 상상해본다. 문득 궁금하고 떠오르고 아쉬워진다면 그곳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베트남의 오토바이 경적소리, 허브와 소스들의 독특한 냄새, 허름한 노점상의 불빛 아래 바쁘게 손을 놀리는 아주머니와 그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없지만. 높은 하늘에 쾌청한 날씨, 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이 가을에 반미를 싸들고 나들이가는 건 어떨까. 나처럼 일과에 치인 분들이라면 반미를 맛보러 산책을 간다면, 산책이 짧은 여행처럼 느껴질지도. 어쩌면 우리는 그 가게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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